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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y 29. 2024

어른의 세계, 꿈을 꿔도 되나요.

- 그것마저 사치인가요 -


'아직 꿈을 꿔도 되나요?'라는 노래의 가사말에 한참을 생각했다. 꿈을 안고 도달한 어른의 세계에서 과연 현실적이지 않은 꿈을 꾸어도 되는가.


어른이 되면 아물아물하게나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조금은 마음대로, 어쩌면 조금 더 웃고 있거나, 시간적으로든 마음적으로든 조금은 더 여유롭살아가 있을 줄 알았다. 당연하게도. 어쩌면 바지런히 믿었던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가엾도록 치열한 어둠 속에서도 기꺼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겠지.


그래서 그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도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애틋할 때가 있다.


나로 비롯된 가족에 대한 책임감, 보이지 않게 날로 아픔을 더해가부모님에 대한 애잔함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몸의 고단함. 부디 가뿐하고 행복한 곤고함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삶은 쉽지 않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껏 언제가 가장 힘들었어?"
무심코 당신이 물어왔.


소중한 사람을 순식간에 잃었던 일,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의사들의 설명을 몰래 귀에 모아담을 때, 정신을 잃었 병원에서 눈을 던 때, 소리가 목구멍으로 내어지지 않아 처참하게 고립되었던 나날들, 죽는 순간을 상상하며 살아온 무수한 시간들을 제치고 한 가지가 떠올랐다.


"꿈을 잃었을 때."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생각하며 달려온 곳에 그런 것은 다는 것을 실감했 순간, 그때의 절망감, '희망'은 단어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상실감에 으스러졌다.




어느 면접의 모범답안처럼 근사한 사람이 되어 최선을 다해보겠다며, 부모님의 기대에 나의 열정마저 더해 직장인이 되었다. 처음 오랫동안 거친 말을 들으며 마지막까지 겁박당하고 위협당했던 날, 그리고 그날 이래로 그와 같은 날을 빼곡히 채우고서야 알았다.


허망함의 실체조차 알고 싶지 않았다.  무엇도 절하게 모르고 싶었고 어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즐거움이 사라졌으며 눈부시게 밝은 것들은 빛을 잃었다. 다시는 착하게 켜지지 않더라. 이따금씩 나를 찾아오던 천진난만온기도 감각할 수 없었다. 


무엇도 전의 세계만큼 따스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치열하게 아등바등거려 보아도 이런 날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사실만 하루하루 깊숙이 새겨졌던 그때, 꾸역꾸역 살아냈던 삶에 대한 절망감이 까무룩하게 선명하다.


희망을 상상하듯 절망마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고, 아이들에게는 그저 보여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꿈꾸고 원하는 것을 하다 보면, 그것이 언제고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어코 알게 해주고 싶었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한 무책임함으로 뒤덮인 허황된 문장을 현실로 감각하게 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나를 위해 더욱 간절했을지도 모르지. 도무지 느껴지지 않'희망'이라는 글자를 샅샅이 분해하여 낱낱이 곱게 펼쳐서는 눈앞에 명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전히 보고 싶다. 간절하게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족들이 깊이 잠들고 나면 검게 물든 거실로 나와 환하게 불을 켠다.


캄캄한 밤, 혼자 불을 켜는 일. 빛나는 것들을 남김없이 잃어버린 자가 스스로 희망을 피우는 일이다.


집안일을 하느라 옴츠렸던 몸을 오뚝하게 세우고, 모서리가 둥그런 책상 앞에 앉아 숨 하나를 깊게 들이켰다가는 두 숨 크게 내어준다.


세밀한 단어로 조밀하게 꿈을 단정하며 조바심 내지 않으려고, 추상적인 단어를 환상적으로 조합해 가며 허황토록 허망한 꿈을 꾸지 않으려고.

더욱 속도를 늦추고 보다 깊이를 더해 숨을 쉬어본다.


그렇게 나의 꿈의 시작은 언제고 마디가 숨이다.



꿈꾸는 일은 결코 사치품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어른의 세계에선, 적어도 내게는, 쉽게도 사치품이 되고 만다. 


하나 어른의 몸을 입은 채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오늘도 현실적이지 못한 꿈을 비밀히 꾸고 있다. 색을 잃은 무채빛의 검박함을 겹으로 덧입은 채, 새까맣게 드리워진 밤마다 제멋대로 사치를 부린다.


혹여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무의미에 가깝도록 헛되고 부질없이 보인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꿈'이나 '희망' 따위의 총총한 것들을 구현해 내는 유일한 방법이자, 가진 것 없이 흐물흐물해진 내가 부릴 수 있는 대단사치인 것이다. 




이제야 꿈꾸기를 시작한 나는, 매일 밤 어울리지 않게 사치스러운 꿈을 꾸는 나는, '희망'이라는 글자를 아슬아슬하게 그려내는 중이다. 



밤이 깊어질수록 꿈빛 짙어진다. 달빛에 꿈빛마저 더해질 때면 가뭇없이 아득한 희망을 어루만지곤 한다. 아무것도 그려내지 못한 밤이라도 상관없지. 적막함에 갇혀버린 '희망'이라는 글자를 보듬고 달래는 쓸쓸한 시간을 그저 사랑한다.


고이 그리고 감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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