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눈, 조선을 기록하다

by 윤재


기록이 남지 않은 시대에는 바람조차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작고 어둡고 불편한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짓던 여인의 손,

장터를 오가던 보부상들의 발자국,
하루하루를 버텨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숨결이 모여
한 시대의 실체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기록되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집니다.

제국주의자들의 거친 욕망 앞에
조선의 마지막 세월은 바람 앞의 꺼져가는 촛불처럼 미약하게 사그라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먼 나라에서 온 젊은 이방인 하나가 있었습니다.
스물다섯의 선교사 제임스 게일.
그는 신의 말씀을 전하러 왔으나, 먼저 사람을 보았습니다.

제임스 스카스 게일의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을 읽으며
나는 그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어설프게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세기말, 조선이 쇠락과 근대의 갈림길 위에 있던 시절.


게일의 글 속에서 조선은 이상하고 낯설었습니다.
그가 그린 풍경에는 관찰자의 냉기 대신 초라한 초가의 굴뚝 연기, 장터의 흙냄새,
양반의 무거운 갓 그림자까지도 따뜻한 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절, 우리에게는 기록이 부족했습니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보다,
글을 남길 여유조차 없는 이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살기 바빴고, 변화의 파도는 너무 거셌습니다.


그래서 게일의 기록은, 마치 우리를 대신해 써 내려간 한 편의 일기 같기도 합니다.
잊히지 않게 하려는 마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마음이 거기 있었습니다.



‘제임스 S.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은 당시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사십여 년을 조선에 살면서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조선인들과 어우러지며 깊이 교류하였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한영사전’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문학을 번역 출간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조선의 마지막 10년이라 할 수 있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해당 원서는 서방 세계에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입니다. “낯선 문화를 이해하려는 인간적 관찰자” 게일의 기록은 여행기나 단순한 선교 보고서가 아니라, 조선의 사회, 종교, 관습, 언어, 사람들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한 문화 인류학적 수필집에 가깝습니다.




Korean Sketch book.png

(사진 출처: 크리스천 리뷰)



그의 기록은 해학과 유머를 담고 있습니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곳에 대한 여러 첫인상 중, 나가사키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배 위에서 조선 사람들의 흰 옷과 통 넓은 바지를 보고 경악했던 것이 떠오른다. 왜 저런 옷을? 그리고 저 상투는 또 뭐지? 잠깐 사이 내 머릿속에는 ‘아마 저들은 저 상투를 아주 중시하나 보다’, ‘그 통 넓은 바지 솔기마다 한 땀 한 땀 조상님들의 은덕을 새겼나?’, ‘아니면 유교식 예절이거나 오랜 전통인가?’, ‘바지통이 넓을수록 소원이 이뤄지는 걸까?’ 등등, 바지통이 저렇게 넓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p.17



"조선에 사는 외국인에게 상놈들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그들만이 오랜 기간 유교 문화가 지워버린 한민족 고유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그러므로 일반적인 노동, 즉 돈을 주고 어떤 일을 시킬 수 있다거나, 일반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상놈을 의미한다. 즉 상놈은 일을 하는 계층, working class였다"... p.66



"상놈을 감싸고 있는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평온함이었다."... p.68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엄청난 부담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지만, 상놈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다. 도시의 성문과 골목 구석구석을 빛내는 보석이다. 난 상놈을 존경한다."... p.79



"상놈의 가정생활은 아주 간단하다.

아무리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아궁이에 불 넣은 따뜻한 방바닥에 자리를 한두 장 깔고 누우면 그만, 더 이상 편한 것이 없었다. 그의 억척스럽고도 나긋나긋한 마누리가 이 모든 것을 잘 돌아가게 만들었는데, 아마 이런 여인들이 없었다면 조선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재가 되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리라.

