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심리 상담 일지 (2)
두 번째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나는 벼랑 끝에 몰려 절박했었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아졌다.
물론 여전히 폐허는 남아 있다. 꽤 황폐하게.
나는 어린 시절 너무 불행했다.
불행한 줄도 몰랐다.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었고, 가족은 화목했으며, 교회에 가서는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이 폐허가 된 것을 보면, 그것들은 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폐허를 설명하면 그 사람은 내가 배불렀다고 말한다. 배를 곯아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내가 착각을 하는 거라고 말한다. 내 기억보다 그 시간은 끔찍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너무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칼을 들고 나를 푹푹 찌른다. 과민반응을 멈추라고 윽박지른다. 지금도 뭐가 진실인지 모를 때가 있다. 하나 분명한 건 그것이 나를 피 흘리게 만드는 행동일 뿐이라는 거다.
연애를 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내 행동과 감정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거다. 그건 자유로우면서 공포스러운 사실이었다. 그럼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가 알려주지? 항상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냥 지금 내 상태로 살아도 행복할 수 있구나. 무언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칠 필요는 없는 거구나.
그리고 내가 나로 괜찮다는 것.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걸 알게 되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이상했다.
분명 그 사람은 나에게 이상하다고 했는데. 나에게 바라는 것도 참 많았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그 사람은 내가 내 마음대로 인생을 즐길까 봐 걱정했다. 그러면 불행과 지옥이 찾아온다고 했다.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내가 선택을 할 때마다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 마음대로 하라니. 그래도 괜찮았다니. 해방감과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리고는 이런 나에게 자신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는 그 사람.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는 그 사람. 내가 미쳤던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내 과민 반응이었던 거겠지.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내 어린 시절도, 지금의 나도 행복하기 그지없는데, 그걸 나 자신만 모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과민 반응을 하는 나르시시스트니까.
하지만 폐허에 설 때마다, 자명한 사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말을 듣다 보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알게 된다.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웃으면서 인사하고, 넘어지면 괜찮냐고 토닥여주고, 내가 울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주길 바랐다. 내 손을 잡아주고, 나와 발맞추어 걸어주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기대와 환희로 들어주기를 바랐다.
그러지 못했던 시간과 상대를 원망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괴롭고 싶을 뿐이다. 어린 나 홀로 울고 있었던 이 폐허에는 이제 나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폐허에 들어와 보고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들은 나에게 경제적 안정감과 화목한 가족, 진리의 종교보다도 소중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제 그 폐허에 들어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어린 나를 찌르던 칼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아니, 이제 그 칼을 나를 지키는 데에 사용한다. 무섭지 않다. 그게 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