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살리아(Rosalía) <LUX>
로살리아의 신보 <LUX>는 아름답고 난해했다. 그 난해함을 따라가 봤다.
들으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쿨투라 신인상 투고작입니다.
예술가에게 ‘불멸’은 축복일까, 아니면 형벌일까. 밀란 쿤데라는 노인의 손짓에서 소녀의 매혹을 발견하고, 육체 소멸 후에도 타인의 기억 속에 이미지가 반복되는 현상을 불멸이라 정의했다. 그러나 플랫폼 환경 속에서 이러한 불멸은 현시대 아티스트에게 형벌로 작동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예술가의 실존을 단 하나의 이미지, 즉 ‘단일 기표’로 고착시켜 산 채로 박제한다. 로살리아(Rosalía)는 <LUX>에서 이 박제된 자아로부터의 탈주를 통해, 동시대가 요구하는 절대적 가치에 맞선다. 신의 편재성을 보호가 아닌 감시의 시선으로 치환하고(‘Dios Es Un Stalker’), 오케스트라의 신성을 지하 클럽 사운드와 결합한다(‘Berghain’). 남성 중심의 절대자를 지운 자리에는 역사 속 성녀들의 페르소나를 소환한다. 언어 또한 단일 언어 중심의 팝 관습을 거부하고 서로 다른 언어들을 음절 단위로 분절해 곡에 배치한다. <LUX>는 메시지, 형식, 사운드 전반에서 능동적 파괴를 감행함으로써 예술적 주권의 회복 가능성을 시험한다.
로살리아는 이 곡에서 전지적 시선이 지닌 권위를 의도적으로 해체한다. 이 곡은 신의 절대적 편재성을 현대의 스토킹 행위로 재정의한다. “Nunca te enteras que soy tu sombra(내가 너의 그림자라는 걸 넌 끝내 눈치채지 못하지)”와 ‘Detrás de ti voy(나 이제 네 뒤를 따라가)’라는 가사는 신의 편재성을 감시로 전복시킨다. 신을 향한 기도는 “메시지함(buzón)이 터져나간다”라는 표현으로, 플라톤의 관념 세계는 신의 소유물처럼 취급된다. 특히 호세아서 2장의 성스러운 설득을 “Este corazón lo voy a secuestrar(그 심장을 납치하겠어)”라는 폭력적인 단어로 번안한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전복은 음악적 구성 차원에서 감시의 메커니즘으로 청각화된다. 저음역대 콘트라베이스의 묵직한 피치카토(Pizzicato)를 넓은 음정 간격으로 운용하여 성큼성큼 다가오는 보폭의 감각을 구현한다. 지속과 확장을 거부하며 분절 반복되는 저음 진행은 포착되지 않는 감시자의 존재감을 강조한다. 로살리아는 클래식의 정통 주법을 긴장 유발 장치로 사용하며 신의 발자국을 집요한 추적의 소리로 재해석한다.
전지적 시선의 권위를 해체한 로살리아는 절대자의 자리를 역사 속 성녀(聖女)들의 목소리로 대체한다. 이는 신성의 속성을 ‘유일신’에서 ‘다성적인 신성’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시키는 형식적 전략이다. 이 과정을 상징하는 인물은 17세기 일본의 선승 료넨 겐소(Ryōnen Gensō)다. 료넨은 미모로 인해 수행 공동체에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기 얼굴을 인두로 지져 훼손했는데, 이는 타인의 시선이 규정한 신체로부터 감행한 급진적 탈주로 해석된다. 로살리아는 료넨의 서사를 담은 문구 “美貌なんて 捨ててやる / 君に台無しにされる前に (미모 따위 버려버리겠어 / 네가 망치기 전에)”를 ‘Porcelana’ 트랙에 배치한다. 곡 제목인 ‘도자기(Porcelana)’는 매끈하게 가공된 표면적 이미지를 상징한다. 로살리아는 ‘도자기’를 깨뜨리는 서사를 통해 표면 아래에 가려졌던 내면의 감각을 전면화한다.
