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와 네오소울이 드러낸 장르의 정치학
R&B가 기근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힙합에, 일렉트로닉에 밀린 장르가 된 지금, 2024년 11월에 불현듯 나타난 런던의 3인조 걸그룹 플로(FLO)는 반가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첫 정규작인 <Access All Areas>는 'On&On', 'Caught Up'과 같은 트랙들로 마치 과거 TLC,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재림을 보는 듯했다. 최근 NPR 타이니데스크(Tiny Desk) 출연 영상을 보니, 역시 발군의 라이브 실력이다.
플로가 등장한 지 1년여 후, 디안젤로(D'Angelo)가 세상을 떠났다. 췌장암. 향년 51세. 1990년대 'Whenever Wherever Whatever'와 같은 곡들로 인기를 끌었던 맥스웰(Maxwell)과 같이, 일명 '네오소울'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의 음악에 유독 애착을 가진 나는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최근, 뮤지션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 "디안젤로도, 맥스웰도, 나도, 네오소울 아티스트가 아니다."
네오소울이라는 네 글자만 봐도 그려지는 — 풍부한 화성에, 인간을 노래하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어떤 청각적 경험들을 뒤로하고, 그 이유가 궁금해 자세히 읽었다. 이야기인즉슨, '네오소울'이라는 단어는 한 임원이 음반사 내부 회의에서 '크로스오버 마케팅 예산이 필요 없는 아티스트들'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약어였다고. 한 마디로 '투자를 덜 해도 되는 아티스트들'을 분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단어가, 지금의 장르명으로 굳혀졌다는 얘기였다.
사실 디안젤로 본인도 살아생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2014년 레드불 뮤직 아카데미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오소울을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나는 블랙 뮤직을 만든다." 그의 말은 당시엔 아티스트 특유의 장르 거부감 정도로 읽혔다. 사딕의 발언이 나온 지금, 그 말은 다르게 들린다.
평론가나 학자, 혹은 대중에 의해 이 음악들이 '네오소울'로 규정되었을 거라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대중음악의 장르명을 두고 어떤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라 알음알음 그렇게 불리다 굳어지는 경향 탓에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던 와중, 네오소울을 비롯한 장르명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네오소울이 속한 더 큰 범주, 리듬 앤 블루스(R&B)라는 표현은 원래 음악가들과 대중이 현장에서 비공식적으로 쓰던 말이었다. 이것을 빌보드 차트의 공식 명칭으로 제도화한 사람이 제리 웩슬러(Jerry Wexler)다.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애틀랜틱 레코드의 프로듀서. 1949년의 일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차트의 이름은 'Race Music', 우리말로는 '인종 음악'이었다. 흑인을 대상화한 차별적인 표현이다. 웩슬러는 그 명칭이 인종차별적이라고 판단했고, 이미 현장에서 통용되던 리듬 앤 블루스를 공식 언어로 올렸다. 대중의 언어가 제도로 통합된 합리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후가 문제였다. 차트 명칭이 된다는 건 산업의 기준이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어떤 음악이 R&B 차트에 오르는지, 어떤 라디오에 편성되는지, 어느 수준의 마케팅 예산을 받는지가 장르 이름 하나에 연동된다. 스펙트럼이 다양한 음악들이 범주 안에 갇히는 순간 단편적으로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급기야 빌보드는 1960년대 중반 R&B 차트 이름을 소울로 바꿨다가 1970년에 다시 R&B로 되돌렸다. 음악은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었다. 소울과 R&B가 혼재되어 쓰이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네오소울은 이러한 흐름의 끝에 있다. R&B가 대중의 언어에서 출발해 산업 기준으로 전용된 과정을 거쳤다면, 네오소울은 처음부터 회의실에서 만들어졌다. 애초에 공동체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디안젤로의 <Voodoo>, 맥스웰의 <Maxwell's Urban Hang Suite>는 어떤 장르명으로 불려야 하는가.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 언어학자는 외계 언어를 습득하면서 시간을 지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이렇듯 언어는 사고의 방향을 먼저 결정한다. 장르도 같은 방식이다. 어떤 음악을 '네오소울'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음악을 듣기도 전에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듣도록 조건화되는지도 모른다. 판매량 15만에서 35만 장짜리 음악으로. 크로스오버 마케팅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으로. 장르명은 음악 자체를 설명한다기보다, 듣는 행위를 사전에 설계하는 조건적인 단어에 가깝다.
알고리즘 시대에 장르명의 역할은 더 커졌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플레이리스트 태그, 추천 알고리즘의 장르 분류, 무드 기반 큐레이션. 네오소울이라는 단어가 회의실에서 탄생했다면, 알고리즘의 태그는 적어도 그보다는 중립적으로 느껴진다. 자본의 의도가 아니라 수억 개의 청취 데이터가 만들어낸 평균값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평균값이야말로 힙하고 쿨한 소수의 극단을 지운다. 매드립(Madlib)과 엠에프 둠(MF DOOM)이 2004년에 만든 <Madvillainy>는 재즈, 힙합, 실험음악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어긋난 루프, 해결되지 않는 실험적인 화성, 예측을 거부하는 진행. 지금 이 앨범은 스트리밍 사이트에 '앱스트랙트 힙합, 재즈랩, 익스페리멘탈 힙합, 인스트루멘탈 힙합'으로 분류되어 있다. 태그가 세분화될수록 음악은 더 정확히 설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그 네 개가 붙는 순간 이 음악의 정체성은 오히려 다소 평이해진다.
플로를 두고 "R&B가 돌아왔다"며 반가워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반가움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음악 자체에 대한 반응이었는가, 아니면 'R&B'라는 단어가 먼저 와닿은 것이었는가. 리스너들의 말이 칭찬인 동시에, 2024년의 음악을 우리에게 익숙한 자리에 그대로 놓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는 걸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다. 장르명이 붙는 순간, 음악이 들리기 전에 음악의 자리가 먼저 만들어진다. 우리가 지금 어떤 언어로 음악을 듣고 있는지를 묻는 일. 그것이 이 칼럼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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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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