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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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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의노래 Jun 22. 2022

엄마 마중 2. - 엄마 마음에 머무는 중입니다

엄마의 소유

1954년 김 씨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나는 14살이 되었어.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억척같이 돈을 벌어 온 엄마 덕분에 다행히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      


나는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어. 사실 그 선생님이 날 무지 예뻐하셨거든. 집에서 난 일꾼에 불과할 뿐 부모님의 관심이나 사랑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어. 그런 내게 선생님이 보여주신 관심과 애정은 남몰래 이불속에서 빨아먹는 알사탕처럼 비밀스럽고 달콤하면서 나를 의기양양하게 했지.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우리 집처럼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어. 사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랬겠지만. 그래서 매서운 추위로 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시작되면, 학생들이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난로를 땔 나무를 가져가야 했어.   

     

하루는 땔감 당번인 여자아이들이 나무를 갖고 오지 않은 거야. 그 사실을 안 선생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지. 선생님이 그렇게 화내신 건 처음 봤어. 화가 난 선생님은 우리 반 전체를 체벌하셨어. 나는 내 당번일 때 제대로 나무를 가져갔는데, 잘못도 없이 다른 아이들 때문에 매를 맞게 된 게 너무 억울했어. 내가 맞을 차례가 되고 선생님이 내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하셨어. 그런데 정작 잘못한 당번들 보다 나를 더 세게, 더 많이 때리시는 거야. 오해가 아니냐고? 아니, 분명 선생님이 나를 더 많이, 더 세게 때리셨어.      


그때 느낀 배신감과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유일하게 날 사랑해 준 사람이 선생님이셨으니까. 내 생각에 우리 부모님은 날 사랑하지 않으셨거든. 그런데 나의 선생님이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더 세게, 더 많이 때리다니.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너무나 큰 분노에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기로 했지.     


그렇게 내 학창 시절은 짧고 허무하게 끝나 버렸어. 그리고 공식적으로 우리 집안의 식모가 된 나의 삶은 부르트고 갈라진 내 거친 손바닥처럼 온갖 생채기와 고통으로 뒤덮여 갔지.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나는 점점 입을 굳게 다문 채 모든 것을 참으며 그렇게 숨만 쉬는 인형처럼 살아온 것 같아.


아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것이었던 선생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후, 난 그 어떤 것에도 내 소유라는 욕심을 들이대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 내 감정이나 자존심에 조차도. 나는 모든 것이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뒀어. 내 것이 없으니 남들이 달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내어 주었고 내 것처럼 고개 드는 것들은 모두 숨겨버렸어.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나는 엄마가 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늘 참았으니까요. 오빠와 내가 사춘기를 빙자하여 엄마에게 우리의 정제되지 않은 못되고 날 선 감정들을 쏟아낼 때도, 아빠가 밖에서 가져온 분노와 짜증의 불씨를 엄마에게 뜨겁게 쏟아부을 때도 엄마는 화상을 입은 채로 늘 참았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못된 소리를 퍼부을 때도, 친정 부모님이 뭐라도 맡겨 놓은 듯 자기들이 주지 않은 사랑과 헌신을 내놓으라고 강요할 때도 참고 참으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엄마는 착하니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단지 착해서 참은 게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엄마는 어쩌면 '상실'에서 오는 상처를 견디기 힘들어 '소유' 자체를 포기한 건지도 모릅니다. 소유한 게 없으니 뺏긴다고 화낼 것도 없었겠지요.


학창 시절, 많이 힘든 날이 있었어요. 내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시장에 다녀온 엄마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꼭 안아준 적이 있습니다. 파도가 덮치듯 내 위에서 몸을 크게 수그려 꼭 안아준 엄마의 품은 너무 갑작스러워 몸을 돌릴 새도 없이 내게로 쏟아져 내렸죠. 말랑말랑한 커다란 찹쌀떡 같은 엄마의 둥근 가슴과 배가 나를 덮쳐왔을 때 숨이 막히는 코끝으로 엄마의 향기가 감돌며 가슴 가득 편안함과 위로가 전해져 왔습니다.


평소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어요.

"우리 딸, 사랑한다."


엄마의 말은 짧았지만 엄마의 온몸이 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가야, '나의' 아가야. 무슨 일이든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내' 아가야, 사랑한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찹쌀떡 같은 품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엄마의 사랑이 되어 드리고 싶어요.  

 

"엄마, 나는 엄마의 아이예요. 엄마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 같지만, 결국 엄마는 우리 가족을 가졌어요. 우리 가족은 엄마가 홀로 보내온 추앙과 존중, 사랑과 배려, 관대함과 기다림을 받아먹으며 살아왔어요. 엄마가 계속 우리를 소유하고 먹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어요. 엄마 우리를 마음껏 소유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엄마에게 보내는 사랑과 존경을 모두 가져가 주세요. 이제 모두 엄마의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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