사진이 가져다주는 것
친정집 거실에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단정하게 왁스를 바른 머리.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분을 칠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장착한 가족의 모습. 족히 10년은 지난 가족사진을 아직 걸어두었으니 볼 때마다 낯이 붉어진다. 특히 남편과 친정집을 갈 때면 더없이 부끄럽다. 어릴 적 엄마의 소원은 가족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소원이 된 것은 그만큼 가족이 사진 찍는 일에 협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아빠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고 둘러댔다. 나와 남동생은 사춘기인 터라 사진 찍는 것을 싫어했다. 게다가 굳이 스튜디오까지 가서 큰돈을 내고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굴하지 않았다.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가족끼리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엄마의 소원인데 그거 하나 못 들어주는 거냐며 매번 들들 볶았다. 결국 일 년 가까이 지속적인 괴롭힘에 못 이겨 결국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엄마만 빼고 아빠와 나, 남동생은 못마땅했지만 차라리 한 번 찍고 앞으로 편하게 살자는 데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
사진 찍는 날은 무지 추웠지만 엄마의 마음만큼이나 화창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헤어와 메이크업.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단정해진 머리와 정돈된 눈썹, 또렷해진 눈매, 볼그스레한 볼, 엷붉은 입술. 변화된 모습의 나를 마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뾰로통했던 얼굴이 누그러지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 때쯤 몰라보게 변신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는 실룩실룩 입술이 떨려왔다. 이런 모습도 있구나. 다소 어색함을 띄고 있었지만 가족 모두 사진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수그러진 듯싶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웃음 짓는 일은 생각보다 힘에 겨웠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웃는 일이 어려워 그동안 가족사진 찍는 일을 미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입꼬리는 살짝 끌어올리면서 방싯 눈웃음을 머금고 남동생 어깨 위에 손을 살포시 감싸 안는 것. 게다가 가족 모두 동시에 자연스러운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어야 하니 완벽하게 그 순간을 잡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루 종일 불편한 양복과 드레스를 입고 불편한 카메라와 사람 앞에서 미소를 짓고 나니 촬영이 끝나고 가족 모두 집에 와 뻗어버렸다. 사진을 찍자고 한 엄마조차도 ‘좋은 추억이었지?’라는 말 한마디로 어르기에는 피곤함에 못 이겨 잠이 들었으니 말이다.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겨 집에 온 날도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사진의 크기가 예상보다 컸고 어색한 미소와 마치 행복한 가족을 억지로 연출한 것 같은 모습이 영 내키지 않았다.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한동안 어색함과 부끄러움에 푸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너무 예쁘지 않아? 볼 때마다 좋아.”라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족사진은 놀이공원에서 찍은 스티커사진이다.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이 사진이 가족사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사진을 찍은 사실조차 기억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초등학교 입학 축하를 위해 놀러간 놀이공원에서 찍은 네 컷의 스티커사진. 그때는 사진이 스티커로 출력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했었는데…. 렌즈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오밀조밀 얼굴을 들이밀며 서로 살을 부대끼고 까르르거리다 이내 찰칵 하는 순간 자연스레 새어나오는 웃음. 누군가 강요하지 않아도 흘러넘치는 웃음 속 행복이 가득한 분위기마저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있다. 나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피아노에 스티커사진을 붙여두었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뚜껑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며 가족과 함께한 순간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났다. 오래 되어서 빛도 바래고 뜯어질락 말락 할 때마다 투명테이프를 꾹꾹 붙인 탓에 지저분해졌지만 차마 뜯어 버리지 못했다. 추억의 한 조각을 내다 버리는 것 같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니까. 아직도 이 사진은 친정집 내 방 피아노 뚜껑 위에 붙어있다. 가끔 친정집에 가면 사진을 보며 한 번 스윽 문질러본다. 그때의 내가 좋아서. 그때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올라서.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보다 이 스티커사진이 더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엄마는 남들에게 보여줄 전형적인 행복한 가족사진이 갖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사진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찾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힘들 때마다 가족사진을 보며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며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애썼을지도. 가족사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었든지 간에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자 행복이 된다.
요즘 남편과 나는 아이 사진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아이폰에는 자동으로 찍은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 주는 For you 기능이 있다. 직접 사진을 선택하지 않아도 알아서 장소, 인물에 따라 사진보관함에 담긴 멋진 순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일상에서 수시로 아이의 모습을 핸드폰 카메라로 담는다.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행복을 언제든 꺼내 보고 싶어서.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성장앨범을 계약하지 않았고 스튜디오에서 아이 사진을 찍은 적도 없다. 취향의 문제겠지만 우리는 낯설고 어색한 상황에서 컨셉에 맞춰 아이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아이가 노는 모습이나 이유식을 먹을 때, 자고 일어났을 때, 책을 읽을 때, 소리 지를 때, 베이비룸을 잡고 일어서 나와 남편을 쳐다볼 때. 지극히 평범한 순간을 주로 찍는다. 평범한 일상이 돌아보면 특별한 순간의 추억이 되어있을 테니까.
사진 한 장만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가족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진의 마법. 앞으로 우리는 아이의 어떤 모습을 담게 될까?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나갈까? 사진은 빛바랜 추억이 아니라 빛을 발하는 추억이 아닐까. 오늘도 빛나는 아이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며 빛나는 사진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