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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Mar 16. 2024

양가감정과 고군분투

나의 두 번째 심리 상담 일지 (3)

흑백 논리로만 세상을 보던 때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기까지, 또 그 논리에서 벗어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기준이 없으면, 흑과 백이 아니라면, 그럼 무질서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흑백 논리의 끝은 우울증이다.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을 흑과 백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흑이라고 착각하는 것들로부터 도망치느라, 있지도 않은 백을 쫓다가 인생을 허비한다.


양가감정은 그다음에 맞닥뜨린 문제였다.

흑과 백이 묽어지고 서로 합쳐지더니, 이내 세상은 전부 회색빛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이 흑과 백을 머금고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든 의미가 없다는 허무함이 덮쳤다.

하지만 이 허무함은 우울증과는 달랐다.

내가 흑일까 봐 공포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이상 백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되러 회색빛 세상에서 나는 이름 모를 힘을 낼 수 있었다.


우울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하루하루 죽지 않고 살아있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산 송장처럼 숨만 쉬고 있는 상태가 이어졌으니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자가 된 후로는 회색 세상에서 살아갈 기회가 주어졌다.


어떤 선택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이걸 선택하면 저게 아쉽고, 저걸 선택하면 이게 아쉬웠다.

그것은 이것과 저것이 다를 바 없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믿기 위한 고군분투는 필요하지만.

매일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저 살아가려고 한다.

가끔 새카맣던 세상을 떠올리며 오늘의 나를 토닥인다.

그럼 언젠간 세상이 무지갯빛이 될 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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