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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훈 Jul 16. 2024

1년 간 세계여행하며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우리 부부는 퇴사 후 1년 간 세계여행을 마치고 얼마 전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에 자세한 이야기는 짝꿍의 브런치북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 퇴사후 여행하는 흔한부부 이야기1

- 퇴사후 여행하는 흔한부부 이야기2


귀국하고 일주일 만에 우리는 지자체 한달살기에 도전했다. 우리가 정착할 곳을 찾아본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 그보다도 지자체에서 숙박비와 체험비 등을 지원해 준다는 콩고물이 더욱 탐이 나서 시작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여행지는 서산. 태어나서 처음 땅을 밟아보는 서산은 서울의 센트럴시티에서 1시간 5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왼쪽으로는 태안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천안/아산이 지키고 있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리는 여행고수의 면모를 뽐내여 한 달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쓰윽 스캔해 본다. 다행히 호스트분이 손이 크신 건지 뭐든 다 많이 구비해 두셨다. 휴지도 대량, 세제/샴푸 같은 생활용품도 넉넉히 있어 특별하게 생활용품을 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뚜껑이 있는 냄비가 없다. 비상이다. 


왜 그냥 냄비도 아니고 왜 뚜껑 있는 냄비가 필요한 걸까? 대단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그저 밥을 짓기 위해서다. 단기여행이라면 외식으로 다 때우거나 밥이 필요하다면 햇반을 돌려 먹을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이 장기여행자에게 햇반으로 연명하는 것은 굉장한 사치이다. 그렇다고 밥솥을 들고 다니기에는 부피가 커서 이동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는 언제부턴가 뚜껑 달린 냄비가 필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근처 마트에서 뚜껑 있는 냄비를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와 능숙하게 냄비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음.. 1년 간의 세계여행 중 가장 많이 배운 것은 냄비밥이 아닐까?"


1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많은 냄비들도 만났다. 코팅이 다 벗겨져 밥을 짓는 족족 다 타버리는 냄비가 있는가 하면 인덕션 위에서 열기를 못 버티고 깨져버린 냄비도 있었다. 냄비만큼이나 다양한 쌀들도 만났다. 아무리 오래 불려도 설익는 쌀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물을 많이 넣어도 날리는 밥이 되어버리는 쌀들도 있었다. 또 화구는 얼마나 다양한가. 인덕션, 전기레인지, 가스레인지.. 까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떠한 형태의 냄비, 어떠한 형태의 쌀, 어떠한 형태의 화구를 만나도 밥을 잘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버렸다. 서산에서의 냄비밥도 역시나 완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냄비인 데다가 세계에서 최고의 쌀인 한국쌀이 만났고, 거기에 1년 간 냄비밥을 수련한 우리가 집도를 했으니 완벽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혹자는 거창한 제목에 비해 배워 온 것이 너무 하찮아서 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만 하더라도 1년 간 세계여행을 하고 나면 막 대단하고 엄청난 것들을 배우고 깨달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보다 대단한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저 우리의 삶에 확신이 생긴 것 쯤? 그래도 냄비밥 잘 짓는 능력 하나라도 배워 온 게 어디랴. 나중에 캠핑을 가게 되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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