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리 Oct 26. 2023

비수기 바닷가 캠핑장

양양 지경국민여가캠핑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휴가철이나 성수기에 여행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끌벅적한 곳에 가면 정신이 가출하고 혼미해지는 탓에 조용한 곳을 찾아다니곤 한다.

이번에 찾은 양양 지경국민여가 캠핑장은 평소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바다와 캠핑장 사이에 도로가 놓여있지만 한적해서 크게 방해를 받지 않았다.

캠핑장 안에는 데크도 많고 방갈로식의 숙소도 많았다. 

피서객들이 없어서인지 관리는 전혀 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은 깨끗했고, 휴지도 있었다. 

간혹 화장실에 휴지를 제공하지 않는 캠핑장이 있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이곳의 단점은 개수대가 밖에 있고, 뜨거운 물이 안 나오고, 물이 자동으로 꺼진다는 점이다.

그것만 제외하면 가격대비 괜찮은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바닷가 앞에 텐트를 피칭했다.

뜨거운 여름이 훑고 지나간 바다는 고요했다.

이제 울집 강쥐도 제법 캠핑을 즐기는 듯하다.

저러고 누워서 꼼짝을 안 한다. 

암... 캠핑의 묘미는 게으름이지. 

즐거운 캠핑이 되기 위해선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 매너 타임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캠핑은 밤새 놀고먹고 떠드는 거 아닌가?

우리 세대엔 그게 당연했다. 

밤새 진탕 마시고 떠들다가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해장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매너 타임(21시~23시 사이)이라는 게 있어 늦은 시간엔 떠드는 게 금지되어 있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쉬러 왔는데 옆에서 밤새 떠들면 얼마나 스트레스일까.

이곳에서 그걸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옆 텐트에 커플이 왔다. 손님 커플까지 4명이 술을 먹다가 손님은 가고, 커플만 술을 마시는 듯했다.

근데 갑자기 여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더니 우리 텐트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하필 우리 텐트 쪽으로 와서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난감하다. 

조용히 하라고 할 수도 없고, 나가서 울지 말라고 달래줄 수도 없고.

남자가 와서 데리고 가주면 좋으련만, 남자는 술만 마시니 원.

한참을 울던 여자가 자기 텐트로 돌아갔다. 

다행이다. 이제 끝났겠지, 자려고 누웠다. 

근데 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자가 우리 텐트 옆으로 와서 또 대성통곡을 시작한 것이다.

우린 깜깜한 텐트에 나란히 누워 여자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쥐 죽은 듯.

가슴속에 맺힌 게 많은지 꺼이꺼이 한참을 울다가 자기 텐트로 돌아갔다. 


날이 밝았다.

옆 텐트에선 여자가 울고, 하늘에선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치고.

그날은 거의 뜬눈으로 보내야만 했다.

아침에 이부자리를 정리하며 남편과 투덜거렸다. 

우리 캠핑 왜 왔니? 편한 집 놔두고 왜 이 고생이니?


텐트를 열고 밖으로 나온 순간, 불평불만은 쏙 들어가 버렸다.

와... 바다다. 

밤새 생채기 났던 마음이 바닷바람에 자연 치유되는 기분이다.

너무 좋다. 역시 오길 잘했어! 


이것이 캠핑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름마저도 아름다운 달리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