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려움의 발목은 자립이었다

by 지음


“두려움 안에도 배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내가 처음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심한 두려움을 느끼지않았다면 나는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곳을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건 ‘진실함’을 보지 못한다는 뜻과 같다.”

지금껏 줄곳 살펴보았지만 이생 현자들의 공통적인 지혜 중 하나는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에서도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통찰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특히 샤론 같은 명상가들은 삶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 늘 ‘연결’을 모색한다.(주1)


어제 읽었을 때는 와 닿지 않는 문장이었다.

새벽에 다시 읽으니 완전 새롭게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이분법으로 삶을 살았는가!

책을 찬찬히 읽어가면서도 판단해서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앗차~’하는 순간이 너무 많다. 단정지어 버리며 한계를 정한 나날을 후회했으면서도 지금도 순간순간 그렇게 하고 있다.


내가 정한 나를 세우는 3년이라는 시간을 차곡차곡 잘 쌓으면 뭐든지 안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책을 읽고 이해로 아는 것 말고 정말 옆에서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쌓기만 하면 그 뒤로는 모든 것이 따라온다. 쌓은 후 하나씩 달성되는 모습에 나도 양으로 먼저 쌓으면 된다는 것을 목격한다. 이건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나의 간접 경험이다. 이런 간접 경험은 나에게 양분이 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걸음마가 막 시작한 아이들을 본다. 잡고 있는 걸 놓고 한발만 떼면 걸음마다. 놓고 떼는 건 아이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서움에 계속 잡고 몇달을 간다. 그러다 우연히 손을 놓고 그 한발을 떼는 순간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나를 잡고 있는 두려움은?

자립인 것 같다. 내 가슴속에 무한한 우주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자립이라는 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 의존과 자립의 순간을 분간 못해서 힘들었던 것 같다.

못난 모습이 들통날까 두려워서 지금도 바닥인데 더 바닥인 나를 어떻게 보여주느냐는 마음이 먼저 앞서서 미루고 미루었다. 감정이 날개를 펼치고 그렇게 나를 규정하고 있었다.


일깨움. 두려움 앞에 서서 나아가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나에게로 연결된 무언가가 왔고 나도 나로써 잘 연결하기 위해서는 나를 키워야한다는 것도 안다.

흔들리면서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나’라면 그렇게 한발짝 나아가겠다.


다 감사하다.

나에게 온 모든 것들이...


언제쯤이면 화면 속 캐리소 작가님처럼 그냥 받아들이고 하는 순간이 올까?

나를 깨워주시는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ps. 캐리소 작가님의 한결같은 모습이 너무 멋있어보여 한 컷 도촬했습니다. ㅎ

허락구하고 올립니다.



주1>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팀페리스, 토네이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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