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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틀 Dec 05. 2024

2장 반가워, 마시마로!

 “바라는 것을 마음속에 그려라.

다시 한번 말한다.

바라는 것을 마음속에 그려라.” -롭 모어     


 첫 번째 행운에 이어 연달아 행운이 따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습관처럼 운이 없음을 한탄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느라 가진 것에 감격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에 찾아온 아기천사와도 이별해야 했다. 남편은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던 터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기가 찾아와 준 기쁨보다 컸다. 짧은 임신 기간 내내 유산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만 상상했다.      


 혼자 남은 오후였다. 입덧이 심해서 물조차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먹고 싶은 음식은 많은데 막상 입에 넣으면 삼키질 못했다. 심했던 입덧이 잠잠해지자 그렇게 군만두가 먹고 싶었다. 중국집에 전화 걸어 군만두와 탕수육을 시켰다. 음식이 도착했고 서둘러 포장 비닐을 뜯어냈다. 기름 냄새가 훅 끼쳤다. 그런데 그 냄새가 역하지 않고 입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만두를 집어 조심스럽게 씹었다. 바삭한 식감이 반가웠다. 튀김 만두와 탕수육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울었다. 뱃속 아기가 떠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순간 그랬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런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군만두와 탕수육 한 접시를 다 비우다시피 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에 빠져들었다.


 젖은 토양을 맨발로 걷는 나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얀색의 헐렁한 원피스를 입은 채로 매우 천천히 걷고 또 걸었는데 잔뜩 몸을 움츠린 채였다. 그리고 그 곁을 털빛이 하얀 호랑이 두 마리가 속도를 맞춰 걸었다. 새끼 호랑이는 매우 우아하게 걸으면서도 나를 관찰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무섭고 싫었다. 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저들보다 속도가 빠를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달리면 저들도 따라 달리겠지?’ 숨을 죽이며 천천히 걸었다. ‘제발 내게 오지 말아줘.’ 앞서가던 호랑이가 폴짝 뛰어 팔을 덥석 물었다. 꿈이었는데도 생생한 고통이 느껴졌다. 호랑이에게 물린 팔을 휘저으며 소리 질렀다. 작고 힘이 없던 호랑이가 이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안돼, 내 아기!”


 꿈에서 깨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해몽’을 찾아보았다. 사주, 운세, 해몽 풀이를 해주는 유료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전화 걸어 꿈 내용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상대 역시 내가 설명한 내용을 자세하고 정확하고 느리게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또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1분당 천원꼴의 상담료를 내야 했다. 결국 ‘불안한 마음 때문에 악몽을 꾼 것이니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이를 기다리면 된다.’는 말을 듣고 통화를 마쳤는데 십만 원이 훌쩍 넘은 요금은 아기 천사가 떠나간 뒤 청구되었다.


 두 번째 아기 천사를 보내고 힘겨워하던 어느 날, 또 신을 찾았다.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당신을 불러 원망하고 미워하고 탓했음을 용서하라고. 서른을 넘기지 말고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과 결혼 했으니 아이를 낳아 밀린 숙제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혔음을 고백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단 나와 남편의 장점만을 닮은 예쁜 아가를 낳고 싶었음을 반성했다.     

 

 아기 천사가 떠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소중한 기회가 찾아왔다. 아기를 낳고 싶다는 욕심에 한의원에서 50만 원이 넘는 약을 지어 먹고 병원에서 임신이 잘 되는 날짜를 받아오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바꾼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기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망상에 가까웠던 상상을 멈췄다. ‘네가 또다시 떠날까 봐 무서워.’라는 걱정 대신 안부를 물었다. 안녕하신가요? 이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있을까. 또다시 입덧은 찾아왔고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서운 속도로 입맛이 돌았다.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을 때도, 입덧이 일시적으로 멈추었을 때도 지난날을 반성하듯 쉬지 않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아빠가 변기를 붙잡고 토하는 엄마를 보면서 행복해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어. 아마 입덧이 심할수록 네가 우리 곁으로 올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안심이 들기 때문일 거야. 그곳에서 안녕하지?”

