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맨>은 초인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차이가 있는데 그건 바로 여타 작품의 초인들이 영웅 대접을 받는데 비해 <엑스맨>에서는 괴물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뮤턴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힘을 가진 게 아니라 장애를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울버린이 가진 재생 능력이나 사이클롭스의 적색 광선 그리고 스톰의 날씨 조종 능력 등은 그들에게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다. 그래서 미국 의회는 뮤턴트를 등록하도록 하는 법을 표결에 부쳤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제 돌연변이인 사람은 주민등록신고를 하듯 자기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을 등록해야 하고 나아가 누구나 자신이 돌연변이인 것을 알 수 있도록 표식을 부착해야 할지도 모른다.
<엑스맨>과는 정반대의 대우를 받는 마블에서도 사실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영웅들이 충돌한 것은 초인을 등록해서 국가에서 관리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두고 서로 대립했기 때문이었다. 초인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시민의 우위에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정부의 관리 하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아이언맨이었고, 정부의 관리라는 것은 결국 초인을 감시하겠다는 뜻이므로 오히려 그들이 가진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캡틴 아메리카였다. 시빌 워라는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듯이 결국 이 영화의 핵심 갈등은 시민은 무엇인가 하는 존재론과 관련되어 있다.
영웅은 시민인가 아닌가 라는 질문의 답은 분명하다. 그들은 시민이다. 문제는 시민의 자격이 아니라 조건이다. 등록법을 거부했지만 캡틴 아메리카가 주장한 논리는 등록법이라는 것이 자신들을 시민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거꾸로 원래 가지고 있던 시민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이언맨은 주장한다. 영웅이 활동하는 영역은 외계 생명체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거나 혹은 테러 단체의 공격을 저지하는 일인데 이것은 어느 쪽이나 시민으로 하여금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도록 요구한다. <어벤져스>의 경우만 보더라도 거의 뉴욕이 반파되지 않았나. 따라서 영웅들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도록 허가하면 인근 시민들이 심각한 피해에 놓일 우려가 있다. 확실히 영웅도 다른 시민들과 동등한 시민이라면 영웅이라고 해서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감수하도록 요구할 권리 같은 것은 없다.
<엑스맨>은 마블이 살짝 건드린 시민의 조건을 처음부터 집요하게 물고 들어진다. 뮤턴트의 등록을 요구하는 켈리 의원이 아이언맨의 극단적인 형태라면 이에 맞서는 매그니토는 캡틴 아메리카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켈리 의원은 주장한다. 뮤턴트는 총보다 위험하다. 총기등록법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면서 왜 총보다 위험한 뮤턴트 등록법에는 반대하는가. 매그니토는 말한다. 뮤턴트는 인간보다 위대하다. 왜 우리가 인간의 지배를 받으면서 뮤턴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들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켈리 의원이 뮤턴트를 방사능이나 무기처럼 관리해야 할 위험 요소로 본다면 매그니토는 인류의 새로운 지배자로 본다. 이 차이는 갭이 크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뮤턴트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이 영화에서 뮤턴트를 인간으로 보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자비에 교수이다. 그러나 자비에 교수도 뮤턴트가 인간과 대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인간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켈리 의원이 인간이 뮤턴트를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그니토가 뮤턴트가 인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자비에 교수는 뮤턴트와 인간의 공생을 원한다고 할 수 있다. 뮤턴트는 인간이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을 조절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훈련함으로써 인간과 공존이 가능한 존재라고 본 것이다. 요컨대 자비에 교수가 말하는 뮤턴트는 이른바 ‘소수자’에 가깝다.
마사 너스바움 교수의 <혐오와 수치심>을 보면 사람들이 여성이나 동성애자 그리고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리 내면의 수치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것은 여성이 그들이 원하는 남성다움을 위협하기 때문이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것은 이성애라는 진리가 바닥으로 내팽겨칠까봐 그리고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혐오하는 것은 자기도 얼마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연약한 육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의견을 따른다면 <엑스맨> 속에서 사람들이 뮤턴트를 혐오하는 것은 뮤턴트가 가진 능력이 바로 아무 능력도 없는 자신들을 약자로 연상하게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다쳐도 끝없이 재생되는 울버린을 보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만약 울버린을 인간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인다면 거의 절대 다수의 인간은 약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건을 조종할 수 있는 진 그레이가 인간이라고 한다면 중력의 영향 아래 있는 대부분의 인간은 무능력자가 될 것이다. 요컨대 <엑스맨>의 세계관 속에서 사람들이 뮤턴트를 혐오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가만히 있는 자신들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뮤턴트를 약자로 만든다. 그리고 누군가를 약자로 만드는 방법은 바로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매그니토가 빌런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로그의 초능력을 훔치려고 하거나 사람들을 불완전한 돌연변이로 탈바꿈시키려고 해서가 아니라 바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 즉 그들이 약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실현시키려고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그니토가 가진 이러한 사상은 그가 인간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영화 첫 머리에 나오듯이 매그니토의 능력이 발현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폴란드의 나치 수용소에서였다. 어린 매그니토는 나치에 의해 부모와 강제로 생이별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머릿속에는 인간이 휴머니즘에 기반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힘과 권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약육강식의 존재, 즉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박혔을 것이다.
따라서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간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다른 인간을 자기 발 밑에 둠으로써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만이 인간이 될 수 있다. 수용소에서 발현된 매그니토의 능력은 바로 철과 자장을 지배하는 능력인데,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이 철로 만든 총, 대포, 전차와 전투기, 전함 등 철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요컨대 전쟁을 지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이별하고 싶지 않았던 소년은 힘이 없으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채 짐승처럼 수용소에 갇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인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철을 지배하는 능력은 말하자면 전쟁을 지배하는 능력, 즉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엑스맨>에서 대립하는 자비에 교수와 매그니토의 대립은 곧 사회적 소수자가 다수자와 공생할 수 있다는 입장과 소수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수자를 지배해야 한다는 입장의 대립이다. 영화에서는 알기 쉽게 편을 구분했고 또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우월한지 정해두었으나 현실에서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성애자는 과연 동성애자와 공생할 수 있을 것인 것.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도덕 시험의 문제로 나온다면 간단히 답을 적을 수 있는 문제지만 지하철을 점거한 전장연과 출근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의 경우에 비춘다면 어떨까. 도심 한복판에서 퀴어 축제를 열려는 동성애자들과 그로 인해 불편을 겪는 이성애자의 대립은 또 어떤가.
솔직히 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못한다. 입장을 정하기 위해 안으로 파고들수록 길을 잃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엑스맨>에 대해서라면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자신의 정보들. 성 정체성이나 타고난 재능, 되고자 하는 이상향과 장애 여부 등은 그 자체로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래 라고. <엑스맨>은 이에 대해 세 가지 보기를 제시했다. 아래에 있을 것인가 위에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나란히 있을 것인가. 나는 이 객관식 문항의 답이 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을 말하자면 셋 다 그렇다.
2024년 8월 11일부터 2024년 8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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