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지하수를 사용한다. 땅 속으로 150미터쯤 파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대형물탱크에 저장한 다음 집집미다 수도로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한 달에 내는 수도요금은 가구당 만 오천 원으로 고정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물을 사용하는 다섯 집이 약속한 듯 2인 가구들이라 요금은 공평하다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요금은 물값이라기보다 물을 끌어올리는 전기요금이라는 게 맞는 말이다. 그저 흘러가는 물을 끌어올리는 건 전기니까.
물은 수질검사 결과 식수로 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산속이고 지하 깊은 곳의 물이니 수질은 당연히 좋겠지. 그러나 지하수를 마신다는 게 왠지 내키지 않아 식수는 여전히 생수에 의존하고 있다.
수량도 풍부하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부족해 본 적이 없다. 수량도 넉넉하고 요금도 고정되어 있고... 그럼 물을 펑펑 쓰도 되겠네. 물론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물을 낭비하질 못한다. 쓸 만큼은 충분히 쓰지만 필요 이상은 여전히 아끼려고 애를 쓴다. 조금만 물이 넘쳐도 깜짝 놀라 물을 잠근다. 기온이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질 양이면 밤새 수도가 얼지 않게 약하게 틀어 놓는데 이때도 최소한으로 방울방울 떨어지게 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한다. 물을 조금 더 흘린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실감을 한다. 전기와 수돗물을 무조건 아끼는 거라는 관념이 몸에 밴 탓이다.
전기요금도 그렇다. 전기요금 줄여 보겠다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게 작년 가을이었다. 그럼 전기도 펑펑 쓸 수 있잖아. 그런데도 나는 평소와 똑같이 여전히 전기를 아껴 쓴다. 내가 왜 이럴까 생각도 하지만 변함없이 전깃불을 끄고 다니고 눈만 뜨면 남편방에 티브이, 전기매트, 전등을 껐나 확인하느라 바쁘다. 그래야 내 속이 편하다. 이런 나다 보니 누가 돈을 한 보따리 엥겨준다 해도 맘껏 쓰지 못하고 한결같이 아낄 것만 같다. 바보같이.
이런 나지만 우리 시어머님 눈엔 참 헤픈 며느리로 비쳤을 것 같다.
결혼하고 3년 정도 됐나. 그때도 지하수를 사용하는 환경이었다. 어머님이 우리 집에 오셔서 김장을 해주셨다. 그땐 장정들을 셋이나 데리고 있어 김장을 백 포기나 했었다. 나는 식솔들 삼시세끼 챙기고 아장거리는 아기에 세탁기도 두 번씩 돌려야 하는 상황이라 김장을 거들 겨를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김장하시는 어머니께 가보면 어머님은 물을 아끼셔도 너무 아끼셨다. 제대로 배추가 씻길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참다가 한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 물은 지하수라서 수도요금이 안 나가요"
어머님은 기다리셨다는 듯 곧바로 받아치셨다.
"흘러가는 물도 아껴 쓰면 용왕님이 돌보신다 했어"
너무 당황스러웠다.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알고 미리 대답을 준비해 놓으신 것 같았다. 당황스럽고 무안해서 더는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다.
시댁에 가면 제일 불편했던 게 설거지였다. 어머님은 항상 설거지 그릇에 물을 받아 모든 그릇을 씻고 딱 한 번만 물을 갈아 헹구셨다. 흐르는 수돗물에 그릇을 헹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설거지를 해도 한 것 같지가 않고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시댁에 가면 시댁 관습에 따라야 하는 것을.
오늘도 물을 쓰며 생각한다. 용왕님도 참 바쁘시겠다. 바닷속에 계시면서 땅 위에서 물 아끼는 것까지 돌보시려면.
어머님만큼은 턱없이 아니지만, 물을 실컷 쓰도 되는데 여전히 아끼는 나, 용왕님이 돌봐 주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