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밴드

직장인의 낭만권은 어떻게 지킬까

by 다샤

직장인 A 씨는 취미로 밴드를 한다고 했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낭만을 지키기 위해서.


-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답했다.


- 무엇이죠?


내가 물었다.


- 음악을 듣는 게 귀찮아지더라고요.


그가 답했다.


- 합주실에서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그야말로 가장 가슴 벅차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해요. 제 낭만을 누군가가 전부 도둑질해 간 기분입니다.


나는 그의 서류를 살펴보았다. 분명했다.


- 죄송하지만, 심려하신 대로입니다. 낭만을 도둑맞으신 것 같아요.


- 예?


그는 당황스러워 보였다.


- 괜찮아요, 가끔 이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들 낭만에도 권리가 있다는 건 모르시거든요.


나는 재빨리 브로슈어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 낭만권...


그는 종이에 크게 쓰인 글을 읽어 내려갔다. 한참 뒤에 그가 나에게 물었다.


- 그럼 이게 전부 누군가 제 낭만권을 함부로 도용했기 때문이라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이제 아셨으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늦지 않게 상담을 와주신 것도 정말 잘하신 거예요.


나는 그에게 다양한 저작권 보호법과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도둑맞은 낭만권에 대한 해결 방안도 모두 알려주었다.


- 고소를 진행하시는 게 가장 좋아요.


내가 말했다.


- 이런 지속적인 침해는 침해 중지 요청을 먼저 하고, 또 이런 경우에는 침해 사실을 증명하는 게 굉장히 어렵긴 하지만... 재직증명서 있으시죠?


다행히 그는 오랜 회사 생활을 하며 각종 자료와 증거를 수집해 두었다고 했다. 앨범 수집을 좋아하던 그의 낭만을 닮았는지, 나는 그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 이건 제가 쓴 일기예요.


그가 자료로 제출한 일기장을 내밀며 말했다.


- 검토해 보겠습니다.


거기에는 그런 구절이 있었다.


- 나의 낭만은 합주이다. 합주실에 있는 동안 나는 밴드의 일부가 된다. 어제는 합주를 녹화해서 공유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댓글도 잔뜩 달렸다. 영상을 공유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이거다,라고 나는 중얼댔다.


자료를 찾아보니, 예상대로 그의 영상을 보고 직장인 밴드에 뛰어든 사람들이 여럿 되었다. 모두 낭만권에 대한 윤리 의식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의 낭만을 그대로 따라 하기 바빴다.


- 다양한 증거들을 수집했습니다.


나는 다시 사무실을 방문한 그에게 서류 더미를 내밀었다.


- 기타 충동구매, 즉흥적인 원데이 클래스, CD 플레이어 중고거래까지... 모두 고객님의 낭만을 도용한 내용들입니다.


그는 서류를 든 손을 조금 떨었다.


- 이게 전부...


나는 안경을 추켜올렸다.


- 고객님의 낭만을 되찾으려면 시간은 조금 걸릴 겁니다. 하지만 잊지 마세요. 고객님은 이 낭만의 원작자세요. 그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A 씨는 복잡한 얼굴로 잠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사무실 건너편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 이 노래는...


그는 리듬에 맞추어 허공에 손가락을 꿈틀댔다.


- 아는 노래인가요?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 예, 알아요. 이 곡은 <낭만과 밴드>... <낭만과 밴드>라는 곡입니다.


그가 돌아간 뒤, 나는 그 곡을 찾아 들어보았다. 물론, 그의 낭만을 훔치지는 않았다. 훔치지 않고도 느껴져 왔다. 그의 낭만과 밴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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