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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원 Jul 26. 2023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




  나의 친할머니는 오랜 시간 병원에 누워있었다. 그 기간이 길어, 그저 오랜 시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빠는 어쩐 일인지 할머니댁에 방문했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기에 119를 불렀다. 119 대원들은 할머니를 구하러 가는 중에 잠답을 나누며 웃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누워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할머니에게 영상통화로 집을 보여주는 가족들. 할머니가 직접 보고 싶다고 했었나 가족 중 누군가가 보러 오라 했었나.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휠체어로 옮겨지던 할머니는 병원 측의 실수로 휠체어에서 넘어졌다고 했다. 다친 다리는 괴사 되었다. 할머니는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다. 엄마와 아빠는 이불을 들춰 이미 죽은 다리를 보고는 했다. 이불이 올라갔다 내려가면, 할머니는 점점 물건이 되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내가 살던 대전이었지만 혼자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그래서 부모님이 갈 때, 내 시간이 맞으면 가게 되는 곳이었다. 나는 동생과 형보다 할머니를 자주 보러 갔다. 할머니가 나를 무릎에 앉히고 조수석에 탄 기억이 없었다면, 용돈은 필요 없으니 마음만 달라던 내 편지를 재밌게 읽지 않았더라면, 덜 보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죽은 다리가 시리다고 말하던 할머니는, 식탐이 많았다. 늘 돈가스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엄마에게 사과와 오이를 넣은 사라다를 먹고 싶다고도 했다. 명절에 부친 동그랑땡도 나보다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작은 락앤락 통에 돈가스와 사라다를 챙겼다. 할머니는 남기지 않고 전부 먹었다. 어른들은 노인네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고 했지만 할머니는 병실 노인 중 제일 건강해 보였다. 나는 옆에 있던 이름 모를 노인을 눈에 담았다. 다음에 왔을 때, 그분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역시, 우리 할머니는 오래 살 거야. 우리 할머니는 앞으로도 병실 침대에 누워 돈가스를 먹으며 살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내 동생이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가도 동생인 줄 알고, 동생 얘기만 하며 다음에는 동생을 데려오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워낙 예민한 내 성격을 알아서 네 동생이 막내손주라 그런 거라고 얘기했다.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다고 대답했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렇게 아는 사실을 몇 번 더 확인하니, 할머니에게 가는 길이 더욱 멀게 느껴졌다.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 댁에 들러 안마도 하고 말동무도 한 건 나인데. 언젠가는 할머니 댁에 갔는데 할머니가 팥죽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팥죽을 먹지 않겠다고, 능청스럽고 예의 있게 거절하는 법을 몰라 알겠다고 말했다. 나는 맛없는 팥죽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남은 팥죽을 봉투에 싸 가방에 넣었다. 집에 가는 길 어딘가에 버렸다. 그 진실을 알고 있는 걸까. 그 진실을 아직도 기억해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걸까.



  서울에 올라와 살면서는 할머니를 볼 일이 더욱 적어졌다. 그러던 중에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할머니돌아가셨다’

  별다른 수식이나 띄어쓰기, 마침표도 없던 문장이었다.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신기할 만큼 ‘뭐해?’라는 연락이 많이 왔다. 나는 대전에 내려간다 말했고 이유를 물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 뒤에 오는 위로들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영정 속 할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그 할머니가 장례식 내내 미웠다. 나는 장례식 중 이따금씩 영정을 보러 갔고 미운 마음을 부풀린 채 그 자리를 떠났다. 할머니가 화로에 들어가니, 어른들이 울었다. 휴게실에 올라가 음료수를 마시고 한 시간 반이 지나 할머니가 화로에서 나왔다. 할머니는 작은 목함에 담겨 나왔다. 정말로, 할머니는 물건이 되었네. 나는 그제야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동생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 나으면 같이 꽃을 보러 가자고 했었다. 그 표정은 이미 꽃밭에 나와 있는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여전히 할머니가 밉다. 마냥 미워할 수 없어서 더 밉다.



  아빠는 할머니가 쓰러지던 날의, 잡담을 나누던 119 대원들을 욕했다. 그 표정을 직접 보지 못해서인지 아빠만큼 화가 나진 않았다. 할머니와 같은 병실에 있던 노인을 보며 안도하던 나와 다를 게 없으니, 이제는 화를 낼 수도 없다. 할머니는, 나를 어떻게 봤나요.



  언젠가부터 나는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 사랑하는 것을 경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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