로살리아는 앨범 전반에서 전자음악을 질서 붕괴의 기호로 삼는다. 인트로의 현악 선율이 정지하는 순간, 탈조성적 전자음이 개입하며 질서를 흔든다. 불협화음과 분절된 스트링이 맞물리는 이 순간은 시스템 오류를 연상시키는 글리치(Glitch) 음향으로 작용하며 긴장감을 급격히 고조시킨다. 전자음악의 개입은 사운드의 위계를 ‘성(聖)’에서 ‘속(俗)’으로 전도한다. 특징적인 점은 전환의 순간마다 남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Porcelana’에서 두기 에프(Dougie F)는 위협적인 어조로 화자에게 말을 건네고, ‘Berghain’에서는 구원과 기도의 서사 뒤를 이브 튜머(Yves Tumor)의 거친 목소리와 클럽 비트가 덮친다. 로살리아에게 전자음악은 성스러운 질서를 교란하며 인간의 날것 그대로인 욕망을 노출하는 통로다. 이러한 파괴 이후 로살리아는 “Ego sum nihil, ego sum lux mundi(나는 무(無)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라틴어 문구를 반복하며 ‘무(Nihil)’의 상태를 강조한다. 로살리아가 도달한 ‘무’는 타인이 부여한 기표를 소거한 상태, 즉 주권이 가능한 조건이다. ‘무’ 이후의 사운드는 가사가 배제된 채 오케스트라와 콰이어가 크레셴도로 쌓아 올리며 그 신성을 형상화한다.
료넨 겐소의 서사를 빌려 이미지를 해체하기에 앞서, 앨범 초입에는 자신을 ‘유물(Reliquia)’로 규정하는 선언이 선행한다. 두 번째 트랙에서 그녀는 16세기 스페인의 신비주의 성녀 테레사 데 헤수스(Santa Teresa de Jesús)의 서사를 끌어온다. 이 곡은 프랑코 독재 정권이 성 테레사의 손을 권력의 상징으로 탈취해 임종 직전까지 소유했던 역사를 환기한다. 로살리아는 “Coge un trozo de mí, quédatelo pa' cuando no esté / Seré tu reliquia(내 한 조각을 떼어가, 내가 더는 곁에 없을 때를 위해 간직해줘 / 내가 너의 유물이 될게)”라고 노래한다. 이 곡의 서사는 신체를 지리적 거점에 따라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구조를 띤다. 로살리아는 플라멩코의 중심지 헤레스(Jerez)에 예술적 기교의 상징인 ‘손’을, 로마에는 종교적 경외를 응축한 ‘시선’을 남긴다. 파리에서의 고립은 ‘혀(언어)’의 상실로, LA에서의 창작 과정은 ‘시간’의 소멸로 치환된다. 실제 공연 중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던 라코루냐에서의 사고마저 서사의 일부로 편입된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푸가적 사고를 연상시키는 대위법적 현악 구성을 취한다. 로살리아가 낭만주의적 화성 대신 바로크적 형식을 차용한 것은 감정의 과잉을 구조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선택이다. 독립적인 선율들이 반복과 모방으로 얽히는 구조 속에서 주관적 비애는 배제되고, 시작의 감각만이 남는다. 이러한 구조적 엄격함은 스타로서의 상실감을 신파로 흘려보내지 않고 훼손된 육체의 조각들을 부패하지 않는 유물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앞서 현악기가 제시했던 대위법적 주제를 이번에는 로살리아의 목소리를 최소 단위로 분절한 사운드 파편들이 이어받는다. 이는 앞서 서술한 ‘신체의 파편화’를 사운드 차원에서 실증하는 장치로, 마치 성물함(Reliquary)에 안치되기 위해 분리된 성인의 유해와 같은 물성을 획득한다. 브리지에서 등장하는 ‘Somos delfines saltando, saliendo y entrando / En el aro escarlata y brillante del tiempo(주홍빛 고리를 넘나드는 돌고래들)’라는 가사와 분절·왜곡된 전자 음향이 결합하며, 이 자기 해체의 과정은 음악적인 황홀경으로 승화된다.
