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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Jul 16. 2022

출근의 동력에서 평생 친구가 된 식물_스킨답서스

일터에서 근속 3년이 넘어가니 출근하기 위해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 2005년 즘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출근길 갑작스레 사무실 앞 꽃집 입구에 진열된 스킨답서스가 눈에 들어왔다. 흰 바구니에 삐죽삐죽 올라온 잎들에 방금 물을 맞은 듯 물기가 있었다. 이름이 궁금해졌고 결국 흰 바구니 화분을 사들고 출근했다. 스킨답서스를 들고 출근한 날, 아마도 삭막하고 적적하다고 느껴졌던 사무실에 작은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다. 5자로 된 이름이 입에 잘 안붙어 외우는데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보겠다는 마음으로 애써서 외웠다.


사무실에 다른 식물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내 돈 주고 산 스킨답서스만 친구로 여겼나 보다.  2005년부터 퇴직하던 해 2012년까지 함께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도, 학업 휴직을 마치고 온 후에도 스킨답서스는 사무실에서 살고 있었다. 육아휴직 기간에 사무실이 이전을 했는데, 그 곳은 3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곳으로 곳곳에 창문이 있어 통풍과 채광이 좋았고, 건물 입구에는 아예 실내 정원이 있었다. 우리팀 자리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이었는데,  스킨답서스는 계단 옆 책장 위에 놓여졌다. 내 자리와 아주 가까워서 일하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나의 스킨답서스를 우리 사옥의 시그니처로 생각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 식물을 키우는 곳은 내가 아는 한 우리 사무실이 유일했으니까. 


계단을 이용할 때마다 스킨답서스와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서울시청 새 사옥 1층에 스킨답서스 기둥이 생기고 종로도서관 2층 입구에도 관엽식물 벽이 생긴 것을 보며 그때 우리 사무실을 들렀던 사람이 혹시 기획한 게 아닐까 상상하며 혼자 흐뭇해한다. 


식물 돌보는 일도 일이라 누군가가 돌보라고 지시했다면 식물들을 친구로 여길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자발적으로 식물들을 돌보면서 정이 들었던 것 같다. 일하다 보면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한데 식물들을 보면서 기분전환을 했던 것 같다. 삐죽 올라온 새순이나 꽃대가 올라오면 흐뭇했다. 스킨답서스는 3M 넘게 줄기가 자랐는데, 마지막 모습이 기다란 줄기 끝에 몇 개 잎만 달린 상태여서 머리카락도 거의 없고 마른 노인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는 식물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잘 모르고 키웠다. 2005년에 산 흰 바구니 그대로 7년 동안 함께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휴직 중일 때 나 대신 식물을 돌봐준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으로부터 처음 물꽂이라는 번식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킨답서스 같은 넝쿨식물뿐만 아니라 화분에서 키우는 모든 식물들은 화분이 좁아지는 시점에 가지치기나 분갈이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큰 화분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비록 뿌리가 자리 잡는 동안에는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날 수도 있다. 줄기와 잎이 새로 나는 것이 더디거나 멈춰있기 때문에 뿌리를 뽑아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지켜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스킨답서스는 넝쿨식물이라 상대적으로 좁은 화분에도 무성하게 키울 수 있다. 화분을 갈아줘야 할 시기는 화분 밑으로 뿌리가 보인다거나 흙이 낮아졌을 때다. 분갈이를 할 수 없다면 시들어가는 줄기를 솎아내고 흙이나 영양제를 주어야 한다. 뿌리가 죽은 줄기는 상대적으로 생생한 부분을 잘라내 물꽂이로 뿌리를 내려 화분에 옮겨심어주면 된다. 스킨답서스는 당연히 물꽂이가 잘 되는데, 늘 그렇듯 잘라낸 줄기 끝이 바닥에 닿으면 썩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기다란 줄기를 여러 개로 나누다 보면 뿌리 반대 방향을 물에 꽂을 수도 있는데, 되도록이면 뿌리 쪽에 가까운 부분을 물에 꽂아야 뿌리가 내리는 것도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왜 스킨답서스를 늘 옆에 두고 싶어 할까? 우선은 환경에 예민하지 않고 잘 자라는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햇볕과 환기 조건이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죽이지 않는다. 어쩌다 죽었어도 재생산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새 잎이 나는 기간이 짧고 사시사철 새 잎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공간에 맞게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성장을 멈추지 않은 것. 줄기에 위로 솟아오를 힘은 없어도 벽에 걸면 거는 데로, 자라는 방향을 바꾸면 바꾸는 데로 햇볕을 향해 줄기차게 뻗어나간다. 


가만히 살펴보면 줄기의 굵기에 따라 잎사귀의 크기도 다르다. 한 줄기에서도 구간에 따라 굵기와 잎사귀의 크기에 차이가 있다. 외부 성장 조건에 따라 자신의 체형을 바꾸는 식물들을 보면 경외롭기까지 하다. 스킨답서스를 보며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채근한다.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2015년 7월부터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는 스킨답서스가 있다. 한 동안 정신없이 잘 자라다가 3년 즘 되서 갑자기 시들었던 적이 있다. 화분이 작아질 만큼 잘 자랐던 거다. 결국 물받이 밑으로 잔뜩 삐져나온  뿌리들이 상해서 아예 다 뽑아내고 상태가 좋은 줄기들을 골라 잘라내 물꽂이로 회생시켰다. 회생이라고 해도 되나? 뿌리는 죽었어도 줄기는 살아 있었으니 회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2018년 물꽂이로 뿌리는 내린 이들 몇 개를 심어 지금까지 같은 화분에서 키우고 있다. 정식(定植)하고 몇 달만에 새 순이 나고 1년 만에 예전의 모습이 되었다.

잎이 떨어진 마디에서 다시 잎이 올라오는 중

작년에 다시 3년차가 되어 지난 번처럼 갑자기 죽어갈까봐 화분 밑을 들어 수시로 뿌리가 삐져나왔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뿌리 하나가 나와 있었다. 눈에 띄게 시든 줄기는 뿌리가 상해 있었고 뽑아냈더니 다른 줄기들은 다시 새 순을 내며 자라게 되었다. 잎이 떨어진 자리는 그냥 늙은 상태로 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만약 이전 사무실에서도 잘 관리해주었다면 잎은 다 떨어진 줄기들에 다시 잎이 났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화분 전체를 옮길 수 없으니 유난히 길게 뻗었거나 눈에 띄는 줄기를 잘라내 발란스를 맞추고 있다. 잘라낸 줄기는 물꽂이로 뿌리를 내서 번식시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4개의 스킨답서스 화분이 추가되었다. 3개는 집에 1개는 사무실에 있다. 언젠가 사무실이든 집이든 벽 한 면을 모두 스킨답서스가 자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숲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언제든 노란 빛을 담은 연두색 새순을 찾아보는데 시간을 쓸 수 있도록. 


기회가 되면 물꽂이로 번식시킨 스킨답서스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서로 안부를 물을 때 '그 때 스킨답서스 잘 있어요.'라는 인사말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서로의 공간을 방문했을 때 스킨답서스의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 흐뭇할 것 같다. 비록 야생에서는 너무 잘 자라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라는 얘기도 있고 독성이 있어 아이들이나 반려동물들이 입에 대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한다지만 나는 모두에게 스킨답서스 하나 정도 키우는 것은 권하고 싶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더라도 무언가를 키우는 재미와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다. 삭막한 회색 공간을 초록이들이 실내 곳곳에서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 

 

스킨답서스 키우기 관련 참고 사이트

https://www.picturethisai.com/ko/wiki/Epipremnum_aureu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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