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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Jun 22. 2022

안녕. 트리안 다시 잘 지내보자.

헤어졌던 반려식물 다시 친구 맺기

트리안과 다시 잘 지내보려 한다.


트리안을 처음 보자마자 키우고 싶어졌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사실은 나무도 아니고 가지라고도 할 수 없지만-와 동글동글한 푸른 잎들이 앙증맞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해살이풀들을 키우다 보면 늘 그렇듯 자라는 모습을 사시사철 눈으로 볼 수 있는데, 특히 트리안은 줄기가 목질화 되는 과정과 새 잎이 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 동안 날마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했었다. 물꽂이에 성공해 화분이 늘어갈 때 정말 좋았다. 


하지만 어느 여름날 휴가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사이 모두 시들었다. 한 번 시들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로 물받이에 항상 물을 채워놓으려 신경 썼지만 결국 물이 부족해지게 되면 바로 죽어버리는 일이 한 동안 반복되었다. 그래서 몇 년 간 집에 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무실이 통풍도 잘되고 채광도 좋은 곳이라 식물 키우기 좋은 환경인데 화분이 없는 것이 아쉬워 트리안을 다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트리안이라는 이름이 보통 판매할 때 쓰이지만 학명은 뮤렌 베키아라고 한다. 마디풀과에 속하며 원산지는 뉴질랜드와 호주다. 빛을 좋아하지만 직사광선은 피하는 것이 좋고, 병충해 예방을 위해 통풍이 잘되는 곳이 좋다고 한다. 생육 최저 온도는 10도라고 하는데 야외에서 키우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 꽃가게에서 6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친구를 만났다. 1m 정도 높이의 화분에서 사는데 계속 가지치기를 해도 무성하다고 한다. 꽃도 피는데 아주 작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사실 트리안이란 이름은 꽃 이름이다. 작고 하얀 꽃. 언젠가 잘 키워서 실물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트리안을 사기로 결심하고 근처 재래시장에서 가장 작은 포트에 담긴 것의 가격을 물어보니 4천 원이라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모종들 가격이 올랐단다. 가격 대비 잎도 작고 색깔도 누르스름해서 구입을 미뤘다. 시장 안에 다른 꽃집들은 아예 트리안이 없고, 각종 채소 모종이 더 많이 매대에 진열되어 있다. 결국 주말에 종로 5가 꽃 도매시장에 갔다. 역시나 많은 매장에서 촘촘하고 풍성하게 잘 자란 트리안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가장 작은 것을 2천 원에 사서 오랫동안 비어 있던 작은 화분 2개에 나눠 심었다.  

포기 나누기를 처음 해봤는데 화분 둘에 나누어도 풍성하다. 서너 개로 나눠도 될 뻔했다.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새 잎을 내고 줄기를 뻗어갈 테니. 웃 자란 줄기들이 있어 잘라내 바로 물꽂이를 시도했다. 일주일간은 적응을 하는지 변화가 별로 없었다. 심은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더니 열흘이 지나고 나서부터 새 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물꽃이 한 줄기들도 캘러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캘러스 현상이란 식물체에 상처가 났을 때 상처의 세포가 분열 능력을 회복하여 상처를 막기 위해 조직이 연해지는 상태다. 이 현상이 나타난 후에 뿌리가 나온다. 캘러스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캘러스 현상없이도 뿌리가 나기도 한다. 


뿌리가 났다고 모든 식물이 다 자리잡는 것은 아니다. 스킨답서스의 경우는 캘러스 현상 없이도 뿌리가 났다. 경험 상 바로 흙에 삽목을 하면 죽는 확률이 높았는데 살아나면 물꽂이보다 더 잘 크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트리안은 바로 삽목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미세하지만 트리안의 줄기도 굵기에 차이가 있어 줄기가 튼튼해야 성장도 활발하다. 줄기를 튼튼하게 해야 오래 살릴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줄기가 튼튼하려면 뿌리에 힘이 있어야 한다. 뿌리가 없는 줄기가 튼튼해지려면 물꽂이보다는 직접 꺾꽂이가 낫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본다. 튼튼하게 살아남는 줄기만을 선택해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일단은 모두 뿌리를 내리게 한 다음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다 전자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수생식물이 아닌 식물을 물만으로 뿌리를 내리면 수생 환경에 익숙해 튼실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 이유다. 육생 식물은 흙에서 자라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사무실에서 종이컵으로 물꽂이 한 애들이 먼저 뿌리가 났다. 캘러스 현상도 없이. 하루 종일 볕이 들어오고 창문을 열고 있어서였을까? 집안에 두고 물꽂이 한 것들은 같은 기간 동안 뿌리 소식은 없었는데. 아무튼 좀 더 뿌리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려고 한다. 사실 하나는 어제 죽었다. 부주의함 때문이다. 꺼내서 뿌리가 난 것을 확인하고 물에 제대로 꽂지 않았었나 보다. 흙에 꽂았다면 하루 만에 죽지는 않았겠지? 좀 더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 수분, 통풍, 일조량 세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모든 생명은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일정기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조건에 따라 적응기간이 달라지고, 적응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물론 적응하면 한 동안은 잘 살다. 하지만 한 때 정신없이 번식시켰던 트리안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 어떤 생명체든 함께했던 이들이 떠나면 나도 같이 아프다. 아무리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었으리라. 새롭게 우리 집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소리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토질이 달라지고 채광이 달라지고 통풍 조건이 달라진 것이 식물에게는 아주 큰 변화일 것이다.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살펴보고 기다려줘야했다. 


잘 키우려면 식물의 특성을 아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적인 특성에 맞게 보살펴야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트리안이 습하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가느다란 줄기로 물을 끌어올려 잎과 줄기를 새로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항상 물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는 식물에게 건조함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단 너무 습한 것도 조심해야겠지. 숨이 찬 느낌이 아닐까 싶다.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있어야 성장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줄기가 쉽게 목질화 되는 것 또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언제 어디서부터 줄기라 하고 가지라 하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트리안이 수명대로 잘 살 수 있도록 이번에는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야겠다. 가지치기를 종종해서 대비하고 화분이 작다 싶으면 포기나누기도 다시 시도해야지. 인내심을 가지고 잘 지켜보자. 


참고사이트: 농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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