로살리아는 신성을 다루는 서사와 함께 팝 음악의 형식적 근간인 ‘가사’ 자체를 해체한다. 스페인어를 중심으로 영어, 라틴어, 아랍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등 다수의 언어를 음절 단위로 해체하여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가사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보다, 소리의 질감으로 먼저 인식된다. 이러한 접근은 영어가 지배하던 팝 시장의 언어적 위계질서를 전복한다. 특정 언어 체계에 귀속되지 않는 다성적(polyphonic) 구성은 신성이 특정 문화나 신앙의 전유물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다. 로살리아가 구현한 신성은 탈위계적이며, 서로 다른 언어의 파편들이 교차하는 균열을 통해 청자의 감각에 동시적으로 투과된다. 특히 기도와 의식에 주로 사용되는 라틴어와 아랍어를 병치함으로써 이러한 청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난해함’에 대한 평가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친절함’으로 규정하는 서구 팝 시장의 인식 구조와 맞닿아 있다. 대중음악의 즉각적인 소비를 지양하고 청취자의 예술적 개입을 유도함으로써, 해석의 과정 자체를 청취 경험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작품의 경계를 재정의한다.
로살리아가 <LUX>에서 시도한 언어적 해체는 ‘La Yugular’에서 구체화된다. 그녀는 쿠란의 구절인 “우리는 인간의 경정맥보다 그에게 더 가까이 있노라”를 인용해 신성이 자신의 육체와 밀착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로살리아는 스페인어로 전개되는 서사 사이에 “너를 위해 하늘을 파괴하고, 너를 위해 지옥을 무너뜨리리라. 약속도, 위협도 없다(من أجلك أدمّر السماء...)”라는 아랍어 기도문을 삽입한다. 이 기도문은 직접적인 의미 전달보다 의식적인 울림으로 남으며, 세속적 언어 체계 속에 이질적인 신성의 언어를 배치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곡은 소우주와 대우주가 조응하는 프랙탈적 구조를 띤다. 하이쿠 한 편에 국가를 담거나 침 한 방울에 은하를 투영하는 가사, 그리고 거대한 우주를 초월하는 존재가 화자의 내면에 안착한다는 3절의 내용은 겨자씨 안에 수미산을 담는다는 불교의 '개자납수미(芥子納須彌)’나 수피즘의 우주론과 궤를 같이한다. 아랍어 가사에서 인후음을 강조한 보컬 연출로 형성된 신비로운 분위기는 곡의 말미에서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음성으로 이어진다. 스미스는 이슬람교의 전통적 우주관인 ‘Seven heavens(일곱 개의 하늘)’를 넘어서, “Tenth heaven, thousandth heaven(열 번째, 천 번째 하늘)”까지 가겠다고 선언한다. 이어지는 “Break on through the other side(저 너머의 세상으로 돌파하라)”라는 외침은 앞선 프랙탈적 서사가 지향하던 무한한 확장성과 결합한다.
