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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Feb 15. 2024

이별하는 방법

- 사랑하는 방법 -


이별은 언제나 어렵다. 

시간에 떠밀려온 수많은 이별들이 겹겹이 쌓이고 하릴없이 겪어 그것들을 소화시켜내지 못해서인가. 안을수록 어렵다.




진료가 끝나고 돌아가던 길, 늘 타던 버스에 올라선 엄마가 버스기사에게 묻는다.

"이거 집에 가요?"


어릴 적 그랬다면 한바탕 웃어내다 핀잔도 건네며 잊어버렸을 텐데. 그저 슬펐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종류의 일들이 즐거운 에피소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



눈이 그친 자리에 그늘과 그늘 틈에서 녹지 못한 눈덩이가 울상으로 남았더라. 당신은 평생 눈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며 두덕두덕 지저분해진 눈덩이마다 올라가 활짝 웃었다. 다행히 나도 웃고 있겠지.  슬펐다. 조심성 없이 수선거린다며 말리던 당신은 없었다.


이렇게나 변한 당신을 이제야 알았다.



만날 때마다 팔짱을 깊숙하게 끼고서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몇십 번이고 다시 들려준다. 다행히 나는 당신의 기분맞추어 웃거나 대신 화를 고 있겠지. 하지만  속의 나는 그저 슬펐다. 그 이야기의 끝을 알고, 그 이야기에 이어질 다음 이야기도 알고 기에. 조금 슬펐다.


당신이 같은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려준대도 지루하지 않지만, 당신이 내게 수없이 속삭였순간들기억해내지 못하는 일.

그것들에 나의 마음은 깊이 허수해지고 만다.


처음 이야기하듯 순식간에 그 너머의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 금시에 흥미진진해진 당신에게 나는 여싯여싯거리다 여러 번 힌트를 보내지만.

당신은 결코 알아채지 못한다.


별일 아니지. 슬플 것까지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당신이 오르고 나면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며 돌아선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어코 눈물이 떨어지고 다.


20년도 넘게 겪어온 일. 같은 장면처럼 보이지만, 매번 눈물의 이유는 달랐고 우연히 뺨을 타고 입속으로 들어온 눈물맛도 달랐다.


이번엔 묵직한 슬픔의 맛.

그것을 달래 보려 찬바람이 유난히 세찬 곳을 찾아 몸이 에도록 걸었.



만남의 횟수나 물리적인 거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몹시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짧게 나누고 길게 이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긴 헤어짐 뒤 달라진 당신의 부분을 마주하는 일은 생경하리만치 슬프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것들, 뭉툭한 내가 서름히 놓쳐버린 것들을 마주하는 일은 조금 두렵다.



배움에 느린 편은 아니건만, 이별하는 방법은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익숙해지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고. 배우고 싶지만 결코 배우고 싶지 않은, 몹쓸 두 글자.


이별의 시간에 비례하여 곱절로 멀어지는 느낌. 삶의 뒤로 갈수록 가까워질 줄 알았건만, 더욱 속도를 더해 달아난다. 그럼 내가 더 빨리 달려가 당신을  잡고 함께 걸어야지. 지금보다 더 멀어지지 않도록 내가 덜 뭉툭해져야지.




깊은 밤, 불면에 시달리던 당신이 말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스럽게 생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마지막에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럼."


간결하고도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의 마지막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같은 문장을 청자의 입장에 서서 듣고 보니 쉽지 않군.


그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유난스럽지 않게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알싸하게 저려오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힘이 들었던지 눈물이 배어 나왔다.



좋은 곳에 가면 당신을 위해 마음에 담아둔다.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당신과 조우할 때 곱게 보따리를 풀어내려고. 내가 아껴둔 좋은 곳에 함께 가 당신의 향기를 입혀 추억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당신과 내가 빚어내는 행복이지.


그러면 이제 당신은 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추억할 거리가, 당신의 추억 보따리가 안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면 당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겹쳐지지 않을 테니.



올해도 당신을 위한 들을 한껏 모아보아야지. 장소든 시간이든 책이든 그 무엇이든. 당신과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며 남은 시간들을 헤아리지 말아야지. 

묵직하게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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