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와 작고 귀여운 양갈래와의 세침한 만남
지금으로부터 약 7여년 전,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던 만화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었다. 야구만 주구장창 보던 나에게 다가왔던 어딘가 모자른 첫사랑, 그리고 끝사랑으로 두고싶은 그런 작품들이 눈에 아련해진다.
19살의 어리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을 애매한 나이에서 26살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달라진 점도 많고 만화에 대한 인식이나 여러 받아들이는 것들이 달라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서도, 그 당시의 추억과 처음 봤던 작품들 덕분에 지금의 브런치도, 그리고 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커갈수록 예전의 것들이 작아보인다던데, 내가 봐왔던 것들은 과연 지금도 작아져 있을까? 라는 생각에 시작해보는 새로운 연재물, 마법소녀 뿐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대서사시가 시작된다.
이번 소소한 이야기를에서 다루는 이야긴 본인의 첫 덕질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가식없고 스스럼없던 그 당시의 나를 기억하면 많이 부끄러운게 사실이다. 물론 그럴수 밖에, 아니면 그럴 만 했다. 라고 마무리짓는게 사실이지만 여러모로 그렇고 그런 것도 사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던 여러 작품들 덕분에 조금씩 더 천천히 다가 갈수 있었음에 고마움을 지금은 가지고 있다.
이번 연재글은 '마법소녀의 33년 이야기', 그리고 '마법소녀의 2000년대 이야기' 이후로 새롭게 기획해보는 연재작이다. 다시끔 잡아보는 그런 연재를 많이 기대해주시길 바라며, 그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가는 것을 약속드리며, 즐겁게, 아니면 행복하게 봐주셨음 좋겠다.
-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기만 한데!
“앞으로 알아낼 것이 많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만약 이것저것 다 알고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럼 상상할 일도 없잖아요!”
7년전의 2017년 어느 봄 날, 그 날은 여느 봄과 다름없이 따스하고 나른했다.
고3이라는 무거운(?) 나름의 중책을 두었던 본인, 하지만 공부는 뒷전에, 장래에 대한 생각은 쌓인 빨래마냥 점점 더 무너질 차례였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독후감을 써서 내면 무언가를 준다는 그런 학교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었다.
반의 책장은 뒤져봐도 읽을거리가 맘에 들지 않았었다, 다 찾아만 봐도 어딘가 딱딱한 책들. 처음에는 그저 새로운 선생님만을 조금은 원망하며 뒤적거리던 찰나에, 한 책이 나의 손가락질을 멈추게 했다.
그 책의 이름은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이라는 책이었다.
빨강머리 앤...? 당황했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이름, 어릴 적 서프라이즈에서 잠시 다루었던 만화와는 이미지가 많이 다른 어두운 이야기에서 찾았던 그런 지나가던 만화 중 하나. 그저 잊었다고만 생각했던 그런 작품이 책장에 있었을 줄이야, 어딘가 시시콜콜한 훈계식 책도 아니고 조금은 특이했던 책을 처음 펼쳐보던 그때의 감정을 잊지 못한다.
책이 너무나도 재밌었다. 그것도 정말로!
읽어나갈때의 첫 감정은 딱딱한 책이었지만, 속은 부드럽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작가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해보고, 그것을 만화에 접목시키는 그런 책이 있었을 줄이야. '백영옥' 이라는 작가를 인상깊고 부럽기도 했었다.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이렇게 낼 수가 있었다니. 그게 가능하다니!
작고 귀여운 빨강머리를 한 어느 소녀의 시행착오 새집 적응기라면 편할 '빨강머리 앤' 이라는 작품을 알아가기 위해 집에 가자마자 작품을 뒤져봤었다. 책에서 봤던 것보다 더 재밌고 분위기가 서정적이었음은 덤. 만화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 이러한 작품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짱구같이 가족적이거나, 아니면 과격한 여러 만화는 그저 눈대중이었던... 그런 시기에 이렇게 말많고 수다스러워도 정을 주고싶은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아니 일단 어느 여자 캐릭터가 화가 난다고 남의 머리를 깨부실까!
말 많고, 상상을 잘하는 것이 나랑 잘 맞아떨어진다 생각할때,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던 때에, 그리고 이 '앤' 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좋아할 지경에 와있던 와중, 예상치 못한 사건이 나에게 다가왔다.
- 갑자기 찾아오는 슬픔을 길모퉁이에 맞이하며
고3이라는 중책, 아니라면 주위 사람들의 안좋은 시선. 어느 한가지가 나를 괴롭게 했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남자가 이런 만화를 보는 것, 그것도 빨강머리 앤이라는 작품을 보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매우 놀라웠을 (아니라면 놀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떤 19살 먹은 남자애가 다른 만화도 아니고, 그것도 빨강머리 앤을 좋아하겠어? 라는 인식이 깔려있었고, 나는 심지어 따돌림을 당하던 사람이었다.