로살리아는 스스로 이미지를 파괴한 폐허 위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발현되는 새로운 신성을 탐색한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의 영적 동반자 관계에서 영감을 얻은 이 곡은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결핍을 긍정하는 ‘비소유적 사랑’을 현대적 영성으로 표현한다. 음악적으로 이 트랙은 철저한 절제를 통해 뒤이어 등장할 ‘Berghain’의 맥시멀한 충격을 극대화하도록 배치되었다. 도입부의 피아노 한 대만으로 축소된 미니멀한 편성은 로살리아의 보컬이 지닌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청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후렴구를 향해 고조되는 사운드 속에 은근하게 크레셴도로 받쳐주는 오케스트라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수렴하는 그릇이 되고, 특히 카덴차를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선율로 로살리아의 목소리를 뒤따르는 바이올린은 보컬과 긴밀한 콜 앤 리스폰스(Call and Response)를 이루며 감정의 파고를 높인다. 이러한 주고받음의 구조는 가사 속 성 프란치스코와 성 클라라, 혹은 ‘나’와 ‘너’라는 두 불완전한 존재가 서로를 지탱하는 형상을 청각화한다. “Con te la gravità è graziosa e la grazia è grave(너와 함께라면 중력은 우아하고 은총은 무겁다)”는 가사의 역설처럼, 로살리아는 신성을 초월적 공간이 아닌 연민이라는 인간적 현실 속에서 재발견한다. 결국 이 곡은 신성화된 자아가 타인의 고통에 가닿을 때 발생하는 윤리적 빛을 증명하며, 앨범의 서사를 ‘자기 파괴’의 미학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하는 구원의 윤리로 이동시킨다.
<LUX>의 해체 전략이 관습적 부정으로 오독될 수 있다면, ‘Berghain’은 이를 음악적인 균형으로 중재하는 중심 트랙이자 서사의 전환점이다. 곡의 도입부는 테크노 비트 대신, 프레스토(Presto)의 속도로 휘몰아치는 현악군과 콰이어로 시작된다. 이는 베르디(Verdi)의 <레퀴엠(Requiem)> 중 ‘진노의 날(Dies Irae)’을 연상시키는 고전적 압박감을 형성하며, 베르그하인을 세속적 공간이 아닌 심판의 장으로 변환한다. 빠른 템포와 단조의 밀도는 쾌락 대신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근원적 불안을 환기한다. 팀파니의 타격과 집요한 크레셴도(Crescendo)는 청자를 고조된 긴장 상태에 붙들어 둔다.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하는 전자음악과 분절된 보컬은 긴장을 완화하는 대신 현실의 소음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구성은 성스러움이 보호의 기능을 상실한 시대적 불안을 드러낸다. 구원을 암시하는 비요크(Björk)의 선언은 곧이어 등장하는 이브 튜머(Yves Tumor)의 냉소적인 언어와 충돌하며 관념 속 절대자의 부재를 확인시킨다. 그러나 이는 절망적이라기보다 신성의 위치를 재설정하는 과정이다. 로살리아는 베르그하인의 폐허 위에서, 외부 구원 대신 육체와 리듬을 통해 작동하는 현실적 신성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선 ‘Berghain’이 수직적 신성의 허상을 폭로했다면, ‘La Perla’는 그 비판을 수평적 관계 속의 가해 구조로 이동시킨다. 이 곡은 앨범 전반을 지배하던 맥시멀리즘을 배제하고, E장조의 왈츠풍 어쿠스틱 기타로 포문을 연다. 탐미적인 선율은 유혹의 장치가 아니라 상처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는 재판정의 배경음악으로 기능한다. 이 전개는 고통을 예술적 불멸로 승화시키라는 요구 자체를 거부한다. 진주가 이물질로 인한 상처의 잔여물이라는 물리적 속성과, 스페인어 속어로 “문제의 인물”을 뜻하는 의미를 결합해 화려한 외면 뒤에 숨은 나르시시즘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우아한 현악 사운드로 대조를 이루는 “Red flag”, “감정 테러리스트”와 같은 가사는 사랑이라는 환상 속에 박제된 감정적 착취의 실체를 직시하게 만든다. 로살리아는 상처의 미학화를 거부하고 고발의 언어를 선택한다. 야리차(Yahritza)와의 협업은 개인의 분노를 공적 증언으로 확장하며 비판의 층위를 쌓는다. 로살리아가 상대의 허영심을 조롱하며 논의를 시작하면, 야리차는 상대의 기만적 태도를 폭로하며 비판의 논거를 보강한다. 곡 후반부, 왈츠풍의 곡조에 콰이어와 오케스트라 편성이 더해지며 형성되는 음악적 무게는 가해 주체의 권위를 박탈하는 선언적인 힘을 획득한다. 로살리아는 예술가에게 강요된 ‘고통의 불멸화’라는 형벌을 거부하고, 고통의 주체를 명확히 심판함으로써 과거와의 결별을 선택한다. ‘La Perla’는 분노를 감정의 분출이 아닌 윤리적 판단의 언어로 정식화한다.
