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나를 아주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마 나 또한 그를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 그에게 끌린다. 나는 그에 대해 큰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를 멀어지게 한 오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친구가 지닌 미덕에 대해서만 친구가 되려 한다. 그 경향이 아주 심해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 악덕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제3자로 인해 벙어리가 되고 만다. 나는 나의 지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인물과 성실한 관계를 맺기 원한다. 그 때문에 나는 진실을 말할 기회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 사람들은 나를 초대하고 나는 그들을 보러 간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보여 주지 않는다. 나는 일찍 친구들과 헤어진다. 나는 이상적인 우정을 간직하기 위해 그곳을 떠난다.(주1)
좋은 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나? 아닌데...
신뢰보다 겉치레로 친구들의 마음을 살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것을 그들도 알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말을 안 했을 뿐이었다. 말을 안 하는 것이 나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 당시의 친구의 표정이나 몸짓을 읽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냥 내 말하는 것에 급급했다.
상대를 보고 그 뜻을 지레짐작한다는 것은 무딘 나에게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무딘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걸어놓고 내가 숨고 싶을 때는 그 속으로 숨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의 민감성은 서로 누가 더 많이 좋아하느냐에 따라 민감한 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그 지점에서 마음이 동하니 더 좋아한 사람이 어떻게 보면 겉치레 같아 보이지만 아닌... 다 퍼준다. 서툴렀다. 좋아하는 방법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좋아하니 마음이 앞서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 상황의 이면을 봤으면 어땠을까?
내가 할 수 있다면 최상의 결론을 짓고 싶다.
이 최상이라는 말도 상대를 생각하지 않은 나만의 결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해야 뭐라도 나오고 그 끝에서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