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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ul 17. 2024

찾았다, 내 중독의 이유.

- '1일1라면: 3년+1일1초콜릿: 18년' 진기한 경력 보유 -


"너 그거 병이야."

알아. 알고말고. 생각 없이 해온 일이 병적인 형태에 가까운 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을.


난 그저 그것들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지치지도 않고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이제 중독의 이유를 찾았으니, 고칠 수 있겠지.

아니 그럴 수 있으려나.




아침초콜릿,

어엿한 직장인이 되고 나서였다.


지난했던 지난 세월들에 아침마다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초콜릿 덕분이었다. 그것을 입에 머금을 수 있다는 소박하게 부푼 희망으로 눈을 떴다. 하루를 떠올리면 눈을 더욱 꼭 감고 말았으므로 우는 배를 달래어 쓰러지듯 잠드는 밤마다 다음날 입안에 녹여낼 초콜릿을 생각했다. 밤이면 그것으로 달콤한 잠을 청했고 아침이면  달콤함으로 나를 깨웠다.


15년을 그렇게 보냈던 탓일까. 사직을 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초콜릿이 없는 아침은 하루도 보낸 적이 없다. 의식도 없이, 대단히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갈 때도 초콜릿과 책 한 권만 챙겼으,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는 나는 그들과 유사한 중독의 맛을 알겠다. 어쩌지도 못하는 그 마음을 잘 알 것 같다.


"그러다 큰일 나.",

"듣기만 해도 속이 안 좋다.",

"러니까 몸이 골골하지."

이상하게도 누군가가 물어오면 당당하게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모닝초콜릿은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버렸고 조금 괴상야릇하게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감칠맛 나게 재미가 났던지도 모르.




점심이라면,

어엿한 사직자가 되고 나서였다.


사직을 하고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라면 날 위한 요리. 숨 쉬는 일조차 버거울 정도로 기운이 없었고 먹는 일이라면 관심이 없었으므로 남은 기운을 조금도 먹는 일내어줄  없었다. 아꼈다가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고, 꼭꼭 씹어내거나 꿀꺽 삼켜내일들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 배는 꼬박꼬박 감질나게 울었다.

흘부들하게 가엾고 이악스럽도록 간절히도 울었다.


얼핏 보기엔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듯 보이지만, '먹는 일에 관심이 없어'와 '배가 고프지 않아'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언제나 초콜릿은 하루의 허기를 모두 메워주진 못했다. 먹기는 싫었고 배는 고팠다. 시끄러운 그를 달래기 위해 찾은 것이 손에 닿는 라면이었다.


그것으로 점심을 먹고 나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덕분에 오랜 시간 배가 고프지 않으니 내게는 완벽한 한 끼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일 년에 몇 번, 호되게 아픈 때면 괜히 죄 없는 라면 탓을 해댔다. 매일 한 개씩 영양제처럼 챙겨 먹은 라면 탓이라고 투덜대면서도 고파 구슬피 우는 배를 잡고선 다시 라면을 끓였다.


그렇게 매일 점심으로 라면을 먹은 지 3년이 지나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나마도 그것을 좋아해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 먹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중학생이 된 아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두 아이와 남편 모두 저녁식사 시간이 제각각. 어차피 각자의 취향도 몹시 다르기에 세 사람의 스케줄과 입맛에 맞추어 저녁을 준비하고 나면 정작 나는 먹기가 싫어졌다. 이것저것 남은 것들을 먹고 나면 배가 충분히 불렀다.


올해는 주말마저 남편이 일이 많아졌우정섬이 거대해진 첫째 아이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둘째 아이와 나만 집에 남겨졌다. 말이 잘 내어지지 않는다는 둘째 아이와 둘이서 밥을 먹게 되었고. 한참을 지나고서야 알았다.




둘째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는 무언가를 넘기지 못했고 재우면서 먹였던 것들은 일어나서 분수토로 한 번에 게워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응급수술을 받게 되어 수유를 중단해야 했다.


나의 수술로 아이는 갑자기 분유를 먹어야 했고 극심한 알레르기로 대형병원에 옮겨져 특수환아용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여는 순간 향기부터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일반 분유의 맛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고 그때부터 아이는 먹는 것을 일체 거부했다.


분유로만 버텨야 했던 시간들을 어찌어찌 보냈고, 그러고 나서도 먹는 일을 어려워했다. 앙상하게 말라갔다. 소아발달단계에서 2등급 이상 떨어지면서 정밀검사를 권유받았지만 아이가 온몸으로 거부하기에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아이를 먹이는 일에 집착이 심해졌다. 아이는 한 입 크기를 입안에 담아 한 시간이 지나도록 물고 있었고 음식은 몹쓸 형태로 변모했다. 혹여 몇 입 삼킨 때에는 금시에 다 토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방수요를 몇 개씩 두고 하루에 수도 없이 토사물을 씻었고 다시 먹을 것을 만들었다가 토하면 치우고, 그것이 매일의 일상이었다. 배가 고플 때까지 두었다가 온몸을 덜덜 떨기에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병원에 간 적도 있었지만, 그런 상태가 되어도 물도 먹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왔고. 아이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나 이것저것 정리한다는 핑계로 같이 앉아 밥을 먹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이와 둘이 마주 앉고 보니, 그때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고 입 안은 오래 문 음식물로 가득하며 눈 주변을 비롯하여 피부 곳곳이 알레르기나 아토피로 퉁퉁 붓고 빨갛게 문양이 새겨진 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런 슬픈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는 더욱 슬픈 눈의 나.


슬픔으로 자욱하게 적막했고 소마소마하던 식사시간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 속이 좋지 않았다.


잘 먹는 아이의 입을 보면서도 내 마음은 아슬아슬하고, 깨끗해진 피부를 보면서도 긁적이는 아이의 행동에 신경이 곤두서고 만다. 그렇게 먹고 있는 아이를 따라 눈과 마음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내가 먹는 일엔 여유재미도 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혼자 밥을 먹었다. 의식하지 못했고 의도한 바도 아니었다.




어쩌면 라면이나 초콜릿은 식사를 넘어 나만이 혼자 누릴 수 있는 안식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 준비한 유일한 음식이고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나만 채워주면 되는 시간. 어쩌면 불량스러워 보이는 식단에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려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난 아이의 오물거리는 입이나 꿀꺽 삼키는 목 주변을 살피는 일을 그만두고 반짝이는 눈망울만 바라보며 함께 식사를 하는 연습 중이다. 식사 때마다 아이의 모든 것을 미어캣처럼 살피는 정찰맘이 되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무사히 지나왔다. 부디 이유 모를 아이의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해결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도와줄 거라고. 그러니 그동안 건강하게 버텨내야 한다고 속삭여주고 싶다.


그 시간을 돌이켜 아이와 무심하게 농담도 섞어가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때를 기약하며, 나처럼 슬프게만은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아이에게 웃어주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 그러니 눈물이 날 때는 꼭 안아주자. 들키지 않게. 


그때 알지 못했다.

사랑이 가장 효과가 좋은 묘약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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