수도 없이 들었던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에 대한 놀림, 내가 좋아하던 어느 야구팀에 대한 놀림은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나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다. 이런 모습이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던 앤이었지만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자신만의 공상으로 남기던 어릴적 앤의 모습과 너무 같아 보였었다. 부모님에게 말하자 싶으면 바쁜 부모님에겐 무언가 말할 그런 시간이 없고,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자 싶으면 퍼질 여파가 너무나도 두려웠다. 어딘가 있는 그런 두려움과 고통은 너무나도 아리고 아팠다.
시간이 흘러 6월, 결국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내가 가장 아끼던 어느 책에 누군가 이렇게 썼었다.
XX (야구팀 이름) X망 16:0
이런 식의 낙서가 적혀 있었다. 좋아하던 팀이 16:0 으로 졌던 다음날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가뜩이나 여러 스트레스가 쌓이던 시점에 이런 일까지 터지자 학교고 뭐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앤이 길버트의 귀여운(?) 놀림에 석판을 내리치던 감정과 비슷하다면 비슷할, 아니면 더 심한 분노가 생겼었다. 참고 참았던 그런 리미터가 터지면서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까지 했었고,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오게 되었다.
여러 대화아 오고가며 다행히나마 사건은 크게 퍼지진 않았다. 나의 담임 선생님이 어떠한 마법을 써서 그 애들을 진정시키고 멈추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에는 아무런 후폭풍도 일어나지 않았던게 기억에 남는다. 앤이 마릴라와 매튜에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때쓰다 결국 참으며 길버트를 무시하며 다니던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도 잘못이 없다고는 부정은 못하겠지만,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며 조금은 이 빨강머리 앤이라는 작품을 멀리하자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조금은 어그로를 끌었으니까, 떡밥을 주었으니까 얘네들이 이렇게 잡아서 놀렸구나 라는 그런 생각, 아무렴 이젠 그런거 그만 봐도 된다는 누군가의 말에 따라 서서히 멀리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진지하게 듣지 않아도 될 충고였다고는 생각한다만.
시간은 더 흘러 겨울, 학교라는 거대한 울타리 숲 안에서 이젠 나와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때가 다가왔다. 고3이라는 나름 뜻깊은 시간을 추억하며 학교와의 이별을 앞두며 책장을 넘기던 때에, 다시끔 그 책이 나에게 살며시 입맞춤을 해주었다.
1년이란 짦은 시간에 찾아왔었던 만화라는 매체에 대한 흥미,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앤 셜리에게 맞이 해주는 그런 첫 만남은 이별하자는 다짐을 다시 깨부시게 했었다. 조금은 아픔으로 남아 있었을 그런 트라우마를 눈 녹듯이 없애주었던 그 책과의 마지막 만남, 그리고 졸업이라 읽는 그런 이별은 더 커버릴 나에게 자그마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는 어느 가수의 노래도 그렇듯이, 그저 지나칠만했던 캐릭터를 익숙한 곳에서 보질 못한다는 아픔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앤 셜리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다시 못볼 사람도 아닌 여러 좋은 사람들과 캐릭터는 졸업이라는 이별에 한가지 긍정을 불러주었다. 만화에서의 만남, 그리고 책에서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니까.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했던 그런 만남과 여러 시행착오, 그리고 헤어지면서 잊지 않겠다는 그런 약속을 간직하며 정든 학교를 떠나보냈다. 나의 작은 앤이 커져버린, 그런 기분을.
시원하기도 하면서 조금은 달짝지근한 그런 기분을 느꼈던 졸업식, 그 이후 앤이라는 작고 상냥한 친구를 만난 이후, 내 인생은 이렇게 서서히 한가지 싹이 싹트고 있었다.
- 그건 환청케이크일거야, 아마
졸업 직전, 고3은 수능이 끝나면 학교를 일찍 끝내주었다. 가령 체험학습이나 단축수업같은 그런 시간들. 그렇게 오후 직전에 끝나는 학교를 떠나 집으로 향하면 항상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만화찾기 였다.
빨강머리 앤이 첫 시작을 알려주었다면, 나에게 만화의 재미를 주었던 작품은 바로 '아즈망가대왕' 이다. 그 이전에 썼었던 아즈망가대왕에 대한 추억이라면 추억일 그런 몇주간의 작은 관람회가 그랬다.
