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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an 07. 2023

그 말은 하지 말아요.

- 내 모든 것을 줄게요 -


언젠가 누군가가 그랬다.

"넌 좋겠다. 부모님이랑 멀리 떨어져 살아서.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거니까. 그건 힘들고 벗어나고 싶을 때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잖아."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구나 싶었다.

힘들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난 그곳을 떠올려본 적이 없기에.

그곳은 그럴 때에는 절대 가선 안 되는 곳이었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의 사이 즈음 울산을 방문한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면 얼굴만 보아도 어떻게 지내셨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전화통화의 주파수로 전해지지 못하고 내게 철저히 숨겨진 시간들. 밀리고 밀린 그것들을 확인할 때 몹시도 슬펐.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말을 쉬지 않고 내는 나의 아이 둘이  시간조차 시끌벅적하게 만들어대었고 덕분에 나의 걱정과 슬픔이 그 틈에 가리어 울컥하는 마음도 숨겨놓을 수 있다.




지난해의 마지막날, 엄마와 마주 앉아 집안에 필요한 것들을 체크하는 동안 말씀하셨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매일 그 생각을 해."


오랜 시간 수도 없이 들었고 그렇기에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저장된 문장이다. 덕분에 나 또한 같은 생각을 오래도록 머금고 살았, 일기장에 고이 적어 버려 낸 적도 었었다. 그조차 누가 볼까 며칠 뒤 찢어버렸.


감히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알기에.



친구였다면 오히려 내가 찬찬히 말을 내어 줄 수 있었을게다.

"왜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어. 아니 모두 그런 때가 있는 거야. 이번엔  차례구나. 다 잘 지나갈 거야. 너무 힘들면 병원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때?.." 등 무슨 말이라도 내었을게다.


하지만 엄마라서.

나의 엄마이기에 감히 그러지 못했다.


나는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시간을 당신과 함께 살아내었기에 말로 낼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을  것 같다. 나에게 밖에 내지 못하어쩌지도 못하는 그 마음저도 나는  것 같. 아니 안다.

그래서 신에게 쉬이 위로나 조언을 건넬 수가 없다.


어렵게 낸 말들이 오히려 당신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닫히는 입에 무력감이 더해져 거대해진 우울의 무게에 둘 다 잠시 압도당했고, 세상은 순간 멈춘 듯했다.


달려와 안기며 아이가 만들어낸 세찬 바람에 정신이 번뜩 나고 다시 부모님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확인해 가며 자잘한 것들을 주문했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고민하면서.



그날 밤도 언제나처럼 잠들지 못했다. 엄마는 아직도 이런 밤들을 보내고 있는 걸까? 내게 힘이 되어 보냈던 책들과 내가 남겨두었던 편지들이 엄마의 마음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도울 수 있을까? 결론이 없는 끝이 나지 않는 생각의 고리에 괴로웠다.



엄마의 마음속 우울구름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떻게든 가져오고 싶다. 엄마가 뱉은 그 말이 내 귀로 들어올 때, 내 귀를 활짝 열어둘 테니 그 우울구름이 말과 함께 끌려들어 오면 좋겠다.


우리의 길지 않은 삶에 마지막은 부디 신이 나셨으면 좋겠는데. 부디 새해에는 이제부터라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항상 건강하시라고만 말씀드렸다.

억지로  기운찬 목소리로. 그것이 내게 옮겨오길 간절히 바라며 차가운 두 손을 꼭 당겼다.




나도 신과 같은 자리에 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


그들에게만은 세상 제일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내게 아직 남은 우울구름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 해도 그들에게만큼은 조금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때 내게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힘들고 벗어나고 싶을 때 마음껏 달려올 수 있는 곳이 조금 더 노년이 된 나의 집, 나의 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오늘도 용기 내어 즐거이 삶에 감사하며 살아볼 테다. 그리고 나의 이 감사함과 즐거움이 당신에게 꼭 전해지길 간절바라며, 그 바람과 함께 나는 오늘도 눈물 가득히 웃으며 살아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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