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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y 17. 2024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도 성장했습니

글쓰기의 힘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둘째 아이는 어기적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학교 갈 준비는 안 하고 유유자적 만화를 본다.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는다. 나는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옷을 입히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둘째는 옷을 입은채 가방을 앞에 두고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울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교실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미 수업이 시작됐을 듯 해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셋째를 등원시키고 둘째를 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나는 둘째에게 알아서 학교 가라고 말한 후 셋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셋째는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을 외쳤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 떼를 쓰는 아이를 데리고 가다 학교 어플을 통해 전화가 왔다. 담임 선생님이었다. 

"선혜가 학교에 오지 않아서 전화드렸어요."

"네"

"선혜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집에 있어요. 저는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해서 나왔어요."

"혼자 등교하지 못하나요?"

"아니에요. 아이가 늦게 일어나서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어요. 수업 중에 혼자 들어가야 하니 부끄러운 가봐요. "

"네. 늦어도 괜찮아요. 등교하는 게 중요하니 셋째 어린이집에 보내고 꼭 등교시켜 주세요."

 

셋째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싶지 않았으나 꼭 등교시키라는 담임선생님 전화에 마음이 조급해져 얼른 먹이고 보내야 했다. 셋째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면서 둘째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혜야 엄마 성혜 보내고 가고 있으니까 가방 메고 얼른 나와. 알았지?" 

 ".... 으응..."


짐작했던 대로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아이에게 왜 밖으로 나오지 않았냐고, 얼른 나오라고 다그쳤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에게 화를 내지 말고 잘 타이르자 마음먹었지만 막상 집에 도착해 가만히 앉아 우는 아이를 보니 화가 났다. 당차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이가 주눅 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내 어릴 적 모습이 생각나 화가 났다. 부끄러워 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고 혼이 났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한 번씩 화를 내곤 한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들어주고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등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선생님의 전화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화가 나는 것인지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급해진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전에 둘째 아이가 늦게 일어나 학교 가는 시간이 늦어져 버리면 간혹 가지 않겠다고 주저앉아 울었었고, 아이가 늦게 교실로 들어가면 부끄러워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다그침에도 꿈쩍 않던 둘째에게 큰소리를 내어 억지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어깨가 축 처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아이의 기분을 망친채 보내고 싶지 않아 집 앞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밥을 못 먹어 배고플 것 같았다. 편의점 앞에 다 달아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곤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어렸을 때 많이 울었어. 그런데 어른들이 다 하나같이 울지 말라고 다그쳤어. 그래서 울지 않고 말하는 법, 마음을 정리하는 법을 잘 몰랐어. 엄마도 많이 울었었기 때문에 선혜의 마음을 잘 알지만, 울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 엄마는 선혜가 부끄럽다 해서 달팽이처럼 집 안으로 쏙 숨지 않았으면 좋겠어. 선혜 요리사가 되고 싶다 했지?"


(고개를 끄덕인다.)


"요리사가 되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하고 하고 싶을 때만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해. 성실해야 해. 성실하려면 지금부터 선혜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해야 해. 알았지?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다음엔 울지 말고 너의 마음을 이야기해 줘." 아이는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이가 진정이 된 것 같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고르게 했다. 그런데 고개를 숙인 채 내 옆에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아이가 직접 고르지 않자 나는 이거 먹을래? 이건 어때?라고 물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육개장 사발면과 자두맛 쥬시쿨, 그리고 초코바나나 볼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둘째 아이와 편의점 앞 테이블에 마주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양갈래로 묶은 아이의 머리카락이 컵라면 국물에 닿을락 말락 했다. 어깨가 축 처져 울던 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호로록 라면을 먹었다. 감칠맛 나는 따뜻한 국물과 꼬들한 면발을 먹으니 기분이 좀 나아진 듯했다. 다 먹은 후 나는 "가자"라고 말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는 반 앞까지 데려다 달라했다. 교문으로 들어서 아이와 함께 반으로 가려는데 학교 앞에서 안내해 주시는 분이 교실까지 갈 수 없다 해 아이와 곧 헤어져야 했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울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언니와 싸우거나 셋째에게 자신의 물건을 빼앗겨 울면, 아이를 달랠 때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면서도 울지 않고 말할 수 있다고, 울면 너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울다가 멈추었다. 아이가 울면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기만 했던 때와 달리 울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고 상대방도 알아채지 못한다 말하니 쉽게 울음을 그쳤다. 우는 아이를 혼내지 않았다. 남편과 다투게 되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울기 바빴는데, 언제부터인지 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속상한 마음보다 먼저 남편의 욕구를 생각하니 화가 잦아들었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무엇을 하려 할 때 응원하기보다 이기적이라고 화를 내곤 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남편이 어떨 때 화가 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남편과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할 때 남편은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왜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해 버리는지 생각해 보니, 남편이 거절할 거라고 나 혼자 판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남편에게 거절 당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꼭 하고 싶은 것인데 거절 당한 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렇게 남편의 마음을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남편이 새롭게 보였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을 지켜보는 힘이 생겼다. 글쓰기를 하면서 생긴 힘이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 나가게 된 이유는 - 같은 이유로 갈등이 반복되었던 것도 있지만 - 글을 쓰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해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거칠게 말하고 행동할 때 남편과 나 사이에 믿음과 배려가 없는 것 같이 느껴져 화가 나고 억울하기도 하지만, 남편이 무엇을 원하기에 이렇게 화를 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니 남편의 언행에 속상해 울지 않게 되었다. 화를 내는 것이 일방적인 행동이 아님을 깨달으니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글쓰기'가 주는 효과인 듯하다. 일상 속 이야기를 쓰다 보니 관찰해야 했고 논리적인 글의 구조와 성찰로서의 마무리를 위해 상황의 원인을 분석해야 했다. 상황을 쓰다 보면 그때의 일이 생각나면서 화가 치밀어 감정을 막 쏟아내기도 했지만 나의 글이 독자에게 읽힌다고 생각을 하니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추측이 아닌 사실을 써야 했다. 글을 명확하게 쓰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지만, 특히 글쓰기에는 스스로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마음을 토닥여주고 원인을 분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둘째 아이가 자신이 원치 않은 상황에서 울며 소리 지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바로 상대에게 전달하길 바란다. 아이가 울 때마다 계속해서 울음을 그치도록 달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감정조절을 해야 하는데 글쓰기는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었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한다.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이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의 핵심에 대해 말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자극하고, 발전시키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한다. 나는 글을 쓰며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왔다. 작가로서의 업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글쓰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이 아닌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글쓰기란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숙제라 생각한다면 지속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글쓰기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라는 동굴 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 빠진다면 글쓰기를 결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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