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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수정 Apr 13. 2024

겨우 이 정도의 행복

결핍과 행복 사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요즘은 참 많이 행복하다.


오래된 구축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보니, 단정하고 반듯하게 정성스럽게 마감된 방구석 모서리가 그렇게 행복감을 준다. 오랜만에 구매한 하얗고 폭신한 욕실발판 따위가 그렇게 행복하게 한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온 한두달, 적당히 익숙해진 거리이지만 아직은 약간 낯선, 그런 애매한 설레임이 남아 있어 골목 곳곳을 눈으로 꾹꾹 눌러 담는 재미가 있다. 공기와 처음보는 동네가 주는 새로움이 행복하다. 


직원들과 고민 끝에 선택한 신중한 점심 후 희안하게 배부를 때 더 마시고 싶어지는 크림이 두둑한 아인슈페너 한 잔 들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일할 맛을 주는 매직같은 길이다. 한참 업무보느라 모니터에 빠져 지금이 몇 시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을 즈음에 문득 고개들어 보이는 창밖 하늘이 유난히 맑고, 마냥 푸르기만 할때, 정말 시원하다 높다 느껴질 때, 공간과 시간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방에 꽂힌 때묻은 책들, 원하는 책을 보고 싶은 책을 사서 볼 수 있음이 행복하다. 저축통장보다 든든하고 내적 충만감을 준다. 조금 늦은 출근을 해도 되는 날이면 서두르지 않고, 약간 늑장을 부려도 된다는 10분의 여유가 그렇게도 행복하게 한다. 


바쁨과 고됨과 열심 사이에서 빠듯하게 채워온 한 주를 마친 금요일 저녁엔 브랜드 없는 아무 치킨일지라도 맥주 한잔과 곁들인 그 맛이 얼마나 짜릿한지 세상을 다 가진 만족감을 느낀다. 머리가 자라면 머리가 자라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으면 그 웃음이 좋아서 살만하다 느낀다. 가끔은 모든 방해로부터 분리되어 혼자있을 수 있을 땐 그래서 편안하고 행복하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갈때 무의식적으로 한결 얇아진 옷을 꺼내입을 때, 공기가 달라짐을 느낄 때 다시 그 계절이 왔음을 알아차릴 때 그렇게 심숭생숭하니 행복하다. 


내 오감을 조금만 예민하게 들추어내면 다양한 곳에서 무심한 상황에서 그렇게 스치듯 살짝쿵이지만 제법 진한 행복'감'을 느낀다. 시간에 쫒겼기에, 열심히 일하는 수고가 있었기에,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었기에.. 이런 결핍이 있었기에 지금 누군가에겐 당연할 수도 있는 순간과 상황이 이렇게 행복을 주는게 아닐까. 그렇기에 이젠 어떤 무언가의 결핍을 느낄 때 약간 미소지을 있는 틈이 생겼다. 조금만 기다려보면 조바심 뒤에 따라올 행복감을 미리 스포당해서 라고나 할까. 나의 내일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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