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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Oct 22. 2024

산과 나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다.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볼 땐 물론 성취감에 벅차고 멋진 경치에 감탄하지만 그 성취감을 위해 올라가야 하는 과정이 내겐 너무 힘겹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등산이란 걸 해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친구들이 가자 하니 호기심 많은 나는 그게 어떤 건가 싶어 무작정 따라나섰다.

등산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겉멋이 들어 등산복을 사고 배낭을 사고 베레모도 샀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우리는 호기롭게 겨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고난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친구들은 날다람쥐처럼 산을 올라 가는데 나는 도저히 걔네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고 보조를 맞출 수도  없었다. 내가 도착을 하면 쉬고 있던 친구들은 다시 출발을 하니 나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점점 지쳐만 갔다.

혼자 외톨이가 되어, 이런 게 등산인가. 재미도 없고 힘만 드는 게 등산이구나. 두 번 다시 안 간다는 결심만 남긴 채 나의 첫 번째 등산은 끝이 났다.


두 번 다시 안 가리라 했던 결심은 부모님으로 인해 깨어졌다. 그때 모 방송국의 등산 프로그램에 우리 가족도 참가 신청을 한 것이었다. 장소는 주왕산.

산도 가파르지 않고 참여한 사람들도 대부분 중년들이라 비로소 나와 보조가 맞았다.

가을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즐겁게 등산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그때 누군가가 삶은 달걀을 돌렸다. 그 삶은 달걀을 먹고 급체한 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 다 토하고 말았다.

역시 등산은 안 가는 게 낫겠다는 소감만 남았던 두 번째 등산이었다.


그리고 사회인이 된 후, 친구가 남해 금산으로 밤 등산을 가자고 했다. 나는 한사코 등산은 안 간다고 버텼지만 그 친구는 집요했고 또 밤 등산이란 어떤 건가 하는 나의 쓰잘데 없는 호기심 때문에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밤 등산이란 최악의 등산이었다.

무것도 안 보이는 캄캄한 산길을 손전등 하나에만 의존해서 올라가야 하니 안 그래도 등산에 서툴고 저질체력인 나는 도저히 일행을 따라갈 가 없었다. 엎어지고 자빠지며 죽을힘을 다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다른 팀들은 벌써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까지 다 마친 뒤였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옷은 땀으로 완전히 젖어 물수건 꼴이 되어 있었고 밤이라 기온이 뚝 떨어져 추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여분의 옷을 다 껴입어도 너무 추워 밤새 떠느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다 아침해가 떠오르자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그 산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남해 금산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나는 그 산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등산과는 인연을 끊고 살다가 중년이 되어 중국에 살 때 성당 모임에서 등산을 가게 되었다.

북경에서 비교적 가까운 백석산.

중국의 산은 어떨까. 또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덜컥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나는 여태 살면서 그렇게 아름답고 웅장하고 멋진 산을 본 적이 없다. 금강산이라면 이토록 아름다울까. 나중에 금강산에 꼭 가보리라. 이 산과 비교해 보리라. 그런 결심을 하게 할 만큼 경치가 수려했다.

경치가 좋다고 힘이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일단 꼭대기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가 거기서부터 등산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산과는 달리 완전 돌로 깎아지른 산이라 길은 대체로 잔도로 되어 있었다. 산허리에 선반처럼 덧대어 만든 잔도가 산을 굽이굽이 휘감고 끝없이 이어져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중간에 유리잔도도 더러 끼어 있었고.

꼭대기에서 맨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꼭대기로 돌아오는 8시간의 등반.

휘청거리는 몸을 풀숲에서 주운 나무막대기에 의지하고 걸으며 머릿속에 맴돈 생각은 단 하나. 민폐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경치가 워낙 신비롭고 아름다워 그 등산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산에 살고 있다.

산이라면 이제 쳐다보기도 싫어야 할 텐데 인생이란 역시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묘미인 것 같다.

여기는 해발 700미터. 가끔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다. 그래서 내가 지은 우리 집 이름은 '산 700'

나는 때때로 운동삼아 걸어 올라오기도 한다. 힘들면 맘껏 천천히. 날쌘 일행이 없다는 건 참 편안하다.


산을 싫어했지만 산속에서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이제, 사랑하고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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