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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Apr 28. 2022

백일의 기적의 의미

기적은 찾아온다

도무지 올 것 같지 않던 백일이 다가온다. 백일은 엄마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백일을 기점으로 아이가 통잠도 자고 밤중수유도 없어져서 조금 육아가 수월해지는 일명 ‘백일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백일 이후에 아이가 더 보채고 손이 많이 가는 ‘백일의 기절’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백일이 가까워지자 세 시간마다 수유시간에 맞춰 깨던 아이가 6시간씩이나 자는 기적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온 순간부터 백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며 감격에 젖어 백일이 더욱 기다려졌다.


백일잔치는 코로나로 친정, 시댁식구들끼리만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그러나 웬걸. 장소만 간단히 집이었을 뿐 밖에서 치르는 것과 같은 비슷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설상가상 모임인원 제한이 있어 친정과 시댁 따로 시간대별로 나누어 진행해야 했다. 식구들이 방문하기 전에 먼저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 셋이 가족사진을 찍었다. 맨 얼굴에 늘어진 티셔츠, 대충 말아 올린 머리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화장하고 꾸민 얼굴을 보니 ‘아 이제 좀 사람’ 같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무척이나 낯설지만 꽤나 보고 싶었던 얼굴.


이제 갓 백일이 된 아이는 허리에 힘이 없어 의자에서 자꾸만 기울어졌다. 백일사진을 위해 2주 전부터 하루에 5분씩 범보의자에 앉는 연습을 했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똑바로 앉아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남편과 나는 고군분투를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튤립 사운드북과 딸랑이를 흔들고 ‘울룰루루~’ 입소리를 내며 아이의 관심을 끌었다. 예쁜 백일사진을 건지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댐과 동시에 나와 남편의 재롱잔치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표정이 마음에 들면 기울어진 자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세가 마음에 들면 이번에는 곧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아. 사진만 찍었을 뿐인데 벌써 잔치를 끝낸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결국 아이의 독사진은 이 정도에서 선에서 끝내고 남편과 내가 아이의 어깨를 한 쪽씩 잡고 하나만이라도 얻어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피곤해진 아이가 보채기 시작하자 결국 이쯤에서 백일사진은 마무리하고 낮잠을 재운 후 방을 나와 찍은 사진을 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먼저 친정식구들이 방문했다. 이제는 모유수유도 안 하는 나이건만 한 솥 넘치게 끓인 미역국과 잡채, 불고기까지 한 손 가득 바리바리 음식을 들고 친정엄마와 아빠, 남동생이 방문했다. 미역국에 ‘미’자도 듣기 싫다고 그동안 한사코 거절해온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거절할 수 없었다. 즐거운 잔칫날이니까. 아쉽게도 친정식구는 딸의 수고를 덜어준다며 식사도 안 하시고 손자와 사진을 찍고 축하선물만 전달하고 가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일떡이라도 넉넉히 주문해서 챙겨드릴걸….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잔칫날의 주인공인 아이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떠나시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시댁식구가 방문하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아이를 낮잠 재우고 나와 식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싸온 미역국을 끓이고 잡채와 불고기를 볶고 김치를 썰고 백일상차림 한 쪽에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낮잠에서 깬 아이에게 다시 한복을 입히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도련님을 맞았다. 시부모님은 한복을 입은 손자가 귀엽다며 눈을 떼지 못하셨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인지 아니면 앞서 사진을 찍어봐서인지 시댁식구와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방긋방긋 미소를 잘 날려주었다.


부모님에게도 처음인 손자와의 백일은 사랑과 축하로 가득 넘쳤다. 식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에 남편과 함께 백일상을 정리했다. 무사히 백일잔치를 치른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넘치도록 받은 축하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에서 쏟아지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았다. 


그때 ‘띵동’하고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 

“백일동안 아이 키우느라 수고 많았어. 앞으로도 파이팅해! ^^” 

시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문자를 보자마자 결국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이가 탄생하여 백일이 오기까지 나는 얼마나 수많은 밤을 뒤척였던가. 아이를 달래고 재우고 먹이고 닦이고 돌보는 일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백일을 축하해주는 날이지만 어쩌면 그동안 나의 노고를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해낼 수 있다고 응원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사히 아이를 백일동안 키워낸 나에게 이것 말고도 더한 기적이 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진정 백일의 기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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