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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Feb 28. 2024

이런 새해맞이는 처음이지.

- 괜찮지, 이런 시작도 -


12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1월은 더욱 처참하게 잃어버렸다. 벌써 2월의 끄트머리라니. 여전히 차갑고 음울하며 어둡고 축축하다.




"어떤 게 불편하세요?"


이다지간명하게, 잘도 정제된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 "목이 따가워요."나 "눈이 잘 보이지 않아요."와 같이 불편한 증상을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운 곳.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무엇이 불편하지 설명하기 어렵다면 아직은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은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마음대로. 그런 다음 이것을 꾹꾹 르고 뚤뚤 뭉쳐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변명으로 만들어서는 언제나 맨 앞에 꺼내두었다. 마음 편히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시간은 지날 테고 그저 견디다 보면 어둡고 진득한 것들이 무사히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믿었고 그러길 바랐다. 그러다 보면 덧거친 마음 닳아 속절없이 뭉툭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또 이따금 숨 쉬는 일이 버거워졌예전처럼 한구석에 웅크려 지냈다. 순식간에 다리가 야위고 걷는 일마저 힘겨워다.


일 년이 넘도록 그토록 열심히 글이나 그림, 산책, 명상 등 좋은 것들로만 모아 겨우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고작 며칠 사이 모든 것이 빳빳해질 정도로  안의 괜찮은 것들을 남김없이 앗아가 버렸다. 이내 말린 장작처럼 몸과 마음이 퍼석해지고, 말라서 갈라진 틈 사이로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하필 명절을 앞두고.


해질 무렵, 집 앞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나섰다. 감히 연휴기간 동안 무사히 보낼 자신이 없어서.


지난달부터 뼛속까지 잠식한 우울과 눈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 하나 잘도 숨기며 지냈는데 긴 연휴기간 종일 감추어내는 일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물론 병원에 갈 자신도 지만 전자에 더욱더 자신이 으니 용기 내어 달려 나갈 밖에. 




"어떤 게 불편하세요?"

"며칠만 눈물이 나오지 않게 도와주세요. 단단히 멈춰줄 수 있는 약으로 부탁드립니다."


저런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짧지 않은 시간, 무엇을 들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되니 힘을 빼라고, 숨을 천천히 쉬라고도 들은 것 같은데. 그와 같은 당장의 행동한 지시사항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약부터 먹었다. 약 먹는 일 자체가 싫은 것은 결코 아니다.


약을 처방받기 위해 방문해야 하는 병원이 어려울 뿐.

여전히 말이 내어지지 않는 답답함 때문인가, 역시나 달라지못한 나에 대한 실망감인가, 별 것 아닌 일로 유난 부리는 것 같은 수치심이나 미안함인가, 스스로 가두어 놓은 이곳에서 평생 내가 날 괴롭힐 것 같은 공포감인가.


책 사이에 약봉지를 잘 숨겨둔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사랑스럽게 물어오면 무심한 듯 기분 좋은 미소로 설명해 낼 자신이 없으므로.


약봉지 속 내 이름이 인쇄된 투명한 약봉지를 속절없이 구긴다. 그리고 약을 삼키고 나면 쓰레기통 맨 아래까지 파내어 보이지 않게 감추어 버린다. 그렇게 꼬박꼬박 잘 삼켜낸 덕분으로 무사히 명절을 보냈다.




눈치가 빠른 그 덕분으로 차례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나만. 옷을 입은 채로 거실 한 모퉁이에 앉아 시간의 흐름을 느껴본다. 전화기도 꺼두고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바깥세상의 어떤 소리나 움직임도 곁에 오지 못하도록 창문을 단단히 닫아둔다.


한참 동안 내 몸을 그곳에 두고 마음도 버려둔다. 처음 얼마간은 미안함과 걱정 따위의 어스름한 감정들이 밀려와 마음이 찌뿌듯하다 이내 슬퍼진다. 시간이 조금 더 더해지면 그제야 마음에 고요가 스민다. 까마득한 어둠이 발끝까지 내려오면 불을 켜는 일도 그만둔다. 그렇게 무한한 적막과 평온함에 자오록하게 길들여진다. 다음날도 마찬가지.


시간을 고스란히 버린 건가, 아니. 시간과 놀아준 거지. 늘 내 곁에서 고요히 모든 것을 내어주던 시간에 기꺼이 함께해 준 .


한참 고요함을 꾸덕하게 삼키고 나면 불필요한 감정은 덜어지고 중요한 것만 남더라. 이번 명절은 그렇게 약도 삼키고 고요함도 삼키며 허기지게 보냈다.


조구마한 약 두 알. 그것에 처참하게 다.

아니 거나하게 신세를 졌다. 무한히 감사할 뿐.





올해는 병원방문으로 새해를 열었다. 내가 그리도 어려워하던 일로 시작했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지.


예전의 나였다면 우울에 더욱 농도가 짙은 우울을 더해 잠식되어 있었을게다. 하지만 용기 내어 또박또박 병원도 가고 꼴깍꼴깍 약도 챙겨 먹고 있으니 분명히 달라진 거라고. 믿고 싶다.


지금껏 해오던 나를 다독거리는 일과들이 요물 같은 약까지 더해지면 훨씬 나아질 테지.


전에 없던 특별한 새해맞이를 했으니, 전에 없던 특별한 연종을 기대해도 되려나.




그래. 생각났다.

"애쓰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냥 삽시다. 그냥 살아요."


의사 선생님이 그랬지. 애쓰지 말고 그저 차곡차곡 살아보라고. 그럼, 그래야지. 전과 다름없는 특별하지 않은 하루들에 하많은 생각들을 흘려보내며 소복소복 겪어봐야지. 과연 어떻게 되나 한번 살아보지 뭐.  그저 삐딱선을 꿈꾸는 고분고분한 소심이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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