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헨젤 Mar 04. 2023

새삼 사랑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지나간 인연에 안녕을 고함


 3월 3일 어제 이브닝 근무를 했다. 데이 근무 2개, 이브닝 근무 2개를 마친 뒤라 나는 매우 피곤해 있었고 3월 4일 오늘, 11시 넘어 겨우 잠에서 깼다.


 가족 톡방을 보니 뭔가 와 있었다. 뭐길래 이렇게 가족 톡방이 시끄러워, 하는 마음으로 카카오톡을 실행했다. 그러나 카카오톡을 실행하기도 전에 곧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우리 자매는 두 달에 한 번 전화를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왕래가 없는 편이다. 그런 애한테 갑자기 전화가 오니 나로선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 왜."


 불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여동생은 어제 나이트 근무였냐고 하며 미안해했다. 그런 건 아니니 말해보라고 하자 여동생이 말했다.


 "나 우리 본가 집청소 하고 있거든! 그래서 언니 방 청소 중인데, 나 뭐뭐 버리면 돼? 전공책이랑 싹 다 버려도 되는 거야?"


 발랄한 목소리로 묻는 여동생에게 잠시 기다리면 카톡으로 알려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짧은 생각 후 버렸으면 하는 것과 본가에 남겼으면 하는 물품의 목록을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방청소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던 찰나, 여동생이 카톡으로 대뜸 톡을 날렸다.


 [언니, 이건 어떡해?]

 [(사진)]


 여동생이 보내준 사진은 편지였다. 글씨체가 낯익은 게 누군가의 편지일까 고민하다가, 얼마 있지 않아 그 편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기억해 냈다. 특유의 작고 동글동글한 글씨체.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헤어진 지 벌써 몇 년이 넘었지만 그저 귀찮아서 버리고 있지 않던 유물이었다.


 [바로 버려; 그거 버려도 돼]

 [ㅇㅋㅇㅋ]


 내 카톡에 여동생은 바로 그 편지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렇게 귀찮아서 정리되지 않았던 추억들 수십 개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수집가 기질이 있는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초등학생 때 썼던 일기, 예전에 썼던 다이어리들, 지나간 연애 때 주고받았던 편지와 사진들까지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기 전 휴대폰 앨범에 보관했던 사진은 바로바로 지우는 편이지만, 유독 편지는 잘 버리지 못했다.


 편지보다는 DM과 카톡이 더 흔한 요즘이지만 나는 편지를 더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하며 말을 고르고, 글씨체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적어 내려 간 글들을 보는 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연애가 끝나도 편지는 가장 마지막에 처리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편지를 생각하자니 여러 마음이 들었다. 한창 연애하던 당시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써 줬는지가 기억났고, 그리고 얼마나 나를 응원해 줬는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은 힘들 때 내밀어준 손길은 반드시 기억한다고 그러지 않던가.


 지금이야 그나마 간호사라는 내 직업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어느 정도 나 자신에 대해서도 파악이 된(아마도?) 상태지만- 그때의 나는 시시철철 불안했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안했고 바깥의 작은 소식에도 매일같이 흔들렸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그 꿈들을 이루기엔 내 자신이 너무 비루했다. 부모님조차 나에 대해 좋게 말하지 않을 때 날 믿어준 사람은 그 당시 연인밖에 없었다. 정확히 내 입장에 대해 100%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여자친구가 힘들어하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끌어모아 나에게 전달해 줬던 것이다.


 난 솔직히 그동안 내 연애가... 썩 많이 사랑받지 못한 연애라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SNS의 악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만났던 사람들은 내게 한 번도 제대로 커플링 등을 선물해 준 적이 없었다. 여행도 못 가봤고, 고가의 선물을 받아본 경험도 없다. 커플 프사 그런 것도 해본 적 없다. 그동안 내 연애는 소소하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니는 데이트를 했고 당일치기로 서해 방면을 돌아다닌 게 전부다. 그 당시 애인들과 내 사정을 생각해 보면 그런 연애를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속 한구석에선 내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단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책상 한 구석에 모아놓았던 전 애인들의 편지들을 떠올려내고 그 안에 한 글자씩 절절히 적어놓은 마음들을 기억하니- 내가 새삼 사랑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한 사람의 20대에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받았던 거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랑들이 내가 힘든 길을 지나갈 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됐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여동생을 통해 모든 편지와 사진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나는 지나간 인연들에 전해지지 못할 고마움을 토로한다.


 그리고,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다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길!

 


 

작가의 이전글 Long live the patien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