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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y 24. 2024

무남편이 상팔자다

남편의 자리



그날이 그날 같다.

오늘이라고 새롭지 않고 내일이라고 달라질 것 없다.

별일 없는 나날이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새 시간을 구깃구깃 방구석에 처박는다.

아내의 눈에 가시가 돋는다.     


남편이 곁에 있어야 할 아니 남편을 곁에 둬야 할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리라.     



남편의 자리     


“…”

“아이고 얘, 남편이란 작자가 문제지”

“그래 맞아 이렇게 하면 발에 걸리고 저렇게 하면 눈에 거슬리고”

“그러게 말이야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입만 동동 떠다니잖아”

“호호, 그래 그래, 어쩜 그렇게 먹는 거 타령이니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냉장고에 매달려”

“어이구 어디 그것뿐이니 참견은 어떻고, 한 발작만 떼도 어디 가니, 누구 만나니 무엇하니 어이구 지겨워” 

    

“그러게 말이야 젊을 때에는 집안일 좀 하라면 별별 핑계를 대면서 뺀질거리며 여기저기 잘도 쏘다니더니”

“왜 나이 들수록 처박혀서 꼼짝도 안 하나 몰라”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나다닐 때 핑계 삼던 친구는 다 어디 갔는지”

“점점 꼴도 보기 싫어져”

“맞아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정말 쓸모없는 짐짝이 되는 것 같아”

“…”     


아내의 전화기가 평소와는 달리 시끄럽습니다.

손이 아닌 식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멀리 떨어진 아내의 귀를 향해 달리는 소리가 굉음을 냅니다.    

 

남편의 흉이 잠깐 쉬는 사이 이야기는 이혼한 친구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영희 있잖아”

“응, 참 요즘 걔 어떻게 지낸다니?”

“아이고 말도 마. 걔는 처음엔 그렇게 울고 짜고 못살겠다고 난리 치더니

아유 지금은 좋아 죽겠다고 난리더라”

“그래!”

“그래~ 지가 지금까지 한 선택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나 뭐라나”

“그 계집애 웃기네”

“응, 얼마 전엔 혼자 어디 다녀왔다고 입에 침이 마르더라. 그리고 다음 달엔 친구 몇과 해외 가기로 했다더라고”     


“…”     


“여행!”

“응, 얼마나 부럽던지”

“그렇다 얘”

“우리에겐 꿈같은 얘기지”

“그래, 걸리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여야지”    

 

그들이 말하는 걸리는 존재는 남편입니다.

집구석에 박혀있는 남편이란 존재는 자기들의 움직임을 막고 누르는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입니다.    

  

아내와 친구는 걸림 없는 삶을, 부담 없는 삶을, 장애 없는 삶을, 재고 묻고 따짐 없는 삶을 꿈꿉니다.  

    

“아니, 우리가 이혼한 영희의 처지를 얼마나 안타까워했니. 남편 없는 삶이 얼마나 힘겨울까 하고.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사실은 우리가 안타까운 존재였어”

“그래, 맞아 우리가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아”

“오히려 영희는 축하할 일 아니었나 싶어.”

“그래 그러네, 걔는 완전 자유잖아”

“갑자기 슬퍼져”

“…”     


아내와 아내의 친구는 남편 없는 친구를 부러워합니다.

‘남편 없음’은 곧 ‘자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떡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선택지는 줄어들고 아내에게 기대지 않고는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는걸요.     


숱한 잔소리 모진 구박에도 아내의 곁을 배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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