빨강머리에서 촉발된 그런 시작점은 시간이 날때마다 만화를 찾게 만들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적당한 만화를 보길 원했던 나에게 선택된 한 작품이 바로 이거다. 딱 학교생활에 남자 한명없는 미소녀 동물원, 거기다 귀엽고 개성강한 캐릭터까지, 어쩜 이렇게 내 취향에 맞는지.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졸업에 맞추어 천천히 봤었을때 그 충격은 이루어 말하기가 어려웠다.
학교 생활, 나에겐 천당과 지옥을 자주 가게 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어떠한 때는 잘 지내다가 어떠한 때에는 친구, 아니면 그저 같은 나이의 아이들에게 놀림과 가끔은 폭력을 당하던 아픈 장소가 그랬다. 가끔은 자퇴를, 가끔은 일부러 정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그런 장소에 저런 밝은 분위기의 작품은 실로 충격이었다.
윤나라 (미하마 치요) 라는 주인공. 어리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만큼 똑똑하고 야무진 소녀에게 아무도 눈초리도 안주고 되려 자신들과 같은 학생이라는 인식과 도움을 준다. 저런 작은 아이에게도 관심을 가져다 주는 그런 만화 속 세상이 너무나도 부러웠고, 조금은 아팠다. 현실이 그러지 못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쩜 가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아 보일까? 하는 그런 질투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게 맞다.
삶의 괴리감이 절로 느껴지던 와중에 다가오는 졸업 에피소드가 있었다. 날짜에 일부로 맞추며 끌며 봤었는데 정말 그런 졸업식에 마지막화가 딱 졸업식이었다. 나의 고등학교 생활 3년, 아즈망가대왕의 캐릭터들의 학교생활 3년. 같은 기간이자 다른 추억, 다른 학교생활이 참으로 놀랍기도 했다. 대학교도 이미 확정되어 마음을 놓기도 했지만, 다가오는 대학생활에 대한 불안감과 설렘도 뒤섞이던 때라 졸업식 에피소드가 매우 인상깊게 남는다.
웃음과 박수로 마무리되었던 마지막화,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경의가 눈물을 짓게 만들었다. 그래도 졸업식 당일에는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독특하고 예상이 되지 않는 나를 잘 이해해주고, 같은 공감대도 맞춰주었던 사람에게 미안함과 죄송스러움이 몰려오는 것은 왜일까. 더 생각하지 않으려도 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분위기도 분위기고, 내 마음이 그렇게 흘렀다.
졸업식이 마무리되어 모두가 헤어지고 돌아가던 시간에 드디어 청춘이라는 것이 시작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했던 그런 20대의 시작이 지금 다가올줄이야.. 그게 나에게 올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을 좋게 말하면 개성이 강한 친구들과 같이 보며 지냈다는 것이 정말 좋았었다.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재밌는 장르일줄은 몰랐는데 그런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나에겐 3년을 되돌아보게 하고, 가끔은 이런 생활이 그립게 만들어주었으니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 학교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바라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꿈을 가지는 그런 캐릭터들에게 몰입할 수있어서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대학생활이 이렇게 많은 친구들과 있다면 좋은 곳일거라는 매우 행복한 생각도 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졸업이 흘러 시작된 첫 대학생활. 그리고 그 직전에 펼쳐진 또다른 덕질의 세상은 나에게 많은 사건사고와 추억을 가져다 주게 된다. 과연 어떠한 일들이 있었을까? 그건 2편에서!
- 글을 마치며
간만에 연재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덕질을 시작한지 약 6여년이 흘러간게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지금에서야 느끼게 됩니다.
남들에 비해 받아들이는 매체가 느렸던 저에게 '애니메이션' 이라는 장르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물론 만화를 아예 안본 것은 아니지만 빨강머리 앤이라는 매우 서사가 깊고 감동도 주는 만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었죠. 나중에 책도 찾아보고 여러 미디어 믹스를 돌려보며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즈망가대왕 역시 생각에는 없던 작품이었지만 '학교 생활' 이라는 공통적인 분모가 있었고 어릴적에 특이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며 관심있던 만화라 처음 보고서 이런 작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했던 만큼 판타지 요소가 있던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요. 치요 아버지라는 캐릭터가 그런 환상을 주었는데 막상 봤을때는 좀 기괴한 캐릭터여서 살짝 실망도 했었구요.
대학교를 다니기 직전에 맞이했던 작품들, 그리고 그 이후의 작품들은 더 놀라운 만화들이 찾아올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 생각해봐도 이 나이에 저런 작품들을? 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하지만 저의 삶을 바꿔주었던 작품들이었기에 부끄럽긴 하지만, 흑역사가 아닌 특이한 역사라고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비록 남들에게 말하기에는 그렇지언정, 제가 생각하기에는 부끄럽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브런치에 써내려가지 않나 싶어요.
아무쪼록 다음 2편에 다가오는 마법소녀들, 그리고 첫 팬미팅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오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