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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YOUHERE Jan 01. 2023

결핍_ 본즈앤올 BONES AND ALL(2022)

우리, 모두 허기진 존재들

*스포주의 SPOILER ALERT*

You gotta feed him

"우리 안에 있는 그게 뭐든, 우린 걔를 먹여야 해"


우리가 품고 있는 욕망이 무엇이든 우린 그걸 채워줘야 한다. 실현시키고 또 달래줘야 한다.

모든 콤플렉스는 그것을 핸들링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만약 그 욕망이 카니발리즘, 그러니까 사람의 인육을 먹고 싶은 거라면 어떨까?


영화 '본즈앤올'은 식인(食人) 습성을 가진 소녀 '매런'이 그 욕망과 마주하며 시작된다. 타인을 해쳐야지만 자신의 허기가 채워진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운 매런. 그것이 혼란스럽기는 매런의 아빠도 마찬가지. 그녀의 특이성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아빠는 매런의 출가를 결단한다.


그렇게 매런은 생모를 찾아 떠나는 길에서 자기와 같은 식성을 가진 소년 '리'를 만나고, 사랑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성장한다.



I smell you

결핍

1.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2. 다 써 없어짐


결핍이 없는 인간은 없다. 홀로 충만할 수 없기에 우린 서로가 필요하다. 다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결핍을 이해하고, 보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렇다.


매런의 결핍은 무엇일까. 일단 매런은 식인이라는, 평범하지 않은 식성으로 인해 남들과 관계 맺는 것에 서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결핍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남들도, 심지어는 매런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영화 속에서 식인 습성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의 정체를 냄새로 알아챈다. 매런과 리의 첫 만남에서도 킁킁대다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을 먹고 싶은 게) 나뿐인 줄 알았는데"라고 고백하는 매런과 눈을 맞추며 웃는 리. 그 둘은 서로의 냄새를 맡았고 단박에 이해했다. 같은 결핍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다 말하지 않아도 이뤄지는 교감.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다양하지만 슬픔의 결이 비슷한 사람끼리의 그것은 더욱 강렬한 것 같다.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고, 내 상처를 이해받는 기분. 서로가 좀 더 완전해지는 기분.

진짜로 괴물이 되어 버린 생모를 만난 매런은 자기 옆에 자기를 이해하고 보살펴주는 사람 한 명만 있었어도 훨씬 나았을 거라며 포효한다. 그리고 그런 매런을 감싸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리. 털어놓기 어려운 과거의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리에게 "나한테는 다 말해도 돼"라며 안아주는 매런.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보듬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둘의 모습이 어찌나 용감하고 아름답던지.



Love might set you free

막 출가했을 때 매런은 한동안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빠의 가죽재킷을 입고 아빠가 남긴 테이프를 들으면서 그간의 기억들을 회상한다.


매런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았던 아빠는 끝끝내 매런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런을 출가시킨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부모란 원래 자식을 다 이해할 수 없고, 영원히 곁에서 지켜줄 수도 없으므로.


"원해선 안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되면서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는 테이프 속 아빠의 대사는 매런이 스스로의 욕망을 거부하기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차라리 자기를 부정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매런은 그 테이프를 뽑아 망가뜨린다. 그리고 리와의 관계를 통해 더욱 용감한 방식으로 자기만의 평화를 구축한다.

사람을 먹고 싶은 욕망과 충돌되는 불편한 감정들. 이를테면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을 마주한 매런은 그것에서 비롯하는 괴로움을 회피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르치려 들고 그루밍하려고 하는 '설리번'에게 확실히 선을 그으면서 홀로 됨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다. 날것의 욕망에 어쩔 줄 몰라하던 시기를 지나 윤리적 고민에까지 나아간 그가 기특하게 여겨질 찰나에 매런의 옷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매런은 아빠의 가죽 재킷을 벗어던지고 진청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데님은 자유의 상징이 아닌가!


*때마침 떠오른,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디젤의 광고 캠페인 'Keep the world flawed'를 덧붙인다.


Bones and all

타인을 [수용하기]에서 [섭취하기]로의 이행은 마치 내 [존재의 확장]을 넘어 나와 그 상대의 [일치] 단계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매런과 리의 마지막 씬에서 그런 걸 느꼈다.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의 모든 걸 받아들이고 상처까지 나눠 먹기. 그리고 그의 존재를 먹기. 뼈까지 남김없이 싹 다 먹기.


'식인'이라는 주제를 다뤘기에 가능했던 극단적 은유가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이에게 가닿으려는 노력을 넘어서, 그의 모든 것을 내 모든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

먹어버리기. 먹히기.


제발 자기를 먹어달라는 리의 요청에서, 리를 잃기 싫어 괴로워하다 그를 먹기 시작하는 매런에게서 느낀 불편하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2022년 12월 31일을 강렬히 장식해 준 '본즈앤올'.

매런과 리가 몸소 보여준 용감한 사랑법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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