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

by 윤재

57. 한 말씀



새 한 마리 날아와
밥 차리다 말고 시를 쓴다
햇살 밥 바람 반찬 펼쳐 놓은
둔치 밥상 위에다
콕콕
암팡지게 쓰고 또 쓴다
어느 결에 강물 한 종지 떠와서는
쓴 것 지우기를 수십 번
마음 적실 문장 하나 애타게 찾는다


쉴 새 없이 방아 찧는 부리를 바라보며
강물이 던지는 한 말씀
그만 지우란다
정말 쓰고픈 말은
행간에 숨겨두는 거라면서
통통 튀며 박수받고픈
물수제비는 흘려보내란다
두리번거리느라 핏발 선 눈부터 지우란다
그냥 흘러가란다


--김달교(1954~ )



시인’을 빨리 읽으면 ‘신’이라고 들린다. 인간인 시인과 초월적인 신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렇지만 시를 공부할수록 시인이 신에 가까이 가는 사람들로 보인다. 본디 신이란 여기 없고 거기 있으며 아주 크고 대단하다. 모두 그렇게 생각할 때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사실 신은 거기 없고 여기 있으며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모르는 작은 신이 있어, 나의 하찮은 순간들을 지탱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학술이 아닌 믿음의 차원에서 생각한다. 나만의 작은 신을 찾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이다.


숨겨진 신을 찾아 그것을 숭배하는 일은 얼마나 귀한가. 일상과 일생을 지탱하는 자세와 문장을 찾는 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신적이지 않으면서도 신적인 시인의 자세를 이 시에서 읽는다. 이 시에 등장하는 새는 마치 기도하는 구도자 같다. 부리가 닳도록 문장을 쓰고 또 쓴다. 이 시에 등장하는 강물의 말씀 역시 신의 목소리 같다. 강물에서 메시지를 건져내는 시인의 자세 또한 묘하게 초월적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시집은 각각의 경전인 셈이다. 그 속에 사람이, 삶이, 그리고 우리의 작은 신이 있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중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침묵 속에서 한마디 말을 기다리는 일이지요.


무수히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속에서 단 하나의 단어를 건져내는 일.

그 단어는 마치 날아오르는 새처럼, 순간적으로 찾아왔다가 이내 저 멀리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요.



「한 말씀」라는 이 시는 바로 그 창작의 찰나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밥 차리다 말고 시를 쓴다. “


이 문장은 시가 되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새는 영감, 혹은 단어이고, 그것이 날아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창작이 '의도'가 아니라 '순간의 비상'에서 비롯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시인의 ‘행간’이라는 표현은, 언어의 창고, 무의식의 저장소, 또는 시의 잠재성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아직 쓰이지 않은 시, 말해지지 않은 단어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겠지요. 그리고 어떤 한순간, 그중 하나가 ‘새’가 되어 날아오르며 시가 되는 것이고.


이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무형의 감각을 형상화한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쓰이는’ 것.
단어는 ‘찾는 것’이 아니라 ‘날아드는 것’.


김달교 시인은 말보다 침묵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늘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누군가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지요.
그의 시가 조용히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건,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시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단어 하나에도 조심스럽게 마음을 얹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그저 함께 머물며 바라보는 이—
바람처럼 다정하고, 새처럼 조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시처럼, 시인은 부드럽되 단단하고, 겸손하되 흔들림 없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걷되, 언제나 다른 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김달교 시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의 사람됨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수사를 피하고, 존재의 무게를 단어 하나에 싣고자 하는 김달교 시인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김달교 시인의 시 <한 말씀>은 푸른색과 두꺼운 질감이 도드라진 김환기(1913~1974) 화백의 푸른 보름달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의 1959년 작품 <달과 매화와 새>는 캔버스 위에 그려진 멈춰 있는 풍경이 아니라, 언어가 사라진 공간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침묵의 서정시로 다가옵니다.

그림 속의 푸른 달은 세상을 비추고, 매화는 겨울 가장자리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말 없는 꽃이고, 새는 지저귐 대신 정지된 시선으로 시를 쓰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달과 매화와 새>는 단순한 구상화를 넘어서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구성적 추상 사이의 다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그림은 자연에 대한 사색과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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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달과 매화와 새>, 1959, 개인 소장




매화를 그렸으나 화려하지 않고, 그림 속의 새는 시인의 새처럼 바라보게 되는 존재입니다.

달은 멀리 있지만, 그 빛은 가장 가까운 것들 비춥니다.

그림 속 푸른 달은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절제된 곡선, 묵묵한 채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림을 본다는 것은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 그림을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림은 소리 없이 말하고 있고, 말은 형체 없이 존재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던 김환기 화가.
그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시(詩)의 세계, 즉 마음의 떨림, 시간의 숨결, 기억의 잔상 같은 것이려나요?


그는 말이 되지 못한 감정들을,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그 너머를 푸른빛으로 남겼습니다.


김달교 시인의 <한 말씀>, 김환기 화가의 <달과 매화와 새>는 언어와 침묵, 시와 그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그림은 말보다 더 깊은 언어로,
시는 소리보다 더 조용한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김환기 화백은 “면은 선이 모여 만들어지고, 선은 점이 모인 것이다”라고 말했듯,

김달교 시인의 “마음 적실 문장 하나”는 그래서 김환기 화백의 그림과 같이 만들어집니다.


푸른 보름달에서, 우리는 한마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고요한 것이 가장 큰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듣고자 간절히 청하는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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