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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는 이유

가족의 의미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온 어느 저녁이었다.


"아빠 엄마 오실 거야"

"응?"

"아빠 엄마 오셔"

"어머님 아버님 오신다고?"

"응."

"언제? 지금?"

"응."


시부모님이 오고 계시다는 남편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아이들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거실과 준비되지 못한 저녁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배달시킬까?" "밥 해서 있는 거 먹으면 되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 냉동실에 있는 육개장과 주꾸미 볶음을 떠올렸다. "오빠, 아래 편의점에서 콩나물 사다 줘" 다급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요청했다. 나는 빠른 속도로 냉동실에서 재료를 꺼내 해동을 위해 물속에 담가두었다. 개수대 안 설거지 거리를 해치우고 밥솥에 쌀을 씻어 안쳐두었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서둘러 움직이다 보니 하나씩 음식이 만들어지고 정리가 되었다.


각종 반찬을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렸다. 전기레인지 위에는 국이 보글보글 끓고, 메인요리인 주꾸미 볶음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매콤한 냄새가 피어오르며 요리가 완성되어 갔다. 음식이 얼추 준비되자 서둘러 주변을 정리했다. 먼지가 쌓인 곳을 찾아 물티슈를 뽑아 들어 닦기 시작했다. 깔끔한 시부모님께 점수를 깎이고 싶지 않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저분한 곳을 정리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정돈된 모습으로 보이길 바랐다.


"와~ 인형 많다."

집으로 들어오신 시부모님의 첫마디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 셋째는 방방 뛰며 반가워했다. 둘째는 시부모님이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미리 아빠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 맞이했다. 잠옷 위에 긴 점퍼를 걸치고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한달음에 다녀왔다. 주말을 함께 보내고 이틀 만에 맞이한 거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할머니가 그렇게도 좋을까. 아이들의 환대에 시부모님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들내외 집이라 약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아이들이 있어 충분히 화목한 분위기였다.


시아버지는 급한 용무로 망가진 핸드폰을 수리해야 했고, 남편에게 맡기고자 오셨다. 오전이라도 연락을 받았으면 미리 저녁준비도 해놓고 집안 정리도 해놓았을 텐데, 한 시간 전에 알게 되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쟁여놓은 냉동식품이 있어 다행이었다. 해동한 후 채소만 추가해 끓이고 볶으면 되어서 금방 차릴 수 있었다. 이런 날이 있을 줄 알고 사다 놓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은 할머니께 자신이 한 것들을 자랑하고 보여주느라 신이 났다. 첫째 아이가 자신이 상탄 것들을 보여주자 둘째가 샘이 났는지 미술학원에서 만든 작품들을 가져와 이것저것 보여주었다. 셋째는 이에 질세라 열심히 글씨 쓰고 그림 그려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이에 화답하듯 열심히 우와~아고 잘했네라고 연실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덕분에 온 집안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할머니의 손주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녁 드세요. 당신도 얼른 와요 "

"우리 온다고 저녁 했구나, 애썼겠네"


시부모님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데 약간의 어색함이 감돌았다. 아버님은 국에 있는 건더기를 밥과 함께 드시다 주꾸미 볶음을 한 젓가락 집어드셨다. 어머니는 국은 옆으로 밀어두시고 약간의 밥과 함께 여러 반찬을 골라 드셨다. 시댁에서 가져온 시금치로 만든 시금치 무침과 총각김치, 주꾸미 볶음 등 반찬 위주로 드시는 모습이었다. 깎아 놓은 감도 드시고, 삶아 놓은 고구마도 드셨다. "고구마 작은 것만 가져왔니? 이렇게 쪄 먹어도 맛있네"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 덕분에 여러 농산물을 집에 가져올 수 있었고,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리니 어머니가 주신 것 잘 먹고 있어요,라고 확인시켜 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식사가 끝이날 무렵 아이들을 위해 주문해 주신 치킨이 도착했다. 금방 만들어 따끈한 허니콤보를 다 같이 맛있게 나눠 먹었다. 시댁의 최애 치킨이다. 짭조름한 간장과 달콤한 맛이 섞여 시할머니, 시부모님 모두 좋아하신다. 가장 좋아하는 맛의 치킨을 함께 둘러앉아 먹으니 더 맛있었다. 맛도 사랑도 함께 나누며 그렇게 가족이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저녁 잘 먹었다."

