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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ug 12. 2024

내 여름의 맛

- 울.참.실.패 -


눈과 손을 움직이느라 맘에 정지버튼이 눌렸던 때, 한참이 지나고서야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시선을 돌렸다. 화판 뒤에 숨어 찰랑대는 인형의 귀. 길고 유연한 두 귀만 내어놓은 아이가 몰래한 숨바꼭질.


한참을 그러고 있었겠지. 혼자 캐드득거리면서. 찾아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 내 시선만 애꿎게 쫓으면서.



 못하고 아이에게만 담겼을 찰나를 생각한다. 같은 시간 속, 같은 공간 안에서 나누었던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내가 놓쳐버린 아이만의 순간은 무엇이었을까. 


려드불안함앞으로는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혹여 아이에게만 붙들린 순간이 있다면 세밀하지는 못해도 다정이나 온온함과 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기를. 보들보들한 감촉이 속살거리는 기분과 같은 좋은 입자들메워져 있. 바랐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빗소리와 함께 시작했고 더불어 내 우울마저 방울지지 않도록 단단히 애써야 했다. 약도 점검하고 명상을 하며 주문도 외워보고. 내가 미처 움켜쥐지 못한 우울이나 슬픔의 입자들이 아이들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결연해져야 하는 시간.


우울한 이에게 방학은 얼기설기 성긴 하루를 보내는 데에도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즈음의 당신도 그랬던 걸까.





아이였,  당신의 손을 잡고 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 번호나 행선지 따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맨 뒷 좌석에 자리를 잡 엄마는 구부정히 등을 지고 앉았다. 내게 차양막이 되어주려 다부지게 돌아앉은 줄 알았다. 햇살이 아롱져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가고서야 겨우 알아보고야 말았다. 당신에게서 피어나는 눈물을.


"엄마, 울어?"

"다시 태어나면 저기 보이는 새로 태어나 마음껏 날아가고 싶어."

"..."


그때 난 엄마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해 종일 곱씹었다. 우는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에 새로 답하는 당신을 그때는 과연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곱씹었던 탓일까,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짧은 찰나가 당신을 생각할 때면 무수한 기억들을 제치고 떠오르고 마는 내밀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틈만 나면 비집고 일어나는 그 장면, 눈부시도록 휘황찬란한 햇살, 빛도 색도 버린 눈물방울, 버스 안의 향취를 잔뜩 머금은 뒷좌석, 우리와 나란한 새들, 축축한 얼굴 뒤로 숨기고 감춰온 당신의 비밀한 시간들. 이내 내게도 그와 유사한 것들이 피어오르고 만다.




그때 즈음의 당신에 내가 다다랐다. 


누군가의 자식이면서 누군가의 부모, 또 누군가의 동반자로 곁에 가늠해보곤 한다. 모두 이해가 가능해지는 순간 나의 입장은 헤아려볼 겨를이 없다. 내밀히 나를 지워버려야 하는 시간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게 날아가고 싶다. 고요히. 은밀하게.





여느 때와 달리 여름방학 중 어느 날들도 촘촘하게 계획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포개진 우울에, 아이들은 배가된 학업에 지쳤을 테니 조금은 불량스럽고 틈이 벌어진 시원한 나날들을 보내보자. 허술하고 부족한 것들이 흘러넘치도록.


그렇게 촘촘했던 것들을 틈으로, 사이로 버려내다가 의식 없이 배포가 커져선 눈물까지 흘려, 렸다. 여느 날처럼 미소를 가지런히 입고선, 수저를 놓다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통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 울어?"

"..."


키친타월을 두 눈 위에 두텁게 올리고 꾹 눌러선 축축한 것들을 짜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독한 몸살이 온 거라고 전하며 숨겨놓은 약을 꺼내 꿀꺽 삼켰다. 그들에겐 차분히 스쳐갈 미시적인 장면이라고 되뇌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서둘러 가져다 놓았다. 좋아하는 영화를 켜서는 아이들의 시선을 돌린다. 감사하게도 금시에 마음마저 빼앗겼다.



여름방학 네 번째 날을 그토록 아슬아슬 무사히 보내고 나니, 마음의 경계심이 높아졌다. 덕분에 남은 날들은 함부로 눈물을 쏟지 못했다.



어느 사이 여름과 방학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얼기설기 성긴 나날들과 허술함의 시간 사이를 여유를 가장한 게으름으로 내내 환기시킨 덕분에 내 안의 축축한 우울이나 바깥 장마의 습에도 물들지 않고 쾌적한 속도로 지나왔다. 엮지 않고 엮은 시간들을 허술하게 매듭짓고 있다.


느릿 속도로 보내는 여름의 끝자락과 불량스러운 내음이 나는 방학의 끝자락을 나른하게 다듬작거린다. 지날 때마다 다른 나는 여름. 올해는 는지럭는지럭 늘어진 모양새가 단꿀을 빼닮았고, 물렁물렁하게 끈끈해진 시간의 감촉은 그야말로 풍선껌.


꿀향이 나는 달곰한 풍선껌의 맛, 이 여름끝자락의 맛이 생소해 정성을 다해 씹어 음미하고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삼킨다. 다음 계절의 맛이 풍겨오기 전에 진득하게 곱씹어 마음에 담아둬야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


단꿀풍선껌의 맛, 

터지지 않게 무사히 이겨낸 달곰량스런 여름의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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