남편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쉬는 동안, 부엌에서 여인들은 밥 짓는 소리 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울려대며 열심히 일했다. 비록 여인으로서 화려하게 채색된 삶을 살진 않지만, 그네들은 이 극동이 자랑할 만한 너무나 헌신적이고 기품 있는 여인들이다.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에 우악스럽긴 하지만 이 전쟁 같은 삶의 굴레 속에서도 남편에게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자상한,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담담하고 훌륭하게 해내는 이들은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의 자랑이리라."... p.90



"길게 이어진 박석 길을 지나 세 시쯤, 우리는 남대문 바로 밖 주막에 당도했지만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일곱 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조선에서 오랜 시간 고생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데, 이왕이면 빨리 인내심을 기르는 편이 확실히 자신에게 좋다. 조선에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선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촉하고 닦달해 봤자 아무런 변화 없이 느린 그대로일 것이며, 그들이 당신을 덜 사랑하게 할 뿐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렇게까지 느려 터진 나라가 빨리 하라는 의미의 말은 엄청 많다는 것이다.

“어서, 급해, 얼른, 속히, 빨리, 바삐, 즉시, 잠깐, 쉽게, 날래, 냉큼” 등은 우리가 매일 듣고

말하는 수많은 말들 중 일부일 뿐이다. (Ossa, quippe, ullin, soki, balli, patpi, chiksi, chankam, soupki, nalli, nankum)

물론 조선 사람들도 이 말을 듣긴 하지만, 그 효과는 25센티미터 두께의 철판에다 종이로 만든 공을 던지는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다."... p101~103



"나는 프라이팬 방바닥 위에서 잠을 잤고, 거의 새까맣게 구워졌다. 그러고 보면 이 온돌바닥은 모든 조선 사람의 기쁨이었다. 우리가 이들의 잠자는 방식에 불만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조선 사람들도 서양식 잠자리를 뒤떨어진 미개인들의 형편없는 문화라고 여겼으므로 우리처럼 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p.145



"서양에서는 한 사람 앞에 펼쳐질 삶을 대비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지만 조선 사람들에겐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현재에 눈 감고 과거만 바라보고 살도록, 한 사람의 정신을 개조하거나 압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우리는 발전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통제를 생각한다. 서양의 학생은 다양한 학업 성취와 새로 알게 된 갖가지 것에 기쁨을 느끼지만,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 안다는 것보다 단지 한자를 읽고 쓰는 것에서만 성취를 느꼈다....


서양에서 교육이란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재능의 연마임에 반해, 조선에서 교육이란 발에 붕대를 감는 것처럼 정신에 석고 깁스를 둘러치는 것이었다. 이 깁스는 한 번 굳고 나면 성장이나 발전은 완전히 멈추게 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누구보다도 유학자들이 더 기독교의 전도에 반대했다. 아무리 생각 없는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노동이란 존귀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교육을 할 때도 어린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완전히 반대로 생각했다. 조선말로 노동을 뜻하는 말은 일인데, 이 단어는 손실, 손상, 나쁜, 불길한 등의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쓴다.

게다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고대로부터 귀한 신분이라는 것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 작용이란 마치 속마음과 겉에 드러나는 표정 사이를 이어주는 통신수단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닥친 기쁨이나 슬픔의 빛은 마음에서 시작되어 표정까지 드러나게 되고, 또 겉으로 드러난 얼굴빛의 명암으로 자연스럽게 그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반면 조선에서 정신은 다른 역할을 수행했는데,

그 첫 번 째 역할은 속마음과 겉 표정 사이의 소통을 끊고 그 둘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p.230



읽는 동안 마치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는 듯한 유쾌함도 있었습니다.

낯섦을 경계하지 않고 해학을 담은...


기억은 마음의 기록이고, 기록은 시간의 기억입니다.
기억 없는 기록은 공허하고,
기록 없는 기억은 시간의 바람에 흩어집니다.


조선의 마지막 10년을 써 내려간 그의 글을 덮으며
우리가 오늘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단지 현재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기록은, 시대를 넘어 마음을 잇는 다리입니다.
게일은 그 다리 위에서
이방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선을 기억을 기억해 준 한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James Gale.png

(사진 출처: Brother Anthony, 서강대학교)




게일은 알았을까요?
그의 작은 기록들이 훗날,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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