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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샤 Mar 20. 2024

청소와 마음정리

나의 두 번째 심리 상담 일지 (4) 

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타입이다.

막 달리다 보면 결국은 힘에 부쳐 완전히 지쳐버린다.


일상이 왜 이렇게 버거울까,라는 고민을 자주 한다.

일탈을 어려워하고, 죄책감까지 느낀다.

끝내 일상도 일탈도 사랑하지 않는 그런 비참한 감정에 휩싸인다.


청소와 정리는 우울증이 심하던 시기 나를 살려주었다.

처음에는 세상에 내 흔적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안 좋은 의미의 정리를 했던 모양이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좋은 포장지를 싸두고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내가 지울 수 있는 것은 다 지웠다.

그랬더니 과거와 함께 미래까지 사라져 버렸다.

현재는 그저 물건의 끝을 계획하는 대기 시간에 불과해졌다.


그래서 남기기 시작했다.

한 번의 정리를 거치면 쌓이는 것을 내버려 두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정리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지만,

완벽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를 되뇌면서

뭐든 70퍼센트만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결과 청소와 정리는 생존법이 되어 주었다.

무기력할 때 활력을 더해주고,

나 자신을 가꾸는 방법이 되었다.

어차피 더러워질 걸레를 왜 사용하는가?

더러워질까 봐 사용하지 않으면 걸레는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빨고 세척하더라도 사용해야 걸레는 살아있는 것이다.

청소는 우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기력에 대한 해답이었다.

내가 매일 청소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주는 증거였다.


나는 오늘도 완벽이 아니라 삶을 위해 청소를 한다.

며칠 지나면 방은 또 더러워진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 방의 주인은 죽었음을 알고 있다.

매일 청소하는 방의 주인이 되자.

그러면 나의 매일은 살아 숨 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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