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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ㅡ Apr 12. 2024

거울사람

"구해줘"


뜨거워진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지하철이 떠났고, 한참을 기다려 다음 지하철에 올랐다.


가장자리에 앉은 한 남자가 처처하게 울고 있었다.  몸 어느 구석 마음대로 움직여지않고, 감춰내려 할수록 더욱더 일그러지고 마는 통제불가능한 슬픔. 한없이 처창하여 내 안에 고인 슬픔마저 잠잠해졌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중년의 남자. 어느 날나처 울어낼 시간도, 공간도 없었던 일까. 토해내듯 역류하 그의 눈물바람을 보고는 조심스레 그 앞에 짐을 부풀려 다. 


하찮은 눈물막이라도 되어주고 싶어서.


맨투맨 앞자락과 팔 끝 눈물과 콧물로 얼루룩덜루룩하고, 끝을 모르고 흐르는 것들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개는 차즘 숙여졌다.


나는 안다. 그러고 나면 몸속에 꼭꼭 숨겨왔던 눈물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것들이 더욱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그러므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도 부러 벌겋게 부은 얼굴을 들고 기어이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모아지는 시선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며. 말미엔 숨 쉬는 일마저 고단해지고. 그렇더라. 나는.


옴츠러든 그의 언저리를 바라보다 지독한 위로를 보냈다. 다정함이나 희망과 같은 따스하고 반짝거리는 것들을 애써 모아 간곡하게 전했다. 부디 이 눈물바다의 시간들이 더 이상 깊이를 더하지 않고 흘러가길. 달이 환하게 비출 즈음이면  눈물바다에도 윤슬이 닿아 마음속을 함초롬히 비추어주길.


바라고  바랐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다행이다. 끄트머리에 앉아서. 모자를 쓰고 있어서. 탄탄하진 못하지만 위로를 두른 눈물막이가 있어서.


길고 광활한 지하철 안 수많은 존재들 사이에서 당신만의 공간에 갇힌 듯, 자신만의 세계에 함몰되길 바랐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소리 없이 소리 내어주 싶었다. 더 이상 쏟아낼 것이 없을 때까지 충분히 쏟아내길 바랐다. 


나에게는 닦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건네지 못했다. 그것을 전하는 일보다 연히 무관심을 표하는 일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오늘 나는 당신에게서 나를 보았다. 


울며 그렁그렁한 이를 보는 일. 그것이 요즘 나를 보는 방법이다. 나를 마주하는 일이고.




대중교통을 좋아한다. 걷고 싶을 땐 최다환승이 가능한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고, 따사로운 햇빛을 듬뿍 내려받고 싶거나 창문에 제멋대로 낙서하는 빗방울을 보고 싶을 땐 버스에 오른.


일주일에 한 번, 화실에 다녀오는 길이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왈칵'이란 단어의 마지막 어감처럼 한 번에 쏟아내시원하게 비워지는 것이 아니었고.


'왈칵'으로 시작하여 '흐렁흐렁'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15년의 직장생활 동안 쓰지 못했시간들을 모아 한꺼번에 쓰는 기분이랄까. 눈물과 콧물 같은 것들이 온 얼굴을 뒤덮을 때에는 모자만큼 고마운 이가 없더라. 어쩌면 아래 숨어 더욱 멈추지 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올해 들어 눈물을 참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두 버려내면 나아질 거라고 다독일 밖에 어쩔 도리가 없다.


전에 없이 지하철에 빈자리를 한사코 찾아 앉고는 모자를 깊게 눌러 지그시 눈을 감는다. 명상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어 보고, 음악을 들어보고, 책을 펼쳤다가 글자들이 울먹거리면 두어도 보고. 애면글면 바쁘게 애써보아도 무용하여 외출을 하고 나면 진이 빠져 하루를 앓고 말았다. 



지난주 같은 요일엔 내가 그랬다. 오늘 보았던 그처럼.

수개의 역을 지나는 동안 눈물과 콧물이 지독하게도 쏟아지며 엉망이 되어버렸고 그 모습처럼 숨쉬기도 어려워졌다. 어서 밖으로 달려 나가 호흡을 다듬어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다 넘어지고서야 정신이 났다.


모르는 이의 눈물을 마주하는 일, 그것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자락을 마주하고 더없이 슬퍼지는 일이지. 눈물을 버려내는 방법을 알지 못해 어느 곳에서나 야금야금 버려내는 일, 나는 그 말할 수 없는 기분을 알 것 같다.


어찌할 수도 없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상담실에서 눈물만 흘리던 때가 있었다. 말이 나오지 않고 눈물은 쉴 사이 없이 나오고. 건네주는 휴지만 무한히 받으며 더러워진 휴지를 꽁꽁 싸서 손에 그러쥐 나갈 때, 그가 물었다.

"가만히 눈물을 느껴보세요. 어떤 감정인지.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답을 하지 못하고 나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니까. 언제나  수 없어 눈물이 났으니까. 이유를 찾지 못한 눈물들에 울다가, 지쳤다가, 시나브로 말라갔다.


그래. 시간. 절로 말라가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때마침 봄비가 그쳤다. 나도 그칠 때가 왔다는 거지. 봄볕에 누워 바삭바삭하게 말려봐야지. 따사로운 봄볕으로 제습제를 만들어 마음 구석구석에 잘 걸어두어야지. 축축하고 음습한 것들은 내 견뎌낼 수도 없도록 단단히 채비해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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