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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Nov 03. 2023

사직, 한 가지의 후회.

- 유일한 나의 분노포인트 -


어려웠다. 그와 나의 벌이로 어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직을 결정하기란.


수많은 이유들이 겹쳐지고 농도가 짙어지면서 더 이상 숨 쉴 수가 없을 때, 남은 숨을 몰아 쉬며 눌렀던 버튼이 '사직'이라는 버튼이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사직생활을 영위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준비하지 못했던 만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가득 마주하고 있지만 딱 한 가지, 돌려놓고 싶은 일이 있다.


그곳을 떠나올 때 곱게 마무리해 두었다면 어려움 없이 극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 시간과 노력을 다해보아옹동고라진 마음 한편이 가뿐히 펴지질 않는다.




입사동기로 남편을 만나 나만 그곳을 떠나왔다. 그와 나는 외모에서부터 마음 끝까지 정반대의 형태를 가진 사람으로, 그는 떠나고 싶지 다고 했다. 아직은 그 일이 보람되고 배워나가는 여전히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15년을 지내본 나로서적어도 그 말의 반절은 거짓이라는 것을 안다. 물밖에 꺼내놓은 물고기처럼 겨우 숨 쉬고 있던 나에게 조금의 불안도 더하고 싶지 않았던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진실을 따져 묻지 못했다.

"멋있네."

위로해 줄 밖에.


그렇게 언제나 마음속 이해심을 풍선껌처럼 부풀려 모든 일들을 안아주고 싶지만, 한 가지 영역에서만큼은 그 풍선껌이 부질없이 터지고 만다. 그것은 바로 '회식'이다.



입사 후 3년 차였던 어느 날, 업무가 시작되기 전 민원인이 내방하여 나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말은 점점 거칠어졌고 온갖 불쾌한 말들이 덩어리가 되어 손이 올라오기 직전의 흥분 상태가 되어버렸다. 다른 부서에서도 구경올만큼. 30분이 넘게 흥분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30명이 넘는 같은 과직원들은 지독하게 고요지켜내있었다. 비참하리만큼 외롭고 무서웠다.


혹여 불편한 상황에 엮이게 될까 봐 그랬을 것이다. 매일 당면한 일들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내어 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해해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때의 나는 20대였고, 그곳은 나의 첫 번째 직장이었다. 고조되는 흥분에 맞을까 봐 두렵기보다 비밀히 주시하직원들의 시선에 나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못된 모양새로 얼어버렸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직시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사람.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 일은 전화로 나의 이름을 대고 민원인을 상대했다른 직원 때문에 마음이 상해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달려왔던 것이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출근하는 내게  직원이 데면데면 내었말이.

"오늘 누가 너 찾아올 거야."

그러곤 민원인이 내 이름을 외칠 때, 그 직원은 화장실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난 나라는 존재를 다시 직시하게 되었다. 이 정도의 사람.



그곳에서 십 년이 넘도록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정도의 사람이구나. 무시해도 괜찮은 사람. 무엇이든 맡겨도 되는 사람. 그래도 결코 화내지 않을 사람.


그리고 그곳을 떠나온 지금 나는 그들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정도의 사람들. 그들이 나를 대했던 그대로, 그만큼의 정도로 그들을 생각하고 있더라.


이것이 내가 돌려놓고 싶은 지점이다.

반드시 돌려놓아야 할 지점이고.



그들이 잘못한 게 있을까. 그럼 나는 잘못한 없나. 왜 나였을까. 이제는 안다. 그때의 시간과 그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다시 바라보니 선명하게 알 것 같다.


본인의 이름을 대지 않았냐고 그 직원에게 따져 묻지 못했다. 지금 말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흥분한 민원인에게도 말을 내지 못했다. 매번 그랬다. 그런 식이었다. 용기가 없었고 나에게 비겁했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고 침묵 아래 숨어 참는 일이  쉬웠다.


그러니 ' 정도의 사람' 내가 만든 결과이고, 비겁함의 대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비겁한 나에겐 '사직'이라는 단어보다 '탈출'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모양이다. 육아휴직 후 이어졌던 사직이라 그러했겠지만, 누구에게도 부러 사직말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사람이었던 나는 그저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곱씹어 감사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인사드리고 조그마한 따스함이라도 애써 모아 가슴담고 나와야 했다. 마지막까지 지독하게 고요하고 차갑지는 말았어야 했다.


마음 깊이 차가움만 남았다. 모질고 앙칼진 차가움만.



사직 직후, 남편이 간혹 회식을 하고 늦게 오는 날이면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도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상처 입을까 봐, 예상치 못한 곤경에 빠져 구경거리가 될까 봐, 불편한 마음에 불안이 더해져 잠들기도 어려웠다. 결국에는 종종 울거나 다투고는 했다.


그런 나를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불안을 잠재우는 법도 모르겠더라.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는 어땠을까. 




그곳을 떠난 지 2년이 넘어가니, 그 마음도 차즘차즘 잠잠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후회한다고 말을 내는 것은 앙칼진 마음의 형태가 가지런해지고는 있지만, 얼어붙은 마음 자체를 녹여내진 못했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나에게는 차갑게 느껴졌던 그곳에서, 온 마음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 그것이 내가 마음을 돌려놓아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다. 가족으로서, 국민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일하는 사람어느 곳에라도 반드시 있다. 그 마음을 지나쳐선 안된다. 그 마음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정함이 다정함으로 돌아오는 세상, 아름답기에 현실과 먼 이야기인 것만 같지만,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작지만 간절한 이런 나의 응원이 '그 정도의 사람'이라는 흔적을 지우고 차가워진 나의 마음 또한 녹여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당신이 가는 길에 다정히 주문을 걸어본다.

근사함이 외로움에 싸늘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다정함을 소복이 눌러 담은 나의 응원이 가닿길 감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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