어머니는 신발을 신고 나가시기 전 뒤를 돌아보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급하게 차린 저녁이었지만 나름 부모님께 대접해 드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좋아해 주시는 부모님을 보며 감사함이 차올랐다. 지난 결혼생활동안 부부간의 갈등으로 속을 썩이며 걱정시켜 드린 점에 죄송스러운 날들이 많았지만, 다시금 천천히 그 관계를 회복해 갔고 신뢰를 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과 함께 충만함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자녀들이 못났건 잘났건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 경제적으로든 마음적으로든 채워주려고 하신다. 시부모님의 따뜻한 밥과 시댁에서의 잠자리는 부모님의 품이 되어 우리를 감싸 안는다. 보호막 속에서 자녀인 우리는 안심하고 자라난다. 가족은 서로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함께여서 기쁘고 행복하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야 나는 가족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다.




"가정이 안정돼야 다른 것들이 잘 풀려나가는구나"


오래 알고 지낸 친한 동생이, 긴 통화 끝에 내뱉은 한마디이다.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한 시간여를 이야기했다. 프랑스와 한국, 비행기로 13시간 거리에 있는 동생이지만 늘 가까이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얼굴을 보지 않고 음성만으로 긴 통화를 이어갔다. 삼일 내내 전화가 왔다. 남편과의 관계에서의 답답함을 가지고 전화를 걸었다. 들어주는 것 하나는 자신 있어,라고 여겨온 나는 동생의 이야기를 쭈욱 들었다. 심리학 공부모임에서 다져온 듣기 실력과 열린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야기 끝에 동생 또한 부모님에 대한 짙은 원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린 자녀들을 키우며 자신의 어린 시절 보상받지 못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겹쳐 보이며 서운함이 솟아오른 듯했다.

혼자 아이들을 돌볼 때마다 느껴지는 우울감의 원인에는 엄마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 빈 공간을 남편이 채워주었으면 했지만, 매일 퇴근이 늦어 혼자서 아이들을 케어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우울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남편이 그 시간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이 육아와 살림에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낄 때마다 남편이 밉기도 하지만 집안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하지 않은 듯했다.


나는 그 우울함의 원인을 찾아갔다.

"남편이 함께 있으면 우울함이 해소되는 거야? 우울하다고 느끼는 다른 이유가 있을까?"


엄마와 단 둘이 지내야 했던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랑과 돌봄이 자신이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에서 괴리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가정 안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돌보고 있는데, 엄마는 일로 아이였던 자신을 혼자 있게 했고 맛없는 음식으로 몇 날 며칠을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받지 못했을까, 평범한 가정에서 살지 못했을까, 내가 힘든 건 엄마 때문이라고 원망해 왔다.


그 마음이 남편이 옆에 없을 때마다 불현듯 찾아와 우울함이 느껴졌고, 그로 인해 지쳐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심리학을 공부하며 부모님을 이해하고 원망의 마음을 흘려보냈던 나로서, 그 마음에 공감하며 가만히 들어주었다.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에 여러 질문을 하며 엄마에 대한 상처가 원인이었음을 함께 알아갔다.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성인이 된 자신을 자꾸만 건드리고 있었다. 엄마를 피해 프랑스로 왔지만 엄마에 대한 마음으로는 독립이 되지 못한 듯했다. 이제는 엄마만의 삶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며 마음이 단단해져 가기를 바란다.




작가님들께 ⸜❤︎⸝‍


추운 겨울입니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만은 따뜻하시길 바랍니다.

작가님들 곁에도 난로와 같은 가족이 있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가족에는 원가족과 현가족이 있습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나를 포함한 가족 그리고 나와 남편이 만든 지금의 내 가족을 말합니다.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원가족과 현가족을 구분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내가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가족이 남편과 나 그리고 자녀들이었지만

부족하다 느꼈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아쉬움으로 남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에게 하소연을 했던 것이죠.

그럼 부모님은 한달음에 달려와 저를 감싸주셨습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나아질리는 없고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고 책임지게 되면서 더 이상 남편과의 갈등을

부모님을 통해 해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생겨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글을 쓰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합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정서적인 독립을 이루게 되면서,

내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과도 원활히 소통해 가고 있습니다.

남편의 원가족인 시댁에서도 원만한 관계를 이루고 신뢰하는 관계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으로 마음이 충만하고 따뜻한 요즘입니다. 혼자 있어도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이제는 제가 가족과의 갈등을 극복한 내용을 공유하며 가족과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가족과의 사랑으로 따뜻한 겨울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작가님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 안에서 흔들릴 때

그런 나를 감싸 안고

마음이 단단한 한 사람으로 성숙해 가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께 자신감 있게 말씀드립니다.

행복하세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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