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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Mar 29. 2024

우리 집의 미운오리새끼

"저요."


이렇게 우울한 사람이 될지 몰랐다. 짐작했다면 우울자의 인생에 감히 '아이'라는 존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내면에 가둬둔 치밀한 이기심에 비추어 볼 때 어쩌면 난 '아이'라는 존재로부터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을까. 소박하고도 거대나의 욕심이 아니었을까.




우울자의 육아에는 줄곧 '나의 아이'라는 죄책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최소한 내가 아닌, 불안이나 우울 따위의 것들이 덜한 누군가가 돌보아 주었더라면.'하고 한심한 자책을 한없이 되풀이하며 다시 암색의 소용돌이에 휘감기는 일. 금시에 마음은 사납 슬퍼졌고, 언제고 더 깊이 슬퍼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그게 나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이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나. 내 몸에서 분리하고 내 마음에서 떼어내어 한 걸음씩 뒤로 걸음을 옮기면서 아이의 뒷모습을 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저 세상에 피어나기 위나를 통과해 온 것일 뿐이라고. 그러니 아이 앞에 '나의'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자고. 그렇게 죄책감을 덜어내곤 했다.


또한 나를 지나던 순간 부디 나에게서 어떤 것도 깃들지 않았기를, 특히 채도를 잃고 무섭 번지는 캄캄한 것들은 조금도 스미지 않았길. 간절히 바랐고. 여전바란다.



흙먼지뒤덮인 아이의 가방을 툭툭 털다 보니, 애처롭게 구겨진 종이가 살그머니 발등 위에 앉았다.


학교에서 나누어준 새하얀 종이. 

 을 메운 너의 글자들.

- 가족 중에서 내가 가장 따르는 사람은 엄마 다.

-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은 부모님 이다.


그랬구나. 감히 내가. 어쩌지.


머릿속 기억테이프가 절로 거꾸로 감겼다. 어둠으자란자란하게 채워진 우울자의 마음 표면에는 간절히 지우고 싶었지만 지우지 못한 못난 것들이 지저분하게 부유하고 있으니, 언제고 그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고 만다.


그렇게 다시 울고 만다. 스스로 울리고 말지.


나의 어떤 것도 가닿지 않길 바랐다. 나의 빛을 잃은 색깔이나 향을 잃은 향취, 기운 없는 모양새나 눅눅함에 더한 축축함도, 소리를 잃은 소리마저도 네가 기억하지 못하바랐고, 여전히 바란다. 


격렬하고도 내밀하게.




 안에만 머무르게도 봄은 애써 을 두드리니, 느른함을 뒤에 고이 모셔두고 다기차게 집안을 살폈다. 볕이 닿지 않는 저 구석까지 정히 봄이 닿길 바라면서 구석구석이. 정리해 둔 공간들도 다시 펼쳤다가 애정을 담아 접어줘야지.


그러다 오도카니 들어온 아이의 생활통지표.


그의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말간 종이 속 선생님의 글자들.

'...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으며, 가족들의 응원과 사랑이 학생의 힘과 자신감이 되어줌.'



아이의 어떤 조각이와 같은 문장을 불러일으켰는지 알 수 없다. 더 은 사랑을 심고 용기를 주기 위해 모든 아이들에게 적어 보낸, 선생님의 상냥한 의도를 가진 문장일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육아자의 마음은 소용돌이를 멈추고 평온해진다. 문장과 현실 사이에 거나한 괴리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하지 않다.



그래. 우울자도 육아할 수 있지. 암색물들지 않게, 축축함이 번지지 않게, 거리를 두고서 발밤발밤 뒤로 걸음을 옮겨가면 되는 거야. 어느 곳엔가 내가 있다는 것은 감각할 수 있도록 너무 멀지만은 않게. 


우리 다른 질감의 사람으로 살아보자. 누구에게도 깃들지 않은 너만의 질감으로 다듬어 살아가보렴. 그마하게 멀어져 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그 무엇도 짐작하지 않을게. 너무 가까이도 가닿 않을게. 


 앞에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네가 있다는 ,

그 자체가 좋은 거야. 

말도 안 되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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