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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n 21. 2024

용돈을 받았고,

- 한참을 울었다. -


사직을 한 지 3년. 


의 월급을 알고 계시던 부모님은 나와 입사동기인 남편의 외벌이로 인한 우리의 형편을 걱정하셨다. 식욕이 충만한 두 남자아이, 더하기 서울살이. 


간혹 특별한 날이면 보내드리던 소박한 용돈마저 고스란히 반환하셨고, 우리는 알아서 살 테니 너희끼리 잘 살라는 말을 덧붙여 문자로 보내주셨다.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알면서 때마다 받는 돈은 마음이 불편하다고. 나중에 언젠가 기꺼이 받을 수 있는 때가 오면 감사히 받겠다고. 그 마음을 선명하게도 알 것 같아서 다시 보내지 않았다.


당신 마음의 어느 조각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다닐 때도 통장 하나, 신용카드도 하나뿐. 그런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고, 미련스럽게도 그만큼이나 관심이 없었다.


사직 후엔 비상용으로만 나의 카드를 사용했기에 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입출금 사항이나 결제내역 등의 알림조차 설정해놓지 않았기에 몰랐다. 내가 용돈을 받은 도.


'돈 보냈어. 배우고 싶은 거 배워. 부모 생각해서 참고만 살았잖아. 이제 너만 생각하고 명랑하게 살아. 잘 지내.'


나의 생일은 수개월이 남았고 우리 모두에게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3월의 어느 날, 얌전히도 도착한 부모님으로부터의 메시지. 그리고 묵직한 용돈. 

그제야 확인했다.





혼자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수년을 각종 아르바이트로 빼곡하게 시달렸지만 고단함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릴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조금 더 노력하면 소담한 밥 한 끼라도 대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직장에서 험상궂은 일들에 시달릴 때에도 그러한 생각으로 견뎠다. '가난' 때문에 서로에게 고운 말 한번 나눌 겨를도 없이 살아온 것만 같은 부모님에게 더 이상 그 '돈' 때문에 고단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고달픔 중에서 그 부분만이라도 도려내어 '안온'이라는 두 글자로만 채워드리 싶었다.




'공무원', 그것이 부모님에게는 어떤 것보다도 최선의 안정감을 안겨주는 듯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던 , 말수가 없던 아빠는 문을 꽁꽁 닫은 채로 알 수 없는 노래를 크게 불렀다. 그리고 동생이 합격한 날도 그랬으며, 우연찮게도 우리 두 딸은 직렬은 다르지만 모두 공무원의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했다. 


공무원인 두 딸과 공무원인 두 사위, 부모님의 비밀안식처였 마음속 공간을, 돌연 불안하게 만든 것이 '나의 사직'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사직은 거대한 용기가 필요했다.


이곳을 무너뜨리고 나서도 당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무런 묘약을 찾지 못한 채 뛰쳐나왔고, 3년이 흘러버렸다. 


그러다 오늘은 당신에게서 씩씩하게 슬픔을 눌러쓴 메시지와 함께 묵직한 용돈까지 받았다. 분명 고운 단어로만 모아놓은 간명한 문장임에도 읽고 다시 꾹꾹 읽다 한참을 울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엄마는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나의 집에 함께 지내는 날이 많았고, 자연스레 내가 그린 그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시기 전날이면 언제나 벽에 촘촘히 걸어둔 그림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놓을까도 고민했었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그림 그리지 못했던 거 후회해?"


이제는 함께 담대하고도 무연하게 나날들을 보내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언제나 마음이 소마소마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것 같아서.


아직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당신의 마음에 어떤 것도 물들이지 않고 모르게 스쳐서는 무심히 버려질 수수한 문장은 없을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찰나의 적막이 두려워 아무 말이나 내어버렸다.


"난 지금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은 거야. 그때 그렸으면 이토록 행복하지 못했을 거야."


쓰는 일만큼이나 말하는 일에도 소질이 없다. 나의 대답이 당신의 마음에 심원하게 스며들어서는 용돈이라는 형태고스란히 돌아온 것을 보면.




당신이 보내온 용돈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당신 마음의 어떤 조각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기에. 하지만 알고 있다. 참으로 가볍고 경망스러운 변명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나의 마음 조각은 겹도록 묵직해졌고. 이기적인 나는 그것마저 비워내려 울어버렸다.


감사함이라고 하기엔 슬펐고, 슬프다고 하기엔 내 안에 그득하게 담긴 그것들과는 달랐으며, 든든하다고 하기엔 공허함에 희미해져선 사라지고 싶었다. 


모아두었다. 당신과 어디든 가고 싶을 때 당신이 내어준 용돈으로 언제든 달곰하게 즐기고 싶어서. 수많은 순간들을 아껴 모았을 당신의 마음을 당신과 함께 그득하게 나누고 싶어서.




지금 당장은 '직업'이나 '돈'과 같은 것으로 당신의 마음보듬어줄 수 없다는 것이 슬프지만, 다른 길로 돌아가선 더욱 다정하게 위로하고 싶다. 


그렇게라도 잔뜩 변명해두고 싶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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