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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Jun 20. 2023

N형 가수, S형 가수. 그게 뭔데?

 <댄스가수유랑단>보아가 중견가수 느낌이 나는게 곡을 안 써서 그렇다고?


N형 가수, S형 가수. 그게 뭔데? by 진지 음악평론가. pixabay.


1. <댄스가수 유랑단>을 보다가 동생이 한 마디 했다. “보아(BOA)는 이제 삼십 대 중반이고 한창때인데 왜 중견가수 느낌이 날까. 곡을 안 써서 그런가.” 이 말은 내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보아가 2000년 데뷔이고 올해로 24주년을 맞았으니 그런 느낌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뒷문장이었다. ‘곡을 안 써서 그런가.’


2. 같은 여성 솔로가수인 아이유가 곡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유명하다. 화려하게 불행하기보다 초라해도 행복해지고 싶었다고. ‘너랑나’(2011), ‘좋은날’(2010)로 메가히트를 기록하던 스물둘 직후였다. ‘너랑나’와 ‘좋은날’은 아이유의 인기만큼이나 잘 알려진 김이나 작사가와 이민수 작곡가의 작품이다. 이때 아이유는 가장 불안했다고 한다. 영민한 그녀는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이 곡이 커리어적으로 자신의 현재와 우연히 잘 맞아떨어졌지만, 사실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며 영원히 이 운을 지속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불확실한 외부상황에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의탁해서 가느니, 차라리 내 진짜 자아(이야기)로 가수생활을 이어가 보는 모험을 해보자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3. 결과는 대박이었다. [챗셔] 앨범에 수록된 ‘스물셋’은 발칙하지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방송활동은 줄이고 공연 관련 행사만 하며 노를 반대로 젓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스물다섯의 이야기를 담은 ‘팔레트’와 ‘에잇’(스물여덟)까지. 아이유는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대중에게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해마다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부지런한 창작활동을 통해 날 것으로 들려주었고, 대중은 아이유의 성장스토리를 함께 ‘가사’의 형태로 느꼈다. 그때마다 아이유는 새롭게 태어났다. 


4. 여기서부터 MBTI의 N과 S개념을 빌려와 이야기하고 싶다. 


5. 아이유가 N형 가수라면, 보아는 S형 가수다. 여기서 N은 직관과 상상력으로 설명되는, 창의적이고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서사가 있는 가수라면, S는 김연아와 같은 기술과 장인정신이 있는, 보다 시스템적인, 나이에 비해 놀라운 면을 가진 가수를 뜻한다. 


6. 보아는 기술과 시스템 측면에서 빛나는 가수다. SM이 국내 최대 기획사로 승승장구하던 시절 상징 같은 존재였으며, 열다섯에 데뷔라는 신동적인 모먼트, 그리고 완벽한 무대와 퍼포먼스, 특히 그중에서도 ‘춤’과 관련해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한 가수다. 보아가 작사 작곡한 노래도 꽤 되지만, SM 스타일이 그렇듯이 아티스트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공개하진 않는다. 오히려 일정 부분 신비주의에 가깝다. 보아는 ‘걸스온탑’ 같이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 유영진 스타일과 유독 잘 맞았다. (10주년 발매 앨범 타이틀곡인 ‘베러(Better)’도 유영진 작품으로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7. 지금도 보아는 존재만으로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독보적인 아티스트이지만, 지난 이십 년 간 웬만한 콘셉트는 다 해봤을 거다. 아이유처럼 자신의 이야기만으로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긴 어렵다는 점에서 본인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다 내려놓지 않고 시스템에 기대어 커가는 성장이, 안정성은 있지만 그만큼 장기적으로 매력적이기가 쉽지 않다. 보아는 꾸준히 앨범활동을 해왔지만, 멜론에서 그녀의 음악을 인기순으로 조회하였을 때 여전히 ‘No.1’, ‘아틀란티스 소녀’, ‘발렌티’, ‘마이 네임’같은 노래들이 상위권에 노출되어 있다. 최근까지 활동한 노래들이 이전 노래들에 비해 큰 인기를 얻고 있진 못하다는 사실이 팬의 한 명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8. 그런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S형의 기술과 시스템을 지님과 동시에 N형의 과감함과 스토리텔링, 싱어송라이팅을 해내며 성장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전 세계적 인기가 납득된다. 이번 데뷔 10주년을 맞아 ‘방탄노년단’이 될 때까지 해보자고 했다던 한 멤버의 말처럼, 그들은 이미 노년이 되어서도 그들만의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 참으로 부러운 커리어다. 대다수의 아이돌이 N의 창작단계까지 가지 못하고 S(시스템, 자본)에만 머물러있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대개는 프로듀싱과 소화능력의 갭차이로 인해 나타나는 세월의 흔적이다. 


9. 결론은 아티스트가 자기 곡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좋은 작곡가와 작사가를 만날 ‘운’에 기대는 것보다, 사소하더라도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로 곡을 써서 대중에게 다가가는 연습을 할 때, 비로소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자기 힘으로 가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빛바램 없이 말이다. 어느 주말, 예능을 보며 한 생각이었다.


N, NS, S? by 진지 음악평론가 / 각각 아이유, 방탄소년단, 보아 / 우먼센스, W, 얼루어 제공.


음악평론가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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