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ㅡ Jun 12. 2023

슬픈 거짓말쟁이.

- 눈부신 여름을 맞이하는 중 -


유난 힘에 부치던 사랑스러운 봄이 지나갔다.

아니, 지나가는 중이다.




엄마가 원인을 모르는 질환으로 울산에 있는 병원을 전전하다, 올해 서울의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제야 이유를 찾아내어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원인을 찾지 못했던 터라 6개월 동안 대학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입원과 검사를 반복해야 했고, 덕분에 엄마는 울산을 떠나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


아픈 엄마가 쉴 수 있도록 휴일이 끼어있는 때에는 남편이 아이들과 시댁에 머물렀으므로 우리는 집이든, 입원실이든 오랜만에 오롯이 우리 둘이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오래도록 조용히 우리 둘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대학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신없이 살다, 그야말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픈 엄마가 나의 집에 머무른다고 하니, 나는 일주일 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계절별로 옷을 정리하고, 옷, 이불 세탁, 냉장고 정리부터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집에 있었던 물품처럼 구비해 두고, 집안 모든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박박 문질러댔다. 아픈 엄마의 마음에 어떠한 근심거리도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계시는 동안 아이들 일정을 확인하여 시부모님께 부탁을 드렸고, 서울의 유명한 곳을 골라 엄마와 매일 2만 걸음 이상을 함께 천천히 걸었다. 극심한 이명과 불면증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엄마의 루틴이 깨지지 않도록 엄마가 머무르는 동안 우리의 일정도 미리 짜두었다.


매일밤 둘이 침대에 누워 언제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엄마와 새벽 3시 넘어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내가 혹여 잠들었다 눈을 떠보면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불 꺼진 방에 우두커니.

"잠이 안 와서. 방해되지? 내가 나가서 좀 걷다 올까? 근데 길을 몰라서.."

"그럼 같이 나가면 되지."

그러고는 다음날엔 조금 더 많이 걸어도 보았고 컨디션이 좋지 못한 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난 무서웠다.


힘들지만 힘든 티가 절대 나서는 안 되는, 힘에 부치지만 사랑스러운 봄날의 시간들. 내게 올해 봄은 그랬다.



그날도 어김없이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터였다. 듣고 들었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엄마가 울기 시작했다.

"... 그래서 내가 자식에 대한 정이 없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거짓말이다.

엄마는 슬픈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간절했던 일이 있다.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고 음악 한곡을 마음 편히 끝까지 듣고 싶었다. 알레르기 쇼크 증상과 수면 중 잦은 구토숨이 막힐까 봐 아이가 자는 중에도 안심할 수가 없었기에 그 대단치 않아 보이는 일이 간절하더라.


어느 날 겨우 재우고 왼쪽 이어폰 한쪽을 끼우고 음악을 듣다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멈추고 말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다시 '정지' 버튼. 한 곡이 왜 그렇게 길던지 끝까지 마음 놓고 온전히 들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바삐 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의 모든 감각과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 그렇게 부모는 자신이 가진 시간과 모든 감각을 내어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자는 아이가 물소리에 깰까 봐, 내가 보이지 않아서 놀랄까 봐 그저 곁에 고요히 머물렀다.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난 내가 그 순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이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었던 것이라고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시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고. 그러니 엄마는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 또한 나의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엄마라고.




나의 모든 감각과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 그것은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어가는지도 보지 못하고 내가 얼마나 아픈지도 스스로 느끼지도 못한 채, 나의 눈, 코, 입, 감촉 모두 아이에게 향해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열정과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들을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살피며 아이들의 열정 가득한 시간에 더해주는 일.


돌이켜보니 나의 삶이 아이스크림 퍼내듯 한 스쿱 퍼내어져 있더라. 하지만 이렇게 내어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어 더 내어줄 수 없음에 미안할 뿐, 도려내어진 공간만큼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부디 도려내어진 아이스크림만큼 아이의 마음에 달콤함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지금껏 엄마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엄마가 숨지 않고 나의 앞에서 울었던 적도 결코 없었다. 그저 보통의 가족처럼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정도. 각자 숨겨둔 우울함을 건드리지 않도록 일상의 가벼운 안부만 나누었을 뿐. 어쩌면 살아가는 일에 치여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말하는 일에 가장 자신이 없는 나는 부디 어렵게 낸 엄마의 말에 붙은 상처가 고스란히 아물어져 그녀의 마음에 가닿길 바랐다.


그리고 이것이 시작이길 바랐다. 엄마가 만들어낸 잘못된 생각과 오해로 단단히 쌓아 올려진 후회와 우울들, 그것들을 꺼내어 내가 고이 다듬어 다시 넣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천천히.


아직 나는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나의 우울들을 버려낼 시간과 조물조물 고이 양념해 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던 나는 사랑스럽던 올해의 봄날, 숨어서 많이도 울었다. 천천히 함께 보듬어 가고 싶다. 단단한 사람이 되어 당신에게만큼은 대단하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인플루언서, 그것이고 싶다.



, 그럼 그녀를 데리러 천천히 출발해 볼까.

작가의 이전글 같은 직장 배우자 + 나만 탈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