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정필 Mar 22. 2023

소주병으로 음악을 만들자. 농담이 아닙니다

프라에코(Praeco) : 광고의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5. 아쉬움


한 편의 광고가 성되기까지 무수히 많은 수정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아무리 수정작업이 많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온에어가 된다면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상에 빛을 못 보고 묻혀버린 아무도 모르는 작업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2018년에 진행했던 모 소주 광고의 PT작업이 그런 예 중의 하나이다.




한동안 헨리의 유튜브 영상이 기획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Lt0XEZyedZM&ab_channel=SMTOWN


내가 해야 했던 작업은 최성수 선생님의 곡을 헨리가 보여준 방식을 응용해 소주병의 소리만으로 편곡하는 것이었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등의 여부는 설명을 듣지 못해 알 수는 없었지만 의뢰가 들어온 이상 작업은 진행된다. 특별할 것은 전혀 없었다. 작업의 난이도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음악의 구성요소는 소스가 아무리 달라져도 동일하니까. 내용을 전달받고 가장 먼저 생긴 머릿속의 고민은 베이스에 대한 문제였다. 병 크기로 보았을 때 충분한 저역의 소리를 낼 수 없을 것 같은데, 확인하기 위해 당장 편의점에 달려가 소주를 한병 사서 그대로 변기에 내버렸다.

그때만 해도 끽주가였기 때문에 무척 속이 상했지만 김 빠진 소주는 취향이 아니었다.


소주병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정을 체크해 보니 Bb2에 가까워 베이스로 쓰기엔 너무 높았다. 처음엔 소주병을 이용해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세팅을 생각했지만 가장 낮은 음역을 확인하고 나서 전략을 다르게 세웠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베이스 음역의 소주병 연주를 위해 소주병의 각종 소리를 샘플링하기로 결심했다. 소주병 소리만을 이용한 EDM버전 제작 요청 또한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샘플러는 기존에 존재하는 녹음된 소리를 표본화시켜 자유롭게 가공시킬 수 있는 장치를 뜻한다. 대중음악에서는 피터 가브리엘이 그 선두주자였으며, 국내에서는 고 신해철 선생님께서 샘플링 기술을 적극 도입하셨었다.


https://youtu.be/ON8lVgJxMQA?t=81

피터 가브리엘의 곡 제작 과정


소주병의 소리를 샘플링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녹음에는 현재 넷마블에서 재직 중인 박승민 님이 프로툴을 맡아 도와주었다. 모든 음정을 크로매틱(반음계)으로 전부 녹음하지 않고 단 7병의 소주만을 이용해 세 번에 걸쳐 2 옥타브가 넘는 메이저 스케일을 녹음했다. 물론 음정은 물의 양으로 조절하였다.

성우 녹음이 주로 진행되던 건조 한 성향의 부스였으므로 잔향 녹음은 시도하지 않고 오로지 근접음 만을 녹음했다.


소주병의 입구에 바람을 불어 만든 휘슬 소리, 병의 입구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빼내며 만든 뽕따 소리, 소주병을 젓가락으로 친 소리, 병을 소주잔으로 친 소리, 라벨을 뜯는 소리, 병뚜껑의 짤짤이 소리, 손바닥으로 친 소리 등등을 한데 모아 소주병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실험했다.

각 소리를 카테고리화시키고 음정별로도 구분할 수 있는 코드를 부여해 차트화 시켰다.

가장 신경을 썼던 소리는 병뚜껑을 여는 소리였다. 7개의 병뿐인지라 7번의 기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주병 소리를  분류, steaker라는 오타가 보인다



가장 낮은음에서 높은음까지 녹음하고 나니 2옥타브가 넘는 음역이 쌓였다. 이를 샘플러에 집어넣기 전 izotope의 RX를 이용해 노이즈와 거슬리는 소리를 제거하고, 오토튠을 이용해 정확한 음정으로 바로 잡았다. 이후 Native Instruments의 Kontakt을 이용해 크로매틱 연주가 가능한 패치를 만들어 나만의 소주병 악기를 완성시켰다.


사실 특별한 작업은 아니다. 대부분의 음악인이 알고 있을 테크닉일뿐더러 더욱 창의 적인 방법으로 샘플링 기법을 활용하는 수많은 예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사운드를 이렇게 정리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뭔가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의 상품에 대한 사운드를 정리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자작 소주병 악기 제작과정




비록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PT와 관련된 작업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곡의 공개는 힘들다. PT는 보안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요청을 해온다면 소주병 만으로 만들어진 최성수 선생님 곡의 오리지널 버전, EDM 버전을 들려드릴 수 있다.

보컬에는 a.k.a 별자리 탐험가 김현민 님과 김의성 님이 수고해 주었다.


여기 그때 만들었던 소주병 악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컨탁 사용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상업 가상악기 같은 완성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엔벨롭의 어택 타임에 신경을 써서 자연스럽게 연주하는데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필요한 분들은 잘 쓰시기 바란다


https://drive.google.com/file/d/1S5nFYzkXrd7NO9M2owI-laqQWHF6R_ck/view?usp=sharing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