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사랑을 흙먼지 속에 던져 버린 죄
아내를 위한 아주 작은 마음 하나를 꺼내 아내에게 내놓지 못하는 일이다.
내 삶 외의 아내의 삶을 두루 살피지 않는 일이다.
천둥이 울고 어둠이 번개로 뒤집히는 두려운 밤 아내 홀로 떨게 하는 일이다.
아내에게 내 전부를 바칠 마음을 갖지 못하는 일이다.
내 삶 곳곳에 새겨진 아내의 자취에 무감한 일이다.
삶의 열기로 숨을 헐떡이고 가슴 깊이 갈증을 느낄 때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이 샘솟게 한 아내의 손길을 잊는 일이다.
내 삶 안에 가득한 아내의 사랑을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일이다.
아내가 아니면 나의 삶이 머물 곳이 어딜까요?
아내의 사랑을 흙먼지 속에 던져 버린 죄
아내의 속을 참 무던히도 썩였습니다.
짜증내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전화를 늦게 받는다고, 집안을 정리하지 않는다고, TV소리가 크다고, 빨래를 개지 않는다고,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머리가 그게 뭐냐고, 반찬이 짜다고, 김치를 너무 크게 썰었다고, 애가 다쳤다고,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고, 외출 준비시간이 길다고, 비싼 물건을 산다고, 운전이 서툴다고, 오지랖이라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짜증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깊은 한숨으로 자신의 신세를 달래곤 했습니다.
아내의 삶은 수도자의 삶이었습니다.
가는 것도 듣고 보는 것도 눈치 속에서 해야 했고 먹고 마시는 것조차도 자신의 뜻 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의 삶은 자신의 욕구와는 거리가 먼 봉쇄된 수도원의 삶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참 염치없는 남편이었습니다.
가혹했고 비정했습니다.
늦을 수 있는 일이었고 모든 일에 능통할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실수는 삶을 구성하는 당연한 요소이고 게으름 또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임에도, 나의 무지가 아내의 눈과 귀 그리고 아내의 입과 생각을 가로막았고 아내는 기본적인 쾌락의 권리마저 박탈당했습니다.
단테는 타락한 정치인이 가야 할 곳으로 뜨거운 기름지옥을 말합니다. 아내의 삶을 어두움으로 뒤덮은 밥맛 떨어지는 남편이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결혼은 서로의 삶에 서로를 초대하는 일입니다.
아내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아플 때나 성할 때나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을 잃지 않겠노라,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노라”는 초대의 변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입니다.
힘에 부친 듯 아내의 발걸음이 느릿합니다.
무너지지 않으려 매일 전쟁을 치르는 모습이 선명합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는 일은 남편에게 주어진 고귀한 임무임을 인생의 가을에 들어서는 아내를 통해 깨닫습니다.
아내의 삶을 척박하게 만든 죄 어찌 다 감당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