로살리아가 감행한 ‘절대적 가치에 대한 거부’는 관습적 기표의 소거를 거쳐 ‘니힐’의 상태로 이행한다. 앨범의 1막을 마친 로살리아는 8번 트랙 ‘Mundo Nuevo’에 이르러 정적을 그린다. 그녀는 안달루시아 민요의 전통적 정서인 ‘부정(Renegar)’의 언어를 가사로 구현하며 “Yo reniego de mi sino(나의 숙명을 부정한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부정은 고착화된 팝 문법과 남성 중심적 신학을 소거하는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느린 템포와 미니멀한 구성 속에서 로살리아는 외부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아의 상태를 거의 비워낸 소리로 제시한다. 음악적으로 로살리아는 이 곡을 ‘De Madrugá’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전조(Prelude)로 기능하게 배치한다. 배경처럼 깔린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통해 축적된 이 곡의 긴장감은 ‘De Madrugá’로의 트랙 전환 시 주술적인 리듬감으로 반전되며 폭발한다. 로살리아는 파괴 이후의 서사가 빠지기 쉬운 수직적 복수의 논리를 거부하며 폭력의 논리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한다. 그녀는 “어떤 권총(Glock)도 너를 데려오진 못해”라고 노래하며 물리적 타격 대신 창조적 영감을 상징하는 ‘불의 혀’를 선택한다. 이는 권력을 탈취하는 방식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논리를 무력화하는 선택이다.
특히 로살리아는 제목을 16분음표 네 개로 쪼개어 외치는 구호와 4분음표 정박으로 응답하는 대위적 구성을 통해 초반부 ‘Reliquia’에서 보여준 바로크적 엄격함을 재소환한다. 그러나 그녀는 질서에 순응하는 대신 해당 형식을 청자를 트랜스(Trance) 상태로 유도하는 주술적 도구로 변주한다. 전통이라는 절대적 형식을 해체한 로살리아가 다시 그 형식을 수단 삼아 자신만의 의례를 주관하는 ‘영적 주권’을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로살리아는 파괴적 거부라는 수동적 반항을 넘어 폐허 위에 스스로의 법을 세우는 능동적 주권을 실현한다. 이 지점에서 거부는 종결되고 구축이 시작된다. 새로운 세계를 지탱할 윤리적 토대를 재건하는 그 순간, 주권적 자아가 태어난다.
<LUX>는 파괴와 거부를 거쳐 도달한 능동적 주권의 형식에 대한 기록이다. 로살리아는 대중의 기억 속에서 반복되는 이미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료넨의 급진적 선택을 다시 호출한다. 쿤데라가 말한 불멸이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는 반복이라면, 로살리아가 이 앨범에서 도달한 빛은 해체 이후에만 가능한 자유의 형식이다. 이 선택은 개인적 결단이라기보다 이미지의 반복과 즉각적 소비를 전제로 작동하는 플랫폼 환경에 대한 응답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LUX>의 성취는 음악이 사유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가 감시의 보폭이 되고, 분절된 목소리가 파편화된 성물이 되는 전이의 과정은 사운드가 어떻게 숭고한 체계를 새로 구성해나가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박제된 이미지의 반복이 이미 실패한 형식임을 전제한 채, 해체 이후에만 가능한 예술적 주권의 조건을 소리의 구조로 제시한다. 빛은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부서진 표면을 통과해 스며드는 방식으로만 남는다.
-
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