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아테네의 유명한 신탁이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선언했다. 이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의아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가장 지혜로운 자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이 신탁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당시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진 정치가, 시인, 장인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행동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이들이야말로 무지한 자들이고, 나는 최소한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탁이 맞을 수도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이 일화는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철학적 태도를 강조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왜 권력층에게 미움을 샀는지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는 고대 아테네에서 태어나고 자란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글을 남기지 않았고,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그의 사상을 기록했다.
소크라테스는 부유한 조각가 소파로스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청년 시절부터 철학에 심취했다. 아테네 시민들과 광장에서 토론하며, 당시 권력자들이나 지식인들의 무지를 폭로하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지만, 기득권층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의 철학적 방법은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상대방이 가진 신념을 질문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모순을 깨닫게 하는 방식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요약되는 그의 사상은,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정한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결국 정치적 반감을 샀고,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철학을 굽히지 않았고, 독배를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음조차도 철학적으로 받아들였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태도로 법에 순응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오히려 그의 철학을 더욱 빛나게 했고,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미쳐 서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그의 제자 크리톤은 몰래 도망칠 기회를 마련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부하며 말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 동안 아테네의 법 아래에서 살아왔고, 법이 나를 보호해 주었는데, 이제 와서 법이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해서 이를 어기는 것은 옳지 않다."
제자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 "죽음이란 단순히 영혼이 육체에서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이 일화는 법과 도덕, 시민의 의무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민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법이 부당할 수도 있지만, 법을 따르는 것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보았다.
"결혼을 해라. 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성격이 불같고 다혈질이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녀가 화가 나서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를 퍼붓다가, 결국 물까지 끼얹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웃으며 말했다. "천둥이 친 후에 비가 오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지."
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크산티페는 더욱 화가 났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아내와의 다툼도 철학적 사고로 받아들이며 유머로 넘겼다.
이 일화는 인간관계에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법을 보여준다. 불만을 토로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유머와 철학적 태도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삶 자체를 철학적으로 살아간 인물이었다. 그의 명언과 일화들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