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심리 상담 일지 (1)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정체는 중고거래.
권태로워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래서인지 본능적으로 본가에 돌아오면 중고거래에 열을 올리게 된다.
우선 팔만한 물건을 골라 장터에 올리고, 올라가는 찜 개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거래가 조금 귀찮기도 했는데, 사고 싶은 물건을 정하고 나니 갑자기 전의가 불타올랐다.
정체는 바로 빔 프로젝터. 예전부터 위시리스트에 넣어두고 매번 구매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는데, 마침 내놓은 3개의 중고 품목 판매에 모두 성공한다면 약간의 차익을 남기고 가성비 좋은 빔 프로젝터를 구매하기 적당한 금액을 모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되기를 바라며. 나는 무작정 구매 버튼을 눌렀다.
급하게 신이 나서 결제해 버린 탓에 배송지도 본가로 바꾸지 않고 이미 짐을 뺀 자취방으로 해둔 것을 다음날 발견했다. 아직 나만의 보금자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아린 상처에서 회복하지 못했는데 정신이 번쩍 든다. 여러모로.
얼른 고객센터에 전화해 배송지를 바꾸고 열심히 중고 거래자를 기다렸다. 사진도 다시 찍어서 추가하고, 제품 설명도 조금 더 정성스럽게 쓰고.. 잘 안 팔리는 물건은 가격을 조금 낮추거나 세트 상품을 단품으로 바꾸어 올리기도 했다.
얼마 뒤, 가장 먼저 포토 프린터가 팔렸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하지도 않고 다시 보지도 않는 것이 안타까워 대학생 때 구매했던 거였다. 처음에는 잘 썼는데, 잉크랑 인화지가 금방 닳는 탓에 매번 구매하는 것이 귀찮아 한번 다 떨어지고는 그냥 처박아둔 것이었다. 구매자는 베트남 사람인 것 같았다. 어눌한 한국말에, 확인차인지 여러 계정으로 구매 요청이 와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서로 의심을 거두고는 채팅창으로 감사와 하트를 주고받으며 무사히 거래 성공.
두 번째로는 게임 칩을 팔았다. 명탐정 피카츄 실사 영화를 보고 적잖은 감동을 받은 뒤 출시 직후 구매한 것이었는데,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신기한 그래픽이나 연출은 있었지만.. 내가 늙어버린 걸까. 조금 슬프기도 했다. 이제 포켓몬만으로는 마냥 행복하지가 않다.
마지막으로는 대망의 게임기를 팔았다. 잘 팔리지도 않아서 몇 번이고 가격 조정을 해야 했다. 심지어 직거래를 요구하는 거래자가 나타나서 가격 에누리까지 해주었는데 약속 장소에서 바람을 맞은 일도 있었다. 침착하게 이 무뢰한을 신고하고 정지된 그의 계정을 확인했다. 이후 몇 번의 고전 끝에 결국 마음이 맞는 거래자를 만나 모두 판매에 성공했다.
빔 프로젝터를 켜놓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침대에 누워 과자를 우적대는 삶. 뭔가 물물교환 같다. 나에게 조금 더 가치 있는 물건으로 교환하고, 그 가치가 언제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이 잠깐의 편리함을 누린다. 다시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 또 고단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권태로움은 마치 빔 프로젝터라는 사치를 누릴 때의 알 수 없는 죄책감처럼 경제적 안락함으로 물물교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나의 빔 프로젝터가 나에게 몇 번이나 행복을 줄지, 그 끝을 향해 나는 묵묵히 가고 싶다. 불안해하지 않고, 권태에 빠지지 않고. 불안은 이제 그만 지금의 이 안락한 고요함과 거래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