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언젠가 알겠지, 뭐
시리던 겨울이 지나 봄이 되고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나올 때쯤이면, 솔로인 사람들의 70% 정도는 이런 말을 한다. "아, 연애하고 싶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으로 급격히 계절이 바뀌며 환경적으로 인간은 많은 변화를 맞이한다.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을 가진 사랑의 호르몬,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데 일조한다. 이 알고리즘에 따르면 우리가 봄이 올 때마다 사랑을 부르짖는 건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가끔 나는 우리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TV를 틀면 미혼남녀나 돌싱 분들이 새로운 인연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연자의 연애 고민을 듣고 MC들이 머리를 맞대는 장면이 나오며 드라마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다. 회장님과 아가씨의 사랑, 20대 남녀의 풋풋한 사랑 등. 가요들도 사랑에 대한 내용이 참 많다. 만남, 설렘, 헤어진 후의 슬픔 등.
어찌 보면 사랑이라는 녀석은 여러 매체의 소재로 인간에게 골수까지 뽑아 먹히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뽑아 먹었으면 질릴 만도 한데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열광한다. 어째서일까? 바로 사랑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값어치 있고 기쁜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들 다 좋다고 하는 그 사랑에 글쎄…라고 말하는 나란 인간은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나 스스로가 남을 사랑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다. 사랑이 많이 부족한 것도 안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 다가왔을 땐 무조건 경계태세를 취한다. 호불호도 극명해서 한 번 싫다고 느낀 사람은 웬만하면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남들보다 나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굳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상대에게 맞춰줄 마음 또한 없다. 계산은 무조건 정확히 해야 한다.
특히 가장 심한 건 이건대, 누군가가 연애 감정으로 나를 대해도 내가 관심이 없는 한 그걸 모른다. 나랑 같이 있으면 심장이 뛴다고 말한 전 남자 친구 중 한 명에게는 그런 말도 했다. "심장이 심하게 뛰어요? 그거 심계항진 같은데. 카페인 줄이시고 심장내과 진료 보세요." 훗날 그 남자 친구는 자기가 지금껏 살아오며 이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회고했다.
원래도 연애 방면으로 연(聯)이 없는 사람이 3교대로 근무하며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취미로 운동과 글쓰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활동에 몰입하며 최근 들어 내 연애세포는 99% 정도 사망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친구들이 예쁘게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나도 연애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면 이제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걔네 연애랑 내 연애랑 무슨 상관인데. 물론 그 남자 친구란 사람이 내 친구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는 순간 상관이 생기겠지만.
이런 나를 보며 자꾸 우리 엄마는… 내가 혼자 독거노인으로 늙어 죽을 걸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너 나이가 몇인데 곧 있으면 금방이다, 만나는 사람은 없냐 등등. 가끔 연애 예능을 보다가 꽂히면 이런 잔소리를 늘어놓으시곤 한다. 거기에 내가 "요새 살기 너무 힘들어서 결혼은 생각 없는데?"라는 말을 하는 순간 잔소리 2차 폭격이 시작된다. 내가 널 이상하게 낳아놓길 했냐, 네가 어디가 모자라서 결혼을 안 하냐, 등…… 이제 너무 반복돼서 레퍼토리를 외울 지경이다-여담인데, 내가 이래서 연애 예능을 싫어한다-.
쏟아지는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막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다. "아, 알았어! 좋은 사람 만나면 연애고 결혼이고 다 하겠지! 그만 좀 해!"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면 끝. 그 순간 우리는 암묵적인 휴전 상태가 된다.
유명한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지난 이십여 년 간 인생을 반추해본 결과 나는 한 번도 사랑을 바로 알아챈 적이 없다. 어쩌면, 그건 분명 내가 아직 사랑을 제대로 해 보진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면 사랑을 알기엔 내가 너무 어렸거나.
그렇다면 언젠가 네가 진정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오겠지. 내가 성격이 좀 좋지 않아서 바로 너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이던, 필연이던 서로의 세계가 맞닿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것이다. 그때, 만약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네가 나를 먼저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 퍽퍽한 인생에 서로의 유일한 부드러움이 되고 가시 박힌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되자.
그렇게, 천천히 내게 올 너를 기다리며.
… 결코 이 글은 엄마에게 잔소리 폭격을 받은 뒤 짜증을 가득 안고 쓴 글이 아님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