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누군가에게 좌우명을 묻는다면 자신의 신념이나 신조를 가장 잘 대변하는 딱 하나의 속담 혹은 명언을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개의 좌우명이 존재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나와 충돌되는 의견을 만났을 때 그 의견을 틀린 것이라 정의하지 않고 다른 의견이라 인정하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기반되면 충돌로 인해 대화가 막히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확장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물론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결과로 마무리되곤 한다.
혹여 대화가 부정적으로 흘러갈 때에는 나의 의견에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해 본다. 만약 털끝만큼의 잘못이라도 발견된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의견을 조율하면 금방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먼저 작은 것부터 고쳐 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의견을 박박 우기던 상대라도 자신에게는 잘못된 점이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 두 가지 좌우명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유용하지만 특히 회사 생활할 때에는 더욱 그랬다. 정확히 언제 이런 좌우명을 품고 살게 됐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회사 생활을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투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두 가지는 적어도 나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좌우명이고 앞으로도 마음속에 아로새기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퇴사를 하고 한 가지 좌우명이 더 생겼다.
"될 때까지 한다"
누군가 방송인 노홍철 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는 것마다 잘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는데 다 잘되셨어요?"
그 질문을 듣고 노홍철 님은 이런 답변을 남긴다.
"난.. 될 때까지 했어"
스스로 회사 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만, 돌이켜 보면 진심으로 마음이 우러나서 열심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은 이미 전체적인 방향성이 정해져 있어서 내가 무언갈 바꿔보려 해도 기껏해야 100개 사용해야 하는 걸 101개 사용하는 것으로 바꾸는 정도의 영향력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은 수많은 고민과 실험을 거쳐 최적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그 가이드라인을 따르기만 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찐) 열과 성을 다하여 가이드라인을 벗어나 새로운 성과를 만들어 내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드라마틱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아닌 회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기 위한 (가짜) 열과 성을 다했다. 그 대신 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최고의 동료가 되어야겠다 결심했다. 그 결과 처음에 언급했던 두 가지 좌우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나니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이제는 101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대로 101만 개도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져야 한다. 기업이 수십 년 동안 온갖 실험을 하며 만든 가이드라인을 이제는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무엇이 오답인지 모른 채 계속해서 실험을 이어가야 한다.
사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정답인지 모른다. 흔들릴 때도 많다. 지금이라도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반응이 지지부진하면 나의 역량을 의심하며 좌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노홍철 님의 "난.. 될 때까지 했어"라는 말을 만났다. 그래. 지금은 아니더라도 될 때까지 하면 결국 성공하겠지라고 말이다. (적어놓고 나니 요즘 유행하는 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과도 비슷한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겠다. 무슨 좌우명이 3개나 되냐고. 뭐 어쩌겠는가. 인간이란 한없이 약한 존재 아니던가. 좌우명이라도 옆에 많이 끼고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어쩌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좌우명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고 정신승리 해본다)
ps.
혹시 좌우명이 없으셨던 분들이라면 이참에 하나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글에 나온 3개의 좌우명 중 하나라도 선택해 주신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내가 노홍철 님에게 선한 영향력을 받았듯, 나 역시도 이 글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뜻일 테니. 그리고 좌우명이 인생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 나중에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