  “오늘은 입덧이 없이 고요해. 우리 아기는 벌써 효자, 효녀 테를 팍팍 내나 봐. 엄마가 요즘 뭘 먹지 못해서 팔다리가 후들거려 힘들었는데 아가 덕분에 오늘은 자장면도 한 그릇 다 비웠지 뭐야. 너무 고마운 아가. 그래도 엄마 걱정 때문에 입덧 멈추게 하지 말고 마구마구 표현해줘. 그곳에서 안녕하지?”


 가능하면 부정적인 말은 건네지 않았다. 혹시 불편한 곳은 없니? 대신 그곳은 편안하니? 라고 바꿔 표현했다. 일기장에도 “엄마는 네가 떠날까 봐 걱정돼.”라는 문장 대신 “그곳에서 안녕하지?”라는 인사말로 채워 나갔다. 그때 처음 ‘안녕’이라는 정확한 뜻을 찾아보았다.

 [안녕 : 아무 탈 없이 편안함]
       너무도 근사한 인사말이었다.      


 임신 중기를 훌쩍 넘자 병원에서 아기 성별을 알려주었다. 사내아이였다. 그때부터 아이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붙여놓고 보다 보면 태어난 아기가 닮는다 하지 않던가. ‘시크릿’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책 중, 최근에 읽은 ‘왓칭’에서 속마음이 바라보는 대로 ‘미립자’(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의 입자)는 변화한다고 서술한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보는지 언제나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맞춰 변화한다.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p39)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고 명령만 내리면 되는 걸까? 결과론적으론 그렇다. 그렇다면 태어난 아이 대부분이 사진 속 연예인의 모습과 닮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실제로는 사진을 출력한 뒤 계속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저 재미 삼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식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에 연예인의 사진을 반복해서 보는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쓰지 않는다. ‘미립자’의 형태 변화는 강력한 상상과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요구가 들어갈수록 현실에 반영되기 때문에 한 회에 그친 행위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잘생긴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고 ‘이렇게 생기게 해주세요.’를 빌지는 못했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얻은 생명이라 심장박동 소리와 태동만으로도 감격스러워서 건강 이외의 바람은 일절 꿈꾸지 않았다. 하지만 뱃속 아이에게 말 걸기 위해선 상상을 동원해야 했다. 눈코입은 어떻게 생겼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았지만 확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엽기토끼’라 불리는 ‘마시마로’였다. 태어난 아이는 놀라울 만치 상상 속의 아이와 흡사했다. 하얗고 눈이 처진 사내아이였는데 웃을 때면 둥그렇게 자른 손톱처럼 눈매가 구부러졌다. 태어났을 땐 벌겋게 보이던 살결도 시간이 지날수록 갓 쪄낸 호빵처럼 뽀얗게 피어났다. 아기는 ‘마시마로’의 실사판을 보듯 쏙 빼다 박았다.    

 

*심리학 교수, 리처드 와이즈먼은 어떤 사람이 행운을 더 많이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지’ 도대체 무엇이 이 행운이라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400명을 무려 10년에 걸쳐 추적 관찰했다. 일단 이들은 참가하면서 자기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대답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실제로 자기는 유난히 운이 좋다고 말하는 반면에 또 어떤 참가자들은 자기가 지독하게 운이 없다고 말했다. 장장 십 년에 걸친 실험 결과 실제로 운 좋은 사람들에게서 신기하게도 4가지 공통점이 나왔다.   

   

1. 일상 속에서 사소한 기회를 만들거나 알아채는 능력이 있다.

2. 직감에 귀를 기울여 다소 가볍고 긍정적인 결정을 내린다.

3. 긍정적인 언행을 하며 가장 최고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고 거리낌이 없다.

4. 행동하면서 만나는 모든 일을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중에 내가 마인드 셋을 위해 적용한 것은 3번과 4번이었다.

 긍정적인 언행을 습관화하며 태어날 아기의 모습을 상상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롭 모어는 시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각화는 마법의 특효약은 아니다. 그러나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은 맞다. 그러니 연습하라.”

 그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크고 작은 불행에도 불만을 걷어냈다. 기회는 불운이나 일시적 패배의 형태를 가장해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장 문 앞에 닫힌 창문을 아쉬워하며 한탄하기보다 긍정의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새로운 기회의 창이 바로 등 뒤에 활짝 열려 있다는 걸 눈치 챌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것이 당신에게 도착한 행운인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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