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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Jan 16. 2024

12월이라면 알고 싶지 않아요.

- 우울과 다정함의 앙상블 -


크리스마스 즈음 태어났다.


어설픈 생일과 포근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경건함을 담은 한 해의 끝자락까지 겹치는 시간. 12월은 대체로 느릿하 기어간다. 나에게만큼은.


느른해진 시간 속에서 12월에 태어난 나를 생각했다. 우울하긴 해도 부족한 사람은 아니라고 달래어본다.


덕분에 12월을 안은 겨울마저 좋아하지 않는다. 깨어있기 어려웠다. 에너지가 모두 소진 건전지처럼 소멸에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빼곡하던 하루의 시간들도 훨훨 구멍이 나고, 그 구멍 사이로 든 날카로운 바람결에 마음 끝이 뾰족해지는 계절. 언제나 소복하게 두렵다.


달력이나 시계, 날씨나 뉴스 같은 것들을 보지 않는 편이다. 시간에 무뎌지고 싶어서. 그렇다면 12월은 더욱 그래야만 했다. 추위로 둔해진 감각만큼이나 시간의 감각에도 무뎌지고 싶었건만. 차가운 두 손이 또 차가운 두 발끝을 잡고 앉아선 진득하게 고요함에 절여지기에 알았다. 12월을 마주했음을.


한해를 신나게 달려오고 난 뒤, 조금 거나하게 멈춰있는 시간이랄까. 죽은 듯이 이 달을 보내야 새로운 한 해를 생동감 있게 살아갈 수 있었다.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므로.


어린 시절엔 이런 나의 나태함과 우울을 곱씹으며 12월의 시간들을 충만하게 자책했다. 따스한 구석을 찾아내 웅크려 앉아선 미동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안온하게, 느물느물하게 나를 비켜선 잘도 흘러가더라.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가 태어난 날엔 익숙하게 죽음을 떠올렸다.




언젠가 누군가 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든, 미래든 어느 시간으로든 갈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고.


기어코 그것에 탑승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이동해야 한다면 내가 죽는 순간에 가있길 바랐다. 그것을 보며 삶의 의지를 구하고 싶었으므로. 죽음에 가깝고 싶을 만큼 사는 일 지난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음의 고통과 삶의 유한함으로부터 삶의 의지를 조금 구하고 싶었다.


그랬던 날들을 곱게 보내고 나니 지금 이곳에 있다. 고통을 상상하며 고통을 이겨내던 시간, 그런 삶에 혹독하게 물들었던 시간. 돌아가고 싶지 않다. 최선을 다했으니.



가까운 이의 자의적인 죽음을 경험하고 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나 죽음을 선택지로 두게 되더라. 그리고 한때는 이 힘든 현실을 겪지 않아도 되는 비현실에 있을 널 부러워했고,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선택지를 절절하게 갈구하게 될 때면 부서진 내 모습을 보며 남은 자의 고통을 새겼다. 생동감 넘치는 것들을 모두 빼앗긴 남겨진 자삶, 그 잔혹함을 떠올리고 떠올려 겨우 그 선택지를 퇴색시켰다.


의미가 없어 보이는 보이지 않는 머릿속 시뮬레이션, 그것을 통해 선명해 남은 자들의 고통, 그것나를 살아가게 했다.



올해의 생일에도 곱게 살아있다. 생일이 다가오죽음을 생각한다. 삶의 끝자락을 떠올려 보는 못되고 오래된 습관. 하지만 그것이 어김없이 나를 뜨겁게 살아가게 할 것임을 안. 


그저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죽음을 떠올릴 때 생을 붙잡는 것은 언제나 조그마한 기억상자를 열어내는 것이었다. 

당신과 몽글하게 나누었던 짤막한 문장과 뽀얗던 공기, 기분 좋게 흥얼거리던 당신허밍, 내가 세상을 버릴까 봐 가득 차오르 눈물방울.


그렇기에 얼마 없는 내 곁의 인연들과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조각들소중할 밖에. 


보석 같은 순간들을 내 마음속 상자 안에 고이 담아, 언젠가 힘들 때 나를 살려내는 묘약이 된다. 그러므로 곁의 누구와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고 싶지 . 대단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소하고 진득하게 마음을 나누고 싶은 이유이다.


나 또한 나와의 시간이 그들 마음의 보석상자에 담기도록 고이 말을 내고 사뿐히 행동한다.


내가 당신 덕분으로 가지게 된 기억조각의 수보다 당신의 마음에 담기는 조각들이 더없이 많기를. 또한 누군가의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적어도 내가 받은 만큼은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감히 바라다. 





"항상 생일이면 기분이 별로였잖아. 나아졌네."

보기와는 다르게 섬세한 그가 나직이 알려준다.


그래. 나아지고 있다. 스스로 도닥거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나 나를 살펴주는 곁의 사람들을 보며.


당신의 세밀한 말과 말랑해진 공기 덕분으로 올해의 12월조금 더 보드라웠다. 


그리고 다음 해의 12월은 조금 더 보드라워질 것이고. 그렇게 언젠가는 12월마저 하염없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바지런히 주문을 외우며 선사받은 다정함에 내 우울을 모두 넣고선 오늘도 정성스레 휘저어 본다. 그것이 내가 12월을 이겨내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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