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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May 14. 2022

오늘의 권선징악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2> 감상

히어로물은 아주 간단한 원리에서 탄생했다.

선의 승리. 그리고 악의 심판.


종이 만화에서 조 단위의 수익을 내는 영화사로 성장한 마블만큼이나, 히어로물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로 제작되고 있다. 마블이 내놓은 새 <닥터 스트레인지2>도 그렇다. 선과 악의 경계가 사라진 것은 오래이고, <완다비전>으로 던진 주제가 이어져 오면서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2>는 악의 서사를 들려준다. 아니, 악과 선이 공존하는, 그리고 이제 악을 다스리는 히어로를 보여준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제 사람들을 구하는 일보다는 히어로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행복해지고 싶은 한 인간에 집중한다. 각자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욕망이라는 것이 동기가 되어 삶의 의미를 찾는다. 히어로의 의미는 누군가를 구하는 데에서 왔다. 악의 심판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게 히어로의 정체성일까? 스티븐은 아메리카를 구하고자 하지만 그의 행복은 헤어진 연인 크리스틴에게 있었고, 완다는 그저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을 뿐이다. 영화는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구하고 난 뒤 히어로는 정작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반복해서 묻는다. 


"Steven, are you happy?"


결국은 완다와 스티븐이 행복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건 세상을 구하는 일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그리고 그런 '개인'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나와는 관계없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해지고 싶은 모든 개인의 이야기가 된다. 


영화는 우리에게도 묻는다. 지금 행복한지. 그리고 어떻게 행복해질 것인지.


수많은 멀티버스를 지나, 수많은 나를 만나도 나는 계속해서 같은 지점에서 넘어진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공간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스티븐은 "어떤 나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저 자기 일을 하러 앞으로 달려나간다. 어떤 스티븐도 완벽하지 않고, 어떤 스티븐도 성공하지 못했듯.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끝내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듯. 해피엔딩을 향해 멀티버스는 계속된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멀티버스를 헤집고 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고백한다.


"사랑하거나 사랑받는게 싫은 게 아니야. 그냥 겁나는 거야."


불완전한 나, 불안한 나는 엉망진창이지만, 우리는 각자의 크리스틴에 닿기 위해서 용기를 낸다.


"두려움에 맞서 봐." 


크리스틴은 이렇게 대답한다. 스티븐의 해피엔딩은 고백에 성공하는 것도, 결혼에 골인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그 형태는 이미 결혼한 옛 연인처럼, 얽히고 섥힌 멀티버스처럼, 생각보다 더 크고 복잡하고, 또 더 성대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제 권선징악은 개인의 문제가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내 욕심이다. 그리고 그 악을 이용하는 법을 배울 때, 나는 순수 악도, 순수 선도 아닌 히어로가 된다. 그 히어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오늘의 완다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지만, 다른 멀티버스에서 오늘의 완다는 두 아들과 행복한 일요일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권선징악은, 나라는 히어로에게 달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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