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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r 08. 2024

새 학기를 준비하는 아둘맘의 자세

- 생각하지 못한 황당무계함 -


이번이 세 번째.

의자가 부서졌다. 몹시도 가여운 모습으로.


아이는 의자가 변했다했고 철제기둥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더라. 난 왜 의자의 마음을 알 것 같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저앉고 싶을 만큼.






명의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 둘철없는 나를 키우고 있고.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된 아이와 초등학교 5학년이  아이. 나는 여동생이 있으므로 남자아이를 오랜 시간 겪어본 적이 없고 이러한 삶을 감히 짐작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한사코 말한다. 저렇게 숭굴숭굴 아이들은 처음 보았다고. 나는 왜 이 문장을 듣고 다시 들어도 힘껏 도리질을 하게 되는 걸까.


남자아이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라기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두 아이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일 테지. 여하튼 이런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매일이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자 나의 삶의 질감마저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나 할까.



6년 전, '학교'라는 곳에 처음 보낼 땐 튼튼하고 멋진 학용품으로 신중하게도 골랐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물통이 사라지더니 풀, 테이프, 연필 등 필통 안의 물건들이 도망치듯 사라졌고, 우산은 가져가는 대로 행방이 묘연했다. 분실함에 들르는 일은 그들에게 매일일과였으며 애써 이름표를 붙여보아도 그뿐. 괜히 고생스럽기만 하더라.


학교를 처음 보낼 땐 깨끗한 옷으로 한참을 골라 준비해 두었건만, 급식이 얼마나 맛있는 건지 옷이 스스로 씹어먹은 듯 잔뜩 묻은 얼룩들, 그 색이나 모양새만 보아도 점심 메뉴를 가늠할 수 있었다. 또한 음식물이 잔뜩 묻은 얼굴을 보면 양치질보다 긴급한 일은 세수인 듯했다.


봄에 입은 옷은 비슷한 날씨를 가진 같은 해의 가을이라도 입을 수 없었다. 신발도 마찬가지. 입구에서부터 들어가질 않았다. 먹는 것이 어깨와 발로만 가는지 한 일이었고, 언젠가부터는 한 계절에 어두운 색의 옷 세벌과 신발 한 켤레로 버텼다. 


하나 옷엔 작은 구멍들나기 시작했고, 바지는 찢어졌으며 신발은 해져 발의 안쪽 살에 생채기를 내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겨우 몇 개월 사이에.


양말이 몹시도 더럽고 젖어있기에 살펴보니, 산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실내화 바닥에도 불쌍한 형태로 구멍이 났더라. 세상에 양말만 구멍이 나는 줄 알고 기워 신곤 했었는데 실내화 바닥에도 구멍이 생겨날 수 있었구나.


학교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즐겁니.

행복하니.




눈이 나빠 안경을 끼기 시작하고는 아이가 자러 들어가면 잊지 않고 닦아두었다. 온통 지문으로 뒤덮여 차라리 안경을 쓰지 않는 편이 더 잘 보일 것 같았. 그러다 언젠가부터 아무리 닦아도 뿌옇게 닦이지가 않았다.


안경을 맞추었던 곳으로 가 닦아주시길 부탁드렸더니, 이것은 모두 흠집이 난 거라며 사고가 났냐고 물으셨다.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안경알을 샀고 다시 샀으며 다시 다. 6개월 정도 지나고 보니 검은 안경테는 흰 테에 가깝지만 온전히 지워지지 못한 채, 호피무늬를 하고 있더라. 마저 깨끗하게 벗겨 사용할까 잠시 고민하다 진지한 사과를 건네오는 아이의 눈망울을 보곤 사라락 다시 사고 말았다.




170cm 중반의 키에 70kg 반의 몸무게, 150cm 초반의 키에 5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가진 그야말로 먹는 일에서만큼은 진심인 아이 둘.


머리카락은 철사처럼 두껍고 콩나물처럼 빨리 자랐다. 일 년에 한 번 새해가 되면 단발 정도의 길이둑 자르러 미용실에 들르는 나와는 달리 3주에 한 번씩 미용실을 방문하니, 우리 집 미용실 VIP는 이외로 세 명의 남자 덕분인 것이다.


그 철사 같은 머리카락들은 밤마다 사투를 벌이는 건지, 아침마다 성이 난 머리카락이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머리를 감거나 물을 묻혀 빗질을 해보라고 권유하지만 나의 문장스스럼없이 그들의 오른쪽 귀로 들어갔다 왼쪽 귀로 정갈하게도 빠져나온다.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눈을 감은 채로 밥을 잔뜩 먹고는 이를 닦으러 간다.  . 세수를 하라고 다그치면 그제야 온갖 변명들을 나열하며 3초에 가깝게 물을 묻히고 나온다. 양치와 세수를 한 팀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지난한 일이라는 것을 다. 너희들에게만큼은.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니, 그럴 수 있나.





너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너희들의 하루가 몹시 궁금하다. 나의 상상 속 영역을 넘어서므로. 그럼에도 보고 싶지 않다. 두렵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로 처음 등교하기에 준비할 것이 많을 줄 알았지. 하나 이제 서털구털한 너희들의 성정을 알기에 물질적으로 크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무슨 일들이 펼쳐질지 내 마음만 준비해 두면 될 일.



방학 동안엔 더욱더 힘을 내어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골라 다시금 알려주니,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북따북 읊어내더라. 그럼 앞으로는 조금 달라지려나 기대했건만, 친구들과 농구를 한다며 육중하게 뛰어나가는 아이, 나는 그의 입 주변이 발갛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농구공을 챙겨 가지 않았다며 급히 돌아온 . 그런  거울을 살포시 건네었건만, 몹시도 잘 생겼다며 홍야홍야한 춤사위만 남기고 사라졌다. 

입 주변이 활활 타오르는 채로.



매일이 행복하다는 너, 벌써 인생의 10분의 1이 넘게 살았다며 아쉬워하며 남은 생에 조바심을 내는 너.

나는 그래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알지 못하겠다.


너처럼 살아가야 행복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부디 네가 가르쳐주렴.

네가 가장 잘 아는 그 '행복' 말이야.

대신 난 '세수하는 법'을 